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으로 질주하는 무심한 하늘엔 별이 총총 빛나고 그 하늘 한 가운데에서 솟아난 반달은 유유히 서산을 넘는다. 우박과 천둥에 비까지 어제밤의 그 요란함은 다 무엇이었단 말인가.

"반은 지상에 보이고 반은 천상에 보인다
반은 내가 보고 반은 네가 본다

둘이서 완성하는
하늘의
마음꽃 한 송이"

*이성선의 시 '반달'이다. 맑은 별빛 쏟아지는 밤이 깊어간다. 비스듬히 누운 반달에 기대어 긴 하루를 건너온 시름을 내려 놓는다.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오르는 빛"

무심히 스치는 이해인 시인의 시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의 싯구 한구절과 '반은 내가 보고 반은 네가 본다'와 잘 어울린다. 반은 나머지 반을 전재할때 비로소 온전한 제 값을 담을 수 있다. 반과 반이 만나 온전한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

오늘밤 반달을 보자고 권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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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초롱꽃'
서재 처마밑에 피어 불 밝히던 초롱꽃들이 데크를 놓으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다. 세럭이 많이 줄었는데 그나마 이번 우박으로 꽃대가 꺾이고 말았다. 아쉬움이 컷는데 길가다 어느집 담벼락에서 먼저 보았다. 초롱꽃 키우는 집주인의 마음에 불 밝히듯 환하다.


흰색 또는 연한 홍자색 바탕에 짙은 반점이 있으며 긴 꽃줄기 끝에서 밑을 향하여 달린다. 초롱불을 켜는 초롱을 닮았다고 초롱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달뜨는 밤 은은한 달빛에 어울리는 꽃이다.


종모양을 보이기도 하니 내 서재에서 건너다 보이는 담벼락 밑에 초롱꽃과 처마밑에 소리로 호응하는 풍경과 어울림이 제법이다. 눈 돌려 창밖에 어리는 산그림자도 봐달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불밝히는 마음 한구석엔 각기 처지가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마음이 담겼으리라. '감사', '기도', 성실' 등 여러가지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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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정원 - 숲의 사계를 통해 배우는 삶과 사랑
손진익 지음 / 북산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숲과 더불어 빛나는 삶의 여정

손바닥 만 한 크기의 뜰에 나무를 골라 심고 풀을 가꾸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달라지는 빛의 그림자와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정성을 들여 뜰을 가꾼다는 것은 지금 당장의 그 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하는 일이다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야 뜰에 담겨진 시간과 정성이 드러나며 그 미래를 위해 지금의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이는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내 삶의 가치를 그 안에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그런 의미에서 조그마한 정원을 가꾸는 일이나 화분의 꽃이나 나무 한그루를 가꾸는 것 역시 나무와 풀온갖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숲을 찾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 책 '내 인생의 정원'은 저자가 은퇴 후 강원도에 정착해 로미라는 이름의 수목원에서 숲을 가꾸며 살아가는 이야기다삶의 우여곡절을 함께해온 아내와 함께 수목을 가꾸며 수목원의 숲길을 걷으며 인생의 노년기를 충만하게 채워가는 이야기가 소소하게 담겨 있다.

 

봄 햇빛여름 사랑가을 마음겨울 당신과 나라는 테마를 통해 숲의 변화와 그 숲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함께 누려가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숲이 담고 있는 이야기만큼이나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앞서거니뒷서거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듯하다걷다가 적당한 곳에 앉아 바람의 소리를 듣고 청솔모의 엉뚱한 몸짓도 보며 구름 흘러가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어께를 기대기도 하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에서 숲에 어우러지는 삶이 무엇을 전해주는지 알 것도 같다.

 

숲에서 자연의 변화를 보며 인간의 삶이 가지는 이기적이고 단편적인 삶의 방식과 숲이 다양한 생명들의 어우러짐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한없이 넉넉함을 비교하기도 한다자연이 주는 지혜를 통해 사람들의 삶의 원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의 제시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공감하는 이야기다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자연의 법칙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사람들의 일상과 숲의 모습을 단편적인 비교하는 것은 사람들이 삶 속에서 찾아지는 긍정적인 작용을 축소하는 듯한 이미지를 전해주기도 한다.자연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얻은 교훈으로 보다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자는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숲의 진면목을 보려면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 변화를 다 지켜보아야 한다생명이 나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 맺고 마지막엔 낙엽지고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이는 겨울까지 지켜보며 숲이 전하는 생명의 숭고함을 알아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사람도 마찬가지다삶의 황금기를 보내고 난 이의 여유로움과 미래를 바라보는 느긋함이 숲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

 

"200살 먹은 적송은 나에게 말을 건넵니다.

"이 보게아직 청춘인데 벌써부터 노인 흉내 내면 안 되지"

적송 아래 있으면 정말로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200년은 못살겠지만 백 년은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와 적송이 나누는 정담의 향기가 내에로 전해져 가슴에 온기로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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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지위미 充實之謂美'
충실充實한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하고자 할 만한 것을 '선善'이라 하고, 선을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신信'이라 하며, 선이 몸속에 가득 차서 실하게 된 것을 '미美'라 하고, 가득 차서 빛을 발함이 있는 것을 '대大'라 하며, 대의 상태가 되어 남을 변화시키는 것을 '성聖'이라 하고, 성스러우면서 알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

*맹자孟子 진심하盡心下편에 의하면 맹자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선善ᆞ신信ᆞ미美ᆞ대大ᆞ성聖ᆞ신神"의 여섯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맹자의 이 말에 비추어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美은 무엇일까.

책을 손에서 놓치 않으나 문자만 겨우 읽는 수준이고, 피리를 통해 자연의 소리를 배우고 있으나 제 음값은 흉내도 못내고, 꽃이나 풍경을 보며 겨우 한 순간이나마 몰입하는 것이 전부다. 

이 정도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순하게 대상을 한정시켜서 아름다움을 보는 것에 나를 맡긴다면 스스로에게 미안할 일이 아닐까. 애써서 다독여온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은 무척이나 당혹스럽다. 원점으로 회귀일까. 쌓아온 시간에 수고로움의 부족을 개탄한다.

마른 땅을 뚫고 솟아나는 죽순에서 지극한 아름다움을 본다. 숨죽여 기다렸을 시간과 때를 알아 뚫고 나오는 힘 속에 아름다움의 근원인 가득한 충실을 보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으로 스스로를 충실充實하게 채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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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산(575m)에 올랐다. 사람을 밀어내지 않은 고만고만한 산들 사이에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분주한 일상을 산다. 발 아래 펼쳐진 풍경이 시원하다. 높은 산이 부럽지 않은 풍경이다.

백아산에서 모후산, 만연산, 무등산을 지나 병풍산, 용구산, 추월산에 이르는 하늘이 옅은 구름 속에서 햇살을 품었다.

이제 숲은 여름이다. 우거진 풀은 길을 막고 하늘을 가린 나뭇잎은 겨우 햇살이 스미는 틈만 벌렸다. 숲에서 부는 바람에 찬기운이 서려 있는 것이 숲의 향기와 어우려져 심호흡하기에 적당하다. 

가슴 속 깊은 곳에 맑은 숲 향기를 담는다. 산에 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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