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그늘이 짙어져 가는 동안 쑥쑥 자란 콩이 대견스럽다. 출근길 마음 바쁜 이의 이런 마음으로 씨앗을 심었던 농부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부지런한 농부는 이슬이 깨기도 전에 밭이랑에 들었다.

굽은 허리에 엎드리면 콩에 묻혀 보이지도 않지만 저만치 밭이랑을 앞서가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길이 곱기만 하다. 콩꽃을 닮았을 그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것이리라.

콩밭메는 늙은 부부를 지키는 느티나무의 그늘이 넓고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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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꽈리아재비'
가뭄으로 숲길조차 흙먼지 날리던 때 약수물도 말라버리고 비를 품은 안개가 반가운 산행에서 첫 눈맞춤 한다. 약수터 돌밑에서 순한 꽃을 피웠다.


긴 주머니 모양의 꽃자루 끝에 노란꽃을 피운다. 물가 또는 습기 많은 숲 속에 드물게 자란다는데 가뭄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꽃을 피웠다. 잎도 꽃도 그저 순한 색과 모양이어서 더 정겹게 다가선다.


물꽈리아재비라는 이름은 물을 좋아하면서 꽈리랑 닮았다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꽃이 지고 나서 열매가 생길 때 외형이 꽈리를 닮았다는 것이다.


비록 화려하지 않아도 때가되면 순리에 따라 피고지는 들꽃들의 매력이 여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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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산을 넘는 구름이 흰옷으로 갈아 입었다. 순식간에 쏟아내고 시치미떼는 하늘보고 이상타고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게 산 너머 있을 그리움의 안부를 묻는다.


"하늘을 깨물었더니
비가 내리더라
비를 깨물었더니
내가 젖더라"


*정현종의 시 '하늘을 깨물었더니' 전문이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 보다는 한바탕 쏟고 가는 비가 여름날의 찌는 더위에 지친 짧은 그림자를 식혀준다.


기다리던 비가 쏟아져도 여러가지 이유로 그 비를 맞지 못한다. 비에 흠뻑 젖고 싶다는 마음뿐 무엇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를 나이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궁색한 변명거리로 삼는다.


스스로를 가둔 벽에 틈을 내고 비오는 들판으로 나서며 손에 들었던 우산을 밭이랑에 버려둔다. 하늘도 비도 깨물지 못하는 나는 내리는 비에 젖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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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부채'
비 그치고 물내음 물씬 풍기는 시간 길을 나셨다. 섬진강 상류 덕치에서 순창 장구목에 이르는 강가를 지나다 차를 세우고 왕원추리 사이로 본 물길이 거세다. 강가 한 모퉁이에 야생화 공원을 조성하여 용머리, 백합, 부처꽃, 하늘말나리, 원추리 등 제법 다양한 종류의 꽃밭을 만들고 있다.


황적색 바탕에 붉은 점이 무수히 박혔다. 꽃잎에 나 있는 이 붉은색 얼룩무늬가 호랑이 털가죽처럼 보이고 처음 싹이 나면서부터 질서 있게 퍼지며 자라는 모양이 부채꼴 같다 하여 범부채라 불린다.


매일 새롭게 피는 꽃은 그날로 시들고 다음날 다른 꽃이 피어나는데 감촉이 부드러운 가죽처럼 매끄럽다. 꽃이 질때는 세끼를 꼬듯 말리는 것이 독특하다.


수고로움으로 꽃을 피우고도 하루만에 지고마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정성 어린 사랑'이라는 꽃말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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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이다. 그 뜨거움에 살갗이 데일 것만 같아 나서기를 주저한다. 점심시간 게으른 마음을 부추켜 강가에 서 있는 벚나무 그늘 아래에 들었다. 매미도 숨죽인 한낯의 정적이다.

"진정한 약속이란, 말이나 새끼손가락을 거는 일이 아니라 
마음속의 그리움을 읽는 것입니다.

그대가 내 그리워하는 마음 다 읽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대 기다리는 
나를 찾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정일근의 시 '약속, 나무 그늘 아래서'의 일부다. 동구밖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하루에 두 번 밖에 없는 군내버스가 마을로 들어오는 모퉁에 시선을 붙인채 허는둥마는둥 힘없이 부채질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선명하다.

나무 그늘은 품이다. 돌아올 것을 믿는 기다림의 마음을 품어주고 엄마를 기다리는 소년의 두려움을 품어 주며 소나기를 피하는 급한 마음도 더위를 피하는 조급함도 품어 준다. 소리를 품는가 하면, 생명을 품고, 쉼을 품으며 삶의 시간을 품는다. 그 너른 품을 위해 나무는 잎을 내어 한여름 그늘을 드리울 초록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새소리도 매미소리도 어쩌다가 들리던 피리소리도 멈춘 벚나무 그늘아래 달콤한 오수午睡의 시간은 빨리도 지나 갔다. 

바람은 먼 곳에서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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