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 깨어나는 시간, 지난 밤 내리던 비가 멈추고 산을 내려오는 안개가 비가 어어질 것을 예비한다. 무게를 더한 아침 공기가 더딘 흐름이다.

키를 키우며 초록을 더해가는 볏잎에 이슬이 맺혔다. 가슴졸이는 아슬한 눈맞춤이 아니다. 순간을 제 맛과 멋으로 살아야 한다는 침묵으로 건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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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
차마 밝은 노랑으로까지는 가지 못하는 것이 다할 수 없는 망설임으로 읽힌다. 순한 성품을 가진 모든 생명의 본질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똑바로 하늘을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어쩌다일 뿐이다.


한여름에 피는 꽃은 잎 사이에서 나온 긴 꽃줄기 끝에서 가지가 갈라져 백합 비슷하게 생긴 여러개의 등황색 꽃이 모여 핀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데, 계속 다른 꽃이 달린다.


원추리는 지난해 나온 잎이 마른 채로 새순이 나올 때까지 남아 있어 마치 어린 자식을 보호하는 어미와 같다 하여 '모예초', 임신한 부인이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의남초', 사슴이 먹는 해독초라 하여 '녹총', 근심을 잊게 한다 하여 '망우초'라고도 한다.


색이 붉은빛을 띄는 왕원추리와 꽃잎이 겹으로 된 겹왕원추리도 같은 시기에 핀다. 꽃 색과 모양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꽃이 피어 단 하루밖에 가지 않는다는 원추리의 '기다리는 마음', '하루만의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을 이해할 수 있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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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세트 - 전2권 - 신영복 1주기 특별기획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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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그 후로 다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1998이후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놓치지 않고 보아오다 '강의'와 '담론'에서 머뭇거렸다무엇 때문이었는지 이제야 짐작이 간다짐작이 간다는 것은 그간 신영복 선생님을 이해하는 바가 단편적이었다는 것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많은 배움을 받으며 혼자 따르게 되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또한 발간되는 책을 중심으로 언론에 등장하는 글을 통해 선생님의 가치관과 지향점을 알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선생님의 일상에서 앎과 삶의 조화를 떠올렸던 것이 사실상 전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편견은 신영복 선생님의 1주기를 맞아 기획된 만남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1주기 특별기획에 포함된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와 손잡고 더불어를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보여 진다우선 신영복 선생님을 떠올리면 바른 가치관과 바른 삶의 태도로 곧은 선비라는 인상을 떠올리며 그 틀 속에 갇혀 동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가 아닌 시대의 스승으로만 바라본 시각에서 보다 확장된 이해의 폭을 바탕으로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제시된 것으로 볼 때 만남,신영복의 말과 글은 의미가 크게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는 신영복 선생(1941~2016)이 생전에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재구성하다생전에 책으로 묶이지 않은 글들을 모은 유고집이다특히 20대 청년 시절 신영복의 자취를 보여주는 글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지극히 단편적으로밖에 알 수 없었던 신영복의 성장배경이나 청년 시기에 겪었던 일상적인 이야기들은 선생님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에 충분하다.

 

신영복과의 대화라는 부제를 건 손잡고 더불어는 선생님이 20년 20일의 수형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이듬해인 1989년부터 타계하기 직전인 2015년까지 나눈 대담 중 선생의 사상적 편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담 10편을 가려 뽑아 수록한 대담집이다. 25년 동안 김정수정운영홍윤기김명인이대근탁현민지강유철정재승이진순김영철 등 가톨릭 사제경제학자철학자문학평론가언론인문화기획자과학자 등의 인터뷰어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신영복 선생님의 수많은 인터뷰 가운데 선생의 육성과 사유가 오롯이 담긴 대담을 선별하여 수록하였다대담 당시의 사진이 기록의 생생함을 더했다.

 

여전히 글이 가지는 힘에 대해 생각한다당연히 글의 힘이란 무엇인가도 함께 따라 붙는다여기에서 주목하는 것은 누구의 글인가라는 사람이다지은이를 떠난 글이 독립적으로 힘을 가진 경우가 없진 않을 것이지만 글쓴이와 결부되었을 때 글이 가지는 힘은 배가될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고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시대의 어른으로 주목받는 이들 중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신영복이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길게 보면서먼 길을 함께 걸었으면 합니다저도 그 길에 동행할 것을 약속드리지요.” 선생님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손잡고 더불어 함께할 우리 모두가 걸어 가야할 길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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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야희우春夜喜雨'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江船火燭明강선화촉명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되니 내리네.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소리 없이 촉촉히 만물을 적시네.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는 불빛만 비치네.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두보의 시다. '희우喜雨' 이 이쁜 단어가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두보가 시에 차용하여 그 뜻이 더 살갑게 다가오는 걸까? 

봄 밤 보다는 '희우喜雨'에 주목한다. 귀한 비를 기다리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잔뜩 흐린 하늘에 지금 비라도 내린다면 그 비가 두보의 그 '희우喜雨'라 우겨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 무더운날 지금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한해의 절반을 지나는 6월의 마지막 날이다. 여름도 한 복판으로 접어든다는 뜻이나 견뎌야할 시간 보다는 지금 눈 앞의 하루가 소중하기에 멀리 있는 날의 어려움을 애써 당겨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자.

붉은 접시꽃에 빗방울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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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비비추'
안쓰럽고 위태롭다. 가녀린 꽃대에 어떤 힘이 있어 바람이 전하는 무게를 감당하며 꽃까지 피울 수 있을까. 생명의 순리 앞에 겸허해 진다.


보라색 빛과 뽀쪽하게 내민 모양이 이채롭다. 열린 틈으로 긴 수술을 내밀고 매개자를 인도한다. 한곳에 모아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널 위해 피웠으니 누려도 좋다는 듯 당당하게 우뚝섰다.


'일월비비추'라는 이름은 경상북도 일월산에서 처음 발견된 비비추의 종류라는 뜻이다. 꽃이 흰색으로 피는 것을 '흰일월비비추'라고 한다. '방울비비추', '비녀비비추'라고도 한다. 연한 보라색 꽃이 꽃대 끝에 모여 핀다. 꽃대에 줄지어 피는 비비추와 쉽게 구별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숲속이나 계곡에서 홀로 또는 무리지어 핀 일월비비추를 보면 '신비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붙인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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