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워진 햇볕이지만 피부에 닿는 느낌은 맑음이다. 끈적함이 없으니 폭염같은 온도도 막상 사나운 성질을 다 부리진 못하나 보다. 간간이 산을 넘어오는 바람에 묻어나는 싱그러움이 좋은 날이다.

알을 깨고 첫울음을 울었던 새들은 날개짓을 배우고, 무논의 벼들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던 나무는 열매를 키워간다. 아직 못다한 농부의 서두르는 여문 손끝에서 생명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늘, 그 품을 향한 꿈이 영글어기에 딱 좋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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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리'
풀이 차오른 숲길을 걷다가 만나는 순백의 마음이다. 순하고 곱다. 산과 들녘에서 만나는 건으로 순수함이 이런 것이라는 듯 은은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이 돋보인다.


꽃잎은 없고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인다. 초록의 풀숲이나 나무가지 사이에서 하얗게 빛나는 모습이 일품이다. 꽃받침의 순함에 비해 강한 줄기를 가졌다. 순함을 지키는 힘이리라.


비교적 이른 봄에 피는 큰꽃으아리, 외대으아리, 참으아리 등이 있다. 큰꽃으아리의 경우 다른 것에 것에서 비해 월등하게 큰 모습이어서 쉽게 구분되나 다른 것은 구분이 쉽지 않다.


으아리의 모습에서 보이는 그대로의 마음을 담아 '고결', '아름다운 당신의 마음'이라는 꽃말을 붙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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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맞춤이다. 숲에 들면 한없이 느려지는 걸음에 익숙하다. 좌우를 살피고 위아래도 봐야하며 자주 지나온 길에 돌아도 봐야 한다. 걸음을 옮기고 높이를 달리하고 속도가 변하면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바라보는 방향과 각도다. 일부러 그렇게 봐야할 이유를 밝히기 전에 당연시되는 행동이다. 숲에 들어 생명을 만나기 시작한 후로 달라진 태도다.

문득 눈을 들면 몇걸음 앞에 햇살이 스며들어 만들어 내는 찬란한 빛이 있다. 다른 식물들의 몸과 잎에 가로막힌 빛이 스며들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때와 이를 바라본 시선의 만남으로 가능한 눈맞춤이다. 느린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바라본다.

적절한 때와 장소 그리고 그 앞에 멈춘 내가 하나되어 꽃이 되는 순간이다.

꽃으로 핀다고 그 꽃이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안다. 관련된 모든 인연의 정성을 다한 수고로움으로 꽃이 피듯 사람의 만남도 그러하다. 사람과의 만남, 그 만남으로 인해 형성되는 공감, 이 모두는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져 꽃으로 피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대는 이미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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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17-06-16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어서만 읽기에는 과한, 종이로 읽고싶어요.
안복이 넘치네요. 힘있는 문장 거듭 되새김합니다

무진無盡 2017-06-16 21:54   좋아요 0 | URL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인동'
들고나는 대문에 향긋한 내음이 머문다. 향기 따라 눈이 머무는 곳에 노랗고 하얀 꽃이 함께 있다. 과하지도 않고 오랫동안 머무는 향기로 인해 마음은 안정되고 기분은 좋아진다. 내 뜰을 찾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향기다. 꽃을 가까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인동이라는 이름은 잎의 일부가 겨울에도 남아 푸르게 살아 있어 겨울을 잘 이긴다(忍冬)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방에 따라 인동초, 연동줄이라고도 한다.


'금은화'라고 하는데 처음 꽃이 폈을 때는 흰색, 즉 은색이고 꽃이 시들어 갈 무렵이면 노란색, 즉 금색으로 변하는 데서 유래되었다. 꽃이 수정이 끝나면 색이 변하는 것이라고 한다.


꽃도 아름답고 향도 은은하고 좋다. 꽃은 차로 먹으면 은은한 향이 전체에 퍼지고 맛도 좋다. 나란히 피어있는 모습에서 '우애', '헌신적 사랑'이라는 꽃말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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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덜미를 스치는 바람결에 한기가 엄습한다. 애써 움츠러드는 어께를 펴며 먼산을 넘어오는 '는개'를 시린 가슴으로 바라본다. 비가 전하는 마음이 서늘타.

비가 오신다

서울이나 광주에서는 
비가 온다는 말의 뜻을
알 수가 없다
비가 온다는 말은
장흥이나 강진 그도 아니면
구강포를 가야 이해가 된다
내리는 비야 내리는 비이지만 비가
걸어서 오거나 달려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어떨 때 비는 싸우러 오는 병사처럼
씩씩거리며 다가오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그 병사의 아내가
지아비를 전쟁터에 보내고 돌아서서
골목길로 걸어오는
그 터벅거림으로 온다
그리고 또 어떨 때는 
새색시 기다리는 신랑처럼
풀 나무 잎술이 보타 있을 때
산모롱이에 얼비치는 진달래 치마로
멀미나는 꽃내를
몰고 오시기도 하는 것이다.

*이대흠의 시 '비가 오신다'의 전문이다. 걸어오는 비와 맞짱이라도 뜰 것처럼 호기를 부르던 때가 있었다.

비를 품고 비를 맞고 비를 바라보다 비를 기다리며 비와 눈맞춤해본 이들은 다 알 수 있는 감성이다. 일없이 오며가며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정을 다 쏟아내지도 못하면서 는개와 몸의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내리는 비야 내리는 비이지만 비가
걸어서 오거나 달려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는개의 일없다 다독거리는 마음이 흰머리에 은방울꽃으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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