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이다. 습기를 품고 더위를 식혀줄만큼의 적당히 냉기가 흐른다.

용도폐기된 곳을 새롭게 단장하고 사람이 걷기에 적당한 밝기의 불을 밝히고 드문드문 작품을 설치했다. 제법 긴 터널을 걷는 동안 더위는 사라지고 이내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충분히 밝은 빛으로 가득하다. 나무, 사람, 물고기, 자전거, 창문ᆢ등 사람과 어우러지는 다양한 모습 형상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걷는 속도에 따라 밀려난다. 간혹 발길을 사로잡고 주목하게 만드는 빛도 있다.

터널이다. 갇힐 수 있다거나 막힌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기에 머뭇거림 없이 들어선다.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만나고 다가오는 모든 것이 일상에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왜, 삶이라는 시간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은 늘 머뭇거림과 함께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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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품은 선비 - 사계절 나무에 담긴 조선 지식인의 삶
강판권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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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가꾸듯 본성을 다스렸던 조선의 선비들

손바닥 만 한 뜰이 생기자 틈나는 대로 나무를 골라 심었다어떤 나무는 꽃을 보고자 함이요어떤 나무는 열매를 또 어떤 나무는 수피가 마음에 들어서 또 다른 나무는 그 나무에 담아둔 옛사람들의 마음을 나누고자 심은 나무도 있다그렇게 심은 나무가 시간이 지니며 무럭무럭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몸을 불러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나무가 자라듯 그 나무를 정성들여 가꾸는 동안 나 스스로도 나무를 닮아가며 자라고 있는 듯하다.

 

나무와 선비언 듯 생각하면 이 조합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어색함이 있다성리학으로 무장하고 철저하게 자신의 일상을 절제했던 조선의 선비를 떠올리는 것에서 가무악歌舞樂이나 나무와 같은 식물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하지만 선비의 학문하는 내용에 분명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자기수양에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양화소록'의 저자인 조선 초기의 문신 강희안이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역사와 문화 속에서 나무를 찾아보는 인문학자 강판권의 새 책 나무를 품은 선비는 바로 조선의 선비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나무와 선비의 함수관계를 따라가 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조선시대 성리학자의 삶이 서린 공간 속에 남아 있는 나무를 찾아 그 공간을 공유했던 선비정신을 밝혀 조선 선비들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보인다.

 

조식과 매화나무장유와 산수유이건창과 목련이상적과 살구나무장승업과 해당화조임도와 배롱나무이계호와 포도나무조성환과 회화나무조팽년과 구기자나무신흠과 박태기나무곽종석과 버드나무서해와 은행나무서유구와 단풍나무조덕린과 오동나무강희안과 석류나무박인로와 감나무,지엄스님과 소나무이광진과 백송윤선도와 대나무김종직과 차나무김득신과 잣나무

 

특정한 사람과 나무를 연관시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21명의 조선의 지식인과 나무의 조합이 무척이나 흥미를 불러온다이처럼 저자는 조선 선비들이 살았던 성리학 관련 공간을 직접 찾고그 내용을 사계절로 구분하여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몽골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심은 이건창 생가 앞 탱자나무조임도가 자신의 보금자리 주변에 심은 소나무국화매화대나무 풍경을 보며 그만의 무릉도원을 상상해보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선비와 나무이 낯선 조합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선비에 있다한 사람의 일생에 특별한 의미를 가질만한 나무를 연결하여 그 사람의 일생을 조망하는 과정이 나무를 품은 선비로 나타난다어쩌면 이런 시각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가꾸고 드러내는” 공부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가치관이 반영된 나무를 심고 가꾸며 그 나무와 함께 일상을 꾸려간 선비들이기에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보인다.

 

내 뜰에도 우연히 얻은 회화나무 한그루가 나와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시간을 채워가고 있다조선의 선비들이 회화나무를 심은 이유를 본받아 나무를 돌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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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다 받아드릴듯 활짝 열어젖힌 커다란 꽃잎에 어울리는 특이한 꽃술이다. 진한 주황색에 까만 점으로 수놓은 꽃잎의 화려함에 걸맞은 검붉은 꽃술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돋보여야 살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난 꽃들의 화려함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이런 치장은 살아서 대를 이어야하는 지엄한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고, 목숨보다 더 무거운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반면에 어떤 경우엔 화려한 외모에 기대 외로움이나 슬픔, 아픔을 감추기 위해서 치장을 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안으로든 밖으로든 이렇게 외모에 허세를 부린다는 것이 가져다 주는 공허함은 어쩔 수 없다. 이 공허함을 메꾸기 위해 날마다 화려해져만 간다. 겉모양뿐만 아니라 마음자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날로 화려함만을 찾아가는 마음은 외모의 화려함으로 소통을 꿈꾸지만 오히려 관계의 단절을 불러오는 경우를 빈번하게 목격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온갖 치장으로 자신을 꾸미고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아래 온전히 스스로를 내맡긴 참나리의 사명은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그 화려한 꽃잎을 떨구고 난 후 마지막 꽃술이 말라가는 그 간결함에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보듯 물기를 가득 머금은 꽃술에 마음을 얹어놓고 한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여름날의 오후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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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
어느해 여름날 강진 병영성을 둘러보고 하멜기념관 앞 화단에서 특이한 이름의 꽃을 만났다. 맑은 청색과 특이한 모습이 주는 호감으로 기억되는 꽃을 섬진강가에서 다시 만났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머리모양으로 부풀어 올랐다. 한껏 입을 벌리고 보여주는 텅 빈 속엔 무엇인지 모를 궁금함이 가득하다. 하얀색의 아랫입술엔 잘찾아오라는듯 유도선까지 마련해 두었다.


용머리라는 이름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듯한 모습이 연상된다고 해서 얻었다고 한다. 보는 시선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다른꽃과 다르지 않다.


들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꿀풀과 비슷한데 꽃의 크기가 확실히 더 크다. 늦은 봄에 피는 숲에서 피는 벌깨덩굴과도 닮았다. 꽃이 흰색으로 피는 것은 흰용머리라고 한다.


무더운 여름 뭉개구름 떠 있는 파아란 하늘의 색과도 닮았다.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는 '승천'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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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예술로 걷다'
-강필, 지식서재

여행이란 '어떤 길을 갈지는 스스로 선택하고 그 길을 가는 과정에서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시각에 동의 한다. 그곳이 국내든 해외든 동일하다. 

저자는 스페인을 '예술과 인문'이라는 키워드로 스페인 사람들의 삶과 문화, 역사를 경험한 과정의 결과물을 책으로 엮었다.

한반도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유럽 사람이 스페인 출신의 신부 세스페데스였다고 한다. 또한 20세기 초 스페인 사람 블라스코 이바네스는 "조선 기행문"을 펴냈다. 그들이 동양의 낯선 나라 조선을 바라본 것과는 사뭇 다른 조건에서 스페인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내겐 그들의 낯선 눈일 수밖에 없는 스페인이다.

'가우디와 돈키호테를 만나는인문여행'이라늗 저자의 눈에 담긴 스페인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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