'꽃이나 본다?'
봄, 여기까지 왔음을 알고 다가올 시간을 상상한다. 붉디붉은 꽃잎에 샛노란 꽃술이 절묘한 어울림으로 각인된 그 꽃이다. 누구는 '목단'이라고도 하고 '모란'으로도 부르는 풍성하고 화사한 꽃이 이제 막 겨울눈을 벗어나고 있다. 저 속에 그 무궁무진한 꽃의 세계가 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피어나면 보고 감탄할 뿐이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라는 나른 노래한 시인의 속내도 미루어 짐작한다.

'꽃이나 보고 꽃 사진이나 올린다' 고 말하는 이가 있다. 지극히 오만한 편견으로 자신을 옹호하고자 하는 이의 독설이다. 꽃을 꽃 그 자체의 생명으로 보지 않고 사람의 가치보다 헐값으로 본다고 사람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사람 사는 모양도 꽃이 피고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 속에서 사람의 오만과 곡해로 얼룩진 세태의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는 것도 여기로부터 출발한다. 사람의 오만이 꽃이 꽃을 피우고도 열매맺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왔고, 그 결과가 가져올 참담함도 그 꽃의 생을 보고서야 안다.

'꽃이나 보고'라는 말로 이미 초라해저버린 스스로를 포장할 수 없음도 알까? 나는 오늘도 그 '꽃이나 보고'자 사람을 사람으로 키워준 자연을 살핀다. 

모란이 피어야 봄이 무르익어 여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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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때를 기다리는 마음이 이토록 간절했을까? 어제밤부터 전해지는 바다 소식에 애써 억눌러왔던 감정이 틈을 냈나 보다. 그 바다와 그 바다를 가슴에 묻은 이들에게 다시 희망을 이야기해도 어색하지 않을 봄을 맞이하고 싶다. 아이들이 향했던 그곳도 바닷길을 따라 노오란 수선화가 피었을 것이다. 그 마음에 수선화 한송이 놓는다.


수선水仙이란 중국명이며 하늘에 있는 것을 천선天仙, 땅에 있는 것을 지선地仙, 그리고 물에 있는 것을 수선이라고 하였다.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의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시인 정호승도 수선화에게 기대어 울었다. 어쩌면 외로움의 본질은 나르시스의 그것일지도 모를일이다. 유독 봄앓이로 먼산을 자주 보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설중화·수선水仙이라고도 한다. 품종에 따라 다르며 흰색, 주황색, 노란색 등이 있다.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가꾸며 줄기, 꽃 등을 약용한다. 나르시스 그것처럼 목숨을 걸어도 좋은 것이다. '자존심', '자기사랑', '고결', '신비' 등의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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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黎明
문득 여기의 이순간을 마주하고 싶었다. 까닭모를 충동이 일어 서둘러 집을 나서 들판 한가운데서 맞이한 아침이다. 산을 넘어온 해를 마주하며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번지는 빛처럼 아득하게 깨어나는 하루가 몸과 마음에 그대로 스며든다. 

잠시 머물며 길게 호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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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뜨기'
꽃이라면 의례 화려한 색상에 독특한 모양 그리고 매혹적인 향기를 떠올리는 것이 당연시되겠지만 어디 그것만 꽃이냐고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식물들을 본다. 독특한 제 삶의 모습을 그대로 전해주는 것과의 눈맞춤이 귀한 시간을 가져다 준다.


농사 준비로 불태우고 난 밭둑에 여기저기 솟아나 키재기하고 있다. 튼실한 몸매가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란 모습이다. 가는 잎이 나기 전의 포자낭(생식경)의 모습이다. 보기에 따라선 징그럽게 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독특한 모양새가 이채롭다.


처음 모습과 다 자란 모습이 천지차이를 보여 전혀 다른 식물로 보이기도 한다. 이 포자낭에 달린 포자들이 퍼지고 나면 줄기가 시들어서 사라지고 연둣빛 싹이 올라와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한다. 처음에 나왔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줄기가 바로 영양경이라고 한다.


'쇠뜨기'라는 이름은 소가 잘 뜯어먹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독성이 있어 많이 먹으면 탈이 나기도 한단다. '순정', '애정', '조화'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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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꿈을 담고 있을까.
때론, 속내가 훤히 내다보이는 것을 만나면 부럽기도 하다. 맞이할 시간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짐작하는 따뜻한 이웃의 마음일 것이다. 그 부러움과 반대로 알 수 없는 자신의 다가올 시간에 대한 불안이 겹쳐지기도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식물의 겨울눈에서 반가움을 읽어내듯 처음 접하는 식물의 겨울눈으로 짐작할 수 있는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마치 내 삶의 앞날을 모르기에 가능한 원대한 꿈을 꾸는 것과 같이 열려진 세상을 향한 희망으로 이해한다. 봄 문턱을 넘어선 자연에선 다가올 시간에 대한 한치의 의심이나 두려움 없이 제 때에 제 일을 하는 생명의 숭고한 사명을 만날 수 있다.

꽃으로 먼저 피기도 하고, 새잎을 내며 꽃을 준비하면서 묵묵히 제 시간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 내게 다가오는 시간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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