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동이 트는 새벽, 그믐으로 향해 저물어 가는 달이 보고 싶어 토방을 내려섰다. 낮게 드리운 구름이 가득한 하늘엔 달을 대신해 여명이 붉디붉다.

건너편 낮은 산을 감싸고 오르는 안개의 느린 마음이 그보다 멀리 보이는 백아산 정상을 다 덮진 못했다. 낮게만 자리잡은 하늘의 구름과 산의 모양따라 골짜기를 흘러가는 안개의 리듬이 곱다.

하루의 시작이 이렇게 붉어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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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여름날 그 폭염아래 민낯으로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한없이 붉게 타오른다. 살갓이 벗겨지는 것 쯤이야 개의치 않고 스치는 바람에도 간지러워할 만큼 민감하다. 연인을 향한 불타는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불꽃을 피워 올린다. 그 정이 넘쳐 주름진 잎에 고였다.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도종환 시인의 시 '백일홍'이다. 붉은 꽃이 백일 동안 핀다 하여 백일홍이라 하는데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 피고지고를 반복한다. 많은 꽃이 가지 끝에 모여 핀다. 색깔은 홍색이 보통이지만 백색·홍자색인 꽃도 있다.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고향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 선비들의 문집인 '보한집'이나 '파한집'에 꽃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 말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선비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나무다.


소쇄원, 식영정 등 조선 문인들의 정자가 밀집해 있는 곳의 광주호로 흘러드는 개울을 배롱나무 개울이라는 뜻의 자미탄紫薇灘이라 불렀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근처 명옥헌 뜰에는 이때 쯤이면 하늘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롱나무로는 천연기념물 제168호로 저정된 부산 양정동의 '부산진 배롱나무'로 수령 800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내 뜰에도 다른 나무보다 많은 숫자의 배롱나무가 있다. 모두 꽃보다 고운 마음을 가진 이들의 정성이 깃든 나무들이다. 그 배롱나무도 붉은 꽃이 만발하다.


여름 햇볕에 달궈질대로 달궈진 마음을 주름진 꽃잎에 담아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인듯 '헤어진 벗에게 보내는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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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마루에 안개가 서리더니 바람도 어쩌지 못하고 흔적을 남겼다. 풀 줄기에 난 가녀린 털을 부여잡고 크고작은 물방울로 맺힌 '안개의 쉼'이다.

바람따라 이곳저곳 떠돌다 산마루에 그것도 가녀린 풀에 난 털에 의지한 기구함이란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되는 바가 없지는 않다. 하나, 땡볕의 뜨거운 여름날 산마루를 향해 비지땀을 흘리며 가쁜숨 몰아쉬며 더딘 걸음을 꾸역꾸역 옮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높고 낮은 구분없이 수고로움으로 애쓰며 오른 산 정상에서 먼 눈길 닿는 곳 바라보는 '쉼' 그것이면 좋은 것을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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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박'
익숙하지 않은 것은 어디에 있든 눈에 금방 띈다. 어우러져 있는 곳의 주변과 색이 다르거나 모양이 다르고 때론 크기가 달라서 주목하기 쉽다.


간결한 모습이다. 큰 키에 가느다란 줄기지만 강인한 인상이다. 별모양으로 갈라진 꽃받침 사이로 다시 별모양으로 알모양을 품었다. 지금 모습의 전후를 알지 못하니 이 모습으로만 기억된다. 산이나 들의 풀밭에서 만날 수 있다.


산새박으로도 부르는 산해박은 산에 나는 ‘해박’이라는 뜻인데, 해박의 뜻은 알 수 없다. 단지 일부 지방에서는 박주가리를 해박이라고 한다는데, 그렇다면 산에 나는 박주가리를 의미한다. 박주가리과에 속하니 그렇게 이해해도 되겠다.


첫만남이 주는 강한 느낌으로 오래 기억될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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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삶과 죽음, 그 경계의 이야기다. 실패한 전쟁 중 살아남아 무엇을 하고자는 목적 보다는 죽지 않아야 한다에 주목한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에 40만 명이 고립되었던 영국, 프랑스, 벨기에 연합군의 철수 과정을 영화화 했다.

"보이지 않는 적에게 포위된 채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위기의 일주일, 
바다 : 군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배를 몰고 덩케르크로 항해하는 하루, 
하늘 : 적의 전투기를 공격해 추락시키는 임무, 남은 연료로 비행이 가능한 한 시간"

일주일, 하루, 한시간
삶과 죽음을 가르는 한정된 시간에 주어진 사명을 다한다. 삶을 선택하지만 목숨은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드러나는 본성.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선이 의외다.

색다른 전쟁영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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