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구술붕이'
딱히 대상을 정해두고 길을 나선 것은 아니다. 숲에 들어 그 때에 맞는 만남이면 좋다. 그것이 풀이건 나무건 특별히 구분은 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들어가고 싶었던 숲에 들어 걸음을 멈추고 숲의 공기와 소리, 색과 빛에 내 눈과 귀가 익숙해지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보이는 것들에 주목하면 되는 것이다.


볕이 잘드는 땅 가까이에서 하늘 향해 속내를 마음껏 풀어냈다. 과하지 않은 보라색의 꽃잎에 햇볕을 품에 제 본연의 색을 발한다. 여리디여린 꽃대에 어찌 저렇게 큰 꽃잎을 달고 있을까. 땅에 바짝 붙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슬처럼 자줏빛 꽃이 뭉쳐 피어 구슬이 송송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일까. 구슬붕이에 비해 크다고 해서 큰구슬붕이라고 한다. 비슷한 모양으로 꽃을 피우는 것으로 구슬붕이, 봄구슬붕이 등이 있는데 구분이 쉽지 않다.


숲으로 깊숙하게 내려않은 햇볕이 봄 숲에 기쁜 소식을 던해주듯 큰구슬붕이는 보는이에게 꽃말 처럼 봄의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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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신영복 유고, 돌베개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따라 가고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싶어 바다로 간다

가까이 두고 표지의 글씨만 읽다가 이제서야 첫장을 열어간다. 읽어가기에 마음 다짐이 필요했나 보다.

신영복 선생(1941~2016)이 생전에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재구성한 책이다. 서문을 대신하여 신영복 선생의 오랜 벗이자 제자인 성공회대학교 김창남 선생의 글 '신영복 선생의 말과 글-참 스승의 의미'와 고인의 생애를 약술한 '신영복 연보'가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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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밤 시작한 비가 아침까지 이어진다. 이제 막 피어난 벚꽃 마음도 몰라주고 매정하기 그지없이 가냘픈 꽃잎 떨구고 만다. 하나 어쩌랴 덕분에 길바닥이 차분한 꽃이불 덮었다.

나무 위 꽃잎이 비에 기대어 비로소 땅과 만나 회포 풀어내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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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꽃다리'
참으로 이쁜 이름이다. '꽃이 마치 수수 꽃처럼 피어 있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핀 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꽃과 향기에 반해 이 나무를 구하기 위해 애를 쓰던 중 어느 농장 뒷켠에 자라던 나무를 데려왔다. 이 나무가 토종 '수수꽃다리'인지 수입종 '라일락'인지는 모른다. 그냥 수수꽃다리가 맞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이라는 노래 일부다. 라일락이라고 하면 우선 이 노래가 생각나지만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눈부신 슬픔이라 노래하는 것이 꼭 이 나무의 슬픈 사연을 담은 듯하다.


미 군정청에 근무하던 엘윈 M. 미더는 북한산에서 우리 토종식물인 '털개회나무' 씨앗을 받아 본국으로 가져갔고, 이후 싹을 틔워 '미스킴라일락'이라 이름 짓고 개량하여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시장에 퍼져나갔다. 그 나무가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었다. 우리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아픈 현실이다.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실린 남효온의 '금강산 유람기'에는 "정향 꽃 꺾어 말안장에 꽂고 그 향내를 맡으며 면암을 지나 30리를 갔다"라는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수수꽃다리 형제나무로 개회나무, 털개회나무 등이 있는데 구분이 쉽지않아 꽃을 좋아한 옛사람들은 따로 구분하지 않고 중국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여 정향丁香이라 불렀다고 한다.


내 뜰에 들어와 자리잡아 이제 내 키보다 크고 튼실하다. 올해도 이쁜 꽃과 향기로 함께하고 있다. 라일락의 '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 '사랑의 싹이 트다', 수수꽃다리는 '우애'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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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지하철역의 백수광부 - 유경숙 엽편소설집 푸른사상 소설선
유경숙 지음 / 푸른사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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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이야기꾼 유경숙의 짧지만 긴 이야기들

이야기꾼은 따로 있나 보다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내 입을 통하는 순간 다큐멘터리가 되고 마는 사람으로 살다보니 말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편에 서 있다그러다보니 자신의 감정은 숨기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간혹 분위기에 편승해서 우스겟소리라도 한마디 하려면 처음 생각과는 달리 스스로의 감정 조절을 못하며 매번 먼저 웃고 만다그러니 재주 좋은 이야기꾼을 만나면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청어남자로 만났던 작가 유경숙의 베를린 지하철역의 백수광부는 엽편소설 모음집이다익숙치 않은 단어 엽편소설葉片小說은 나뭇잎처럼 작은 지면에 인생의 번쩍하는 한순간을 포착재기와 상상력으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문학양식이라고 한다여기에는 지극히 짧은 60여 편의 이야기가 여섯 가지 테마로 분류되어 담겨 있다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역사드라마 한 장면을 보는 듯도 하고작가의 일상이 담겨 있는 듯도 싶고낯선 여행지에서 그보다 더 낯선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는 듯도 싶은 이야기들이다.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드는 첫 번째 생각은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무엇인가 분명 있긴 있는데 쉽게 손에 잡히지 않은 모호함이 있다시간이 조금 지난 후 ~맞다” 라며 뒷북을 치게 만든다이처럼 지극히 짧은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어떤 이야기 하나라도 허투루 넘어갈 수 없는 무엇이 숨어있다그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면서 이야기를 쫒아가는 맛이 참으로 좋다.

 

어느 인간이든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감추고 싶은 옹색한 골짜기 하나씩을 갖고 있다그늘지고 축축한 골짜기에 웅크리고 있는 취약한 존재그 취약한 영혼에게 말을 걸며 손을 잡아주는 것이 소설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이러한 바람은 이미 이뤄진 듯하다. ‘베를린 지하철역의 백수광부에 담긴 이야기들은 재주 좋은 이야기꾼이 자신만의 이야기보따리를 슬그머니 풀어놓은 것처럼 보인다절대 강요하거나 억지스럽게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사이 이야기가 끝나 있다재주 있는 이야기꾼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주목하게 만들었다가 이야기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하여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거나시간이 지날수록 이야기의 여운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오랫동안 이야기 속을 서성이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 것처럼 작가 유경숙의 이야기들이 그렇다.

 

세상과의 불화 때문에 마음이 꽉 닫혀버린 이에게 바늘귀만큼의 구멍이라도 뚫어주고깊은 상실감으로 가슴 한편이 구멍 난 사람에겐 바람막이 점퍼를 입혀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그래서 그들이 제 입술을 열어 스스로 말하고 집 한 채씩을 짓도록 돕고 싶었다.”는 작가의 사람들을 향한 온기 가득한 마음을 오롯이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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