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을 채우고서 더 바빠진 달이 구름 사이를 서둘러 건너간다. 목이 터지도록 아우성치던 개구리도, 밤을 새울 것 처럼 울던 소쩍새도, 홀딱 벗고를 민망하게 외처던 검은등뻐꾸기도 오늘따라 모두가 잠들었나 보다. 달빛은 고요한데 가로등 불빛이 거꾸로 선 논에는 별들까지 내려와 잠이 들었다.

뜰에 가득찬 달빛이 아까워 내려서려던 토방 끝에서 발길을 멈춘다. 서성이는 밤이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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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구슬나무'
매년 같은 때 같은 자리를 찾아가 안부를 묻는 나무가 있다. 때마춰 어김없이 피는 꽃은 환상적인 색과 그보다 더 황홀한 향기에 취해 좀처럼 꽃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빛과 꽃 사이에서 벌어지는 빛과 색의 향연이 아찔하다.


가지 끝에 연보랏빛의 조그만 꽃들이 무더기로 모여 핀다. 보라색이 흔치 않은 나무꽃 중에 더욱 돋보이며, 진한 향기가 매우 향기롭기까지 하다. 과한듯 진한 꽃향기지만 꽃그늘 아래로 모여드는 생명들을 내치지 않을 정도로 너그럽게 품어준다.


열매는 가을에 들어서면 노랗게 익는다. 바깥은 말랑말랑하고 가운데에 딱딱한 씨가 들어 있다. 모양은 둥글거나 약간 타원형이고, 긴 열매 자루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겨울철 남도를 여행하는 길가에 자주 보인다. 멀구슬나무라는 이름은 이 열매에서 비롯된 듯하다.


"비 개인 방죽에 서늘한 기운 몰려오고
멀구슬나무 꽃바람 멎고 나니 해가 처음 길어지네
보리이삭 밤사이 부쩍 자라서
들 언덕엔 초록빛이 무색해졌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03년에 쓴 '농가의 늦봄田家晩春'이란 시에도 멀구슬나무가 등장한다. 친숙한 농촌마을의 늦봄의 정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멀구슬나무는 목재, 수피, 열매 등이 생활에서 다양하게 쓰이는데 나무 입장에서 보면 모두 주의를 살펴야할 일들이다. '경계'라는 꽃말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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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여행이 되다 : 작가가 내게 말을 걸 때 소설, 여행이 되다
이시목 외 9인 지음 / 글누림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공간이 담고 있는 문학성

한때역사기행이나 문학기행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책을 손에 든 여행자들을 만나곤 했다문학작품 속 배경이 되었던 장소나 작가와 관련된 공간을 찾아보고 작품과 작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되며 긍정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다유행이 지나가버린 요즘도 간혹 그런 여행자들을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이 책 '소설여행이 되다'는 현직 작가들에 의해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와 작가를 잉태한 공간을 여행하며 작품과 작가에 대해 다양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문학기행에세이다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근현대 작가와 작품들을 깊이 있게 사유하는 한편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여행이라는 방식을 통해 깊이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박완서와 인왕산 골짜기김소진과 미아리박태원과 서울이상과 통인동김유정과 춘천 실레마을이기호와 원주 단구동이효석과 평창 봉평한수산과 춘천심훈과 충남 당진김원일과 대구 장관동권정생과 안동김주영과 청송 진보면성석제와 낙동강의 상주김정한과 부산 긍정최명희와 남원문순태와 담양 생오지마을한승원과 전남 장흥이청준과 전남 장흥현기영과 제주시

 

서울에서 제주까지 남북을 잇고 동서를 아우르며 이미 작고한 작가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에 이르기까지 열아홉 명의 작가의 작품과 그 작가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간다이 문학여행에 동참한 작가들이 발품팔아 확인한 현장의 생생함과 더불어 작가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통해 작가와 작품을 한꺼번에 만나는 기회를 얻는다.

 

이러한 방식으로소설여행이 되다는 두 가지 테마로 작가와 작품에 각각 방점을 둔 작가가 내게 말을 걸때와 작품이 내게 찾아올 때의 두 권으로 엮어졌다여기에 덩참한 작가는 이시목박성우박한나배성심여미현유영미이정교이재훈이지선정영선 등 열 명이다여기서 궁금증 하나가 책을 다 읽도록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 있다문학기행에 참여한 작가들은 각기 어떤 작가를 만나는 여행을 했을까?누구 어떤 글을 쓴지 밝히고 있지 않다.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와 작가를 잉태한 공간을 다른 작가가 말을 거는 방식의 접근이 새롭다이 문학기행에는 시간 사이의 틈낯선 곳에서의 한걸음과 일상에서의 걸음과의 차이소설을 쓴 이와 그 소설을 읽은 이 그리고 그 사이를 건너는 독자 모두가 각기 주인공으로 참여할 틈을 열어두었다.

 

문학여행 그리고 작가이 매력적인 조합이 만들어 낸 독특한 문학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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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그 황홀한 빛의 숲에 들다.
한낯 햇살의 뜨거운 기운이 조금은 누그러질 무렵 숲으로 파고드는 햇살의 느긋함이 담긴 숲이 좋다. 터벅터벅 적막을 깨는 스스로의 발자국 소리의 리듬에 귀 기울이는 시간으로의 나들이다. 

잎사귀를 감싸는 햇볕, 산 너머 소식을 전하는 바람 소리, 반가움과 경계를 넘나드는 새의 울음, 눈 보다는 코의 예민함을 건드리는 숲의 향기에 넘실대는 산그림자의 손짓, 오랜만에 만난 동무를 반기는 다람쥐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시간의 공유다.

숲, 숨에 틈을내는 시공時空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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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닭개비'
국도 15호선,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에서 담양군 담양읍에 이르는 길 어디쯤이다. 담장 아래 소박하게 가꾼 작은 꽃밭에 주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꽃들이 핀다. 일부러 조금 서둘러 나온 출근길은 그 담장 아래를 서성이고 싶어서다.


자줏빛 꽃잎을 활짝 열고 아침해를 맞이한다. 샛노란 꽃술이 꽃잎과 어우러지며 자태를 한껏 뽑낸다. 색의 대비가 주는 강렬함에 이끌려 눈맞춤하지만 내치는 법이 없이 반긴다. 자연색이 주는 포근함이다.


닭의장풀과 비슷하지만 닭의장풀은 꽃잎이 푸른색과 흰색인데 비해 자주닭개비는 꽃잎 모두가 푸른색이고 꽃색이 보다 짙기 때문에 자주닭개비라고 한다.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흐리거나 오후에는 시들기 때문에 부지런한 사람만 활짝핀 꽃을 볼 수 있다. 퇴근길에 꽃을 보지 못한 이유가 이것이다. '외로운 추억', '짧은 즐거움'이라는 꽃말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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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랑 2017-06-09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진 님 덕분에 궁금해 하던 작고 예쁜 꽃의 이름을 하나 더 배웠어요.
정말 오전에 짧게 피었다가 꽃잎을 닫아버리는 아이라 알려주신 꽃말중에 ‘짧은 즐거움‘이란 말이 확 와닿네요.
오늘도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무진無盡 2017-06-10 21:44   좋아요 1 | UR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