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햇볕아래 습기까지 더하니 체감하는 기온은 더위를 잘 타지않은 이에게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다가온다. 찾아든 그늘에도 후덥지근한 바람은 시원함을 전해주지도 못하고 더위 앞에 힘마져 잃고 말았다.

이제 여름꽃의 시간이다. 그 시작을 나리꽃 종류들이 앞장서서 이끌어가고 있다. 해바라기와 더불어 태양 아래에서 더 빛나는 꽃이다. 강렬한 햇볕만큼이나 강한 색의 대비가 눈맞춤의 유혹을 불러오는 꽃이다.

화련한 색의 향연은 이처럼 태양의 뜨거운 햇볕에 의지해 가능해지는 일이다. 그러기에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태양을 피하지 않고 맞서는 꽃에게로 향한다. 그 꽃에서 삶을 가꾸는 힘의 근본을 만나고자 함이다. 그 마음이 발걸음을 숲으로 이끈다.

불타는 태양 아래서 빛나는 털중나리의 꽃술, 여름꽃의 백미다. 매 순간 꽃으로 피어나는 그대도 이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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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래난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 야산 무덤가나 잔디가 자라는 숲속 오솔길을 기웃거리는 이유가 있다. 한층 키를 키운 풀 속에서 우뚝 솟아 올라 연분홍의 꽃을 피우는 녀석을 보기 위해서다. 얼마나 다행인가 지난해 보았던 그자리에 그모습으로 다시 피었다.


묘한 모습이다. 실타래 같은 줄기를 따라 줄줄이 꽃이 핀다. 나사처럼 꼬여 있는 줄기를 따라 빙빙 꼬여서 꽃이 피는 모습에서 타래난초라는 이름을 얻었다. 자잘한 연분홍색 꽃이 줄기에 나사 모양으로 꼬인 채 옆을 바라보며 달린다. 간혹 하얀색의 꽃이 피는 경우도 있다.


타래가 꼬인 모습도 각기 다르고 꽃의 모양도 신비롭기만 하다. 허리를 숙이고 하나하나 눈맞춤하는 그 즐거움은 누려본 이들만이 가지는 행복이다.


남의 무덤가를 서성이게 하는 꽃이다. 하여 다른 사람들의 이상한 눈총을 받게도 하지만 이 꽃이 주는 매력이 그런 눈총쯤이야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추억소리'라는 꽃말은 이렇게 낯선 사람이라도 불러들이는 힘에서 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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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다. 틈을 비집고 들어선 빛이 어둠을 밝힌다. 밤을 건너와 맞이하는 아침이 그렇고 막힌듯 답답한 일상에 스스로 틈을 내는 일이 이와 같다. 스며든 빛은 어둠이 있어 그 밝음을 드러나고 일상의 틈에서 찾은 여유는 스스로를 밝음으로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빛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닿아 저절로 밝아진다. 나와 그대가 맞이하는 아침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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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밤나무'
더딘 발걸음 끝에는 무엇인가를 주목하게 된다. 꼭 특정한 무엇을 보자고 한 것이 아니기에 만나는 것 무엇이든 늘 새로움이 있다. 점심 후 산책길에서 만났다. 한발짝 벗어난 길에서 이렇듯 새로움을 만난다.


노랑 꽃술을 별모양의 꽃받침이 받치고 있다. 두툼하게 품을 연 꽃술이 만들어 내는 그곳에 포근하여 아늑함이 깃들어 있다. 없는 누이의 가슴에라도 달아주고 싶은 부로찌 닮았다.


열매의 모양이 장구통 같아서 장구밥나무로 불린다고 한다. '장구밥나무' 혹은 '잘먹기나무'로도 불린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는 '장구밤나무'로 등록되어 있다.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다. 적자생존의 엄중한 법칙에서 꼭 필요한 것 이상의 무엇을 탐내지 않은 자연이지만 때론 과장된 포장을 자주 본다. 그것에 비해 이 장구밥나무는 깔끔 그 자체로 충분한 매력이 있다. '부부애'라는 꽃말은 어떤 사연이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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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07-06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다... 이 말이 참 와 닿습니다...^^
 

'연꽃'蓮花

贈遺蓮花片 증유연화편 初來灼灼紅 초래작작홍
辭支今幾日 사지금기일 憔悴與人同 초췌여인동

보내주신 연꽃 한송이 처음에는 눈부시게 붉더니
가지에서 떠난 지 이제 몇 일이라고 시든 모습이 사람과 같네

* 조선시대 사람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 실린 고려 충선왕과 중국여인의 슬픈 심사를 시에 담았다. 연꽃의 붉은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의 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의 전문이다. 연꽃에 관한 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살아생전 시인의 행적이 못마탕하지만 내 마음 속 담긴 연꽃의 이미지를 가장 잘 담고 있는 듯하여 연꽃이 피는 여름엔 한번씩 읊는다.

나에게 연꽃은 충선왕의 애달픈 사랑도 아니고 불교의 윤회도 아니며, 더욱 서정주의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는 흉내낼 수도 없는 미천함에 머문다.

내게 연꽃은 '희고 붉은 꽃잎'에서 색감을 모두 빼버리고 가까스로 향기만 남기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다. 세파에 휘둘리지면서 가까스로 중심을 잃지않으려는 애를 쓰는 중년 남자의 여리디 여린 속내를 대신한다.

연방죽이 있었다던 蓮花里에 삶의 터전을 잡은건 우연은 아닌 듯하다.

2015.07.05 
꽃에기대어의 출발점이었던 그곳엔 지금 연꽃 피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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