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한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하고, 저녁 꽃은 화창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바람을 맞이한 꽃은 고개를 숙인 듯하고, 안개에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이내 낀 꽃은 원망하는 듯하고, 이슬을 머금은 꽃은 뻐기는 듯하다. 달빛을 받은 꽃은 요염하고, 돌 위의 꽃은 고고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 길가의 꽃은 어여쁘고, 담장 밖으로 나온 꽃은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수풀 속에 숨은 꽃은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옥李鈺의 글 중 하나다. 꽃을 보며 달라지는 느낌을 다양한 환경의 변화에 따라 비유하고 있다. 꽃과의 눈맞춤을 예사롭지 않게 보아온 사람만이 가능한 느낌이리라.

밤을 건너는 동안 제법 굵게 내리던 비가 날이 밝고도 한참이 지났는데 여전히 그 속내를 보이고 있다. 덕분에 마음의 여유가 생겨 느린 걸음으로 뜰을 거닐어 본다. 비에 젖은 꽃잎에 맺힌 빗방울이 꽃 속의 꽃이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인다'는 이옥의 말과는 달리 길을 헤매다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 앉아 쉬는 편안함이 보인다. 구절초, 둥근잎미국나팔, 미국나팔꽃, 해국, 물매화, 아스타, 쑥부쟁이, 꽃범의꼬리, 백일홍, 유홍초, 풍선덩굴, 여뀌, 미국쑥부쟁이, 다알리아, 흰꽃나도사프란, 당잔대, 세이지, 꽃댕강나무ᆢ깊어가는 가을을 그윽하게 만들어주는 내 뜰의 벗들이다.

오늘밤엔 달빛을 받아 요염한 물매화를 만날 수 있기를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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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승마'
짙은 녹색으로 어두운 숲 속을 스스로를 밝혀 환하게 비춘다. 큰 키로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자잘한 꽃술이 모여 만들어 내는 빛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순백의 색이 가지는 힘이 무엇인지를 알게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한줄기에 여러 가지를 내고 수많은 꽃들을 달았다. 큰 원뿔모양으로 뭉친 모습으로 흰색으로 핀다. 하얀 꽃이 마치 눈처럼 소복하게 쌓여 핀 모습의 아름다움에 주목하여 눈빛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가까운 식물들로는 승마, 눈빛승마, 촛대승마, 누운촛대승마 등이 있으며 비교적 구분하기가 쉽다. 할아버지의 긴 수염도 연상되지만 숲에서 사는 양의 수염으로 본 모양이다. '산양의 수염'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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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멈췄다. 층을 이룬 색색의 구름이 깊고 아득하게 펼쳐진다. 긴 하루를 무사히 건너온 이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거리 위안으로 삼는다. 고향이든 아니든 무거운 마음 내려놓을 곳을 찾아가는 모든이들의 마음에 다소곳이 스며들어 온기로 남길 소망한다.


멈춘 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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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실쑥부쟁이'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는 절교다!


*안도현의 '무식한 놈'이라는 시다. 시인의 기준으로 보면 절교당할 사람이 한둘이 아닌듯 하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분할 수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나는 나와 다른 나가 된다. 이 구분에 주목하는 것은 경험한 사람만 아는 일이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만 문제는 쑥부쟁이를 구분하는 일이다. 가을 들녘에 핀 꽃들 중에 쑥부쟁이를 구분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쑥부쟁이, 개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섬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섬쑥부쟁이 등 비슷비슷한 것들이 수없이 많아 구분하는 것이 만만치않다. 하여, 기회가 되는대로 한가지씩 알아간다.


연한 자주색과 연한 보라색으로 피는 것은 다른 쑥부쟁이와 비슷하다. 가장자리에 돌려난 혀꽃은 자줏빛이고 한가운데 뭉쳐난 대롱꽃은 노란색이다.


다양한 쑥부쟁이와 구분하는 기준으로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이름과 관련이 있다. 잎 표면을 손으로 문질러보면 까칠까칠하다고 해서 까실쑥부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잎을 만져보며 알아간다.


숲 속에서 나무 사이로 드는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모습에서 청순함이 묻어난다. '순정', '옛사랑'이라는 꽃말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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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비가 깊게도 내린다. 밤을 가로지르는 빗소리에 끝내 참지 못하고 골목 끝 가로등 밑에 서서 어둠 속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는 내리는지 솟는지 모르게 머리도 발도 모두를 적시고도 남아 흥건히 고였다.


"온몸을 적실만큼
가을비를 맞으면
그대는 무슨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내일을 가야 하는가"


*용혜원의 시 '가을비를 맞으며'의 일부다. 언제부턴가 내리는 비도 온전히 맞지 못하는 시간을 살고 있다. 이유야 없진 않지만 오는대로 다 맞았던 옛날의 그 비는 기억 속에만 잠들어 있다.


하지만, 몸은 그 때의 비를 기억하고 있나 보다. 그 빗소리에 마음도 몸도 어둠 속으로 내딛는다. 까만밤 내리는 비를 붙잡아두는 곳에 멈춰 비와 마주한다. 불빛을 품은 비가 쉼의 공간에 가까스로 멈춘 지점이다.


오늘밤도 품은 빛을 어쩌지 못하고 속으로만 밝아지는 비와 마주한다. 비로소 갈아 입을 옷 걱정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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