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素'
겨울 첫날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서예가 박덕준님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안으로만 파고드는 소리로 가만히 읊조린다.


소素=맑다. 희다. 깨끗하다. 
근본, 바탕, 본래 등의 뜻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근본 자리가 항백恒白이다.


겨울의 첫날이 가슴 시리도록 푸른하늘이다. 손끝이 저린 차가움으로 하루를 열더니 이내 풀어져 봄날의 따스함과 가을날의 푸르름을 그대로 품었다. 맑고 푸르러 더욱 깊어진 자리에 명징明澄함이 있다. 소素, 항백恒白을 떠올리는 겨울 첫날이 더없이 여여如如하다.


소素, 겨울 한복판으로 걸어가는 첫자리에 글자 하나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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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나를 말린다
며칠동안 볕을 볼 수 없었다고 타박했더니 가을 그 마지막 날 그것도 늦은 오후의 볕이 참으로 좋다. 사철나무 열매가 속내를 드러내는 양달을 서성인다. 아직 산을 넘지 않은 볕의 기운을 가만히 품어보기 위함이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난 내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박노해의 시 '가을볕'의 일부다. 애써서 가을과 이별하기에 좋은 날이라 위안 삼으며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겨울을 맞이하는 의식을 치루듯이ᆢ.


볕과 볕이 만나면 밝아지는 것이 순리다. 그 볕에 의지하여 사는 뭇 생명들은 그 만남으로 인해 두터워지고 깊어지는 진한 온기로 일상을 가꾸어 간다. 삶에 사람의 인연으로 겹이져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겨울이 춥지 않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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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2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구골나무'
지독하리만치 강한 향으로 유혹한다. 늦은 가을에서 겨울을 맞이하는 휑한 가슴에 향기라도 채위두라는듯 싶지만 과하다 싶은 향기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그래도 어디냐. 이 눈 내리는 추운겨울까지 피어서 눈맞춤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좀처럼 틈을 보여주지 않는 가지 사이로 긴 꽃술이 유난히 돋보이는 흰꽃이 피었다. 어린가지의 잎은 가시를 달아 스스로를 보호하지만 묵은가지의 잎은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목서와 모양도 꽃도 비슷한 모습이기에 혼동하기도 하지만 잎과 꽃의 모양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겨울날 별따라가신 아버지를 가슴에 담던 날, 동네를 한바퀴 돌다 초등학교 앞에서 마주했던 나무다. 기억에 없는 나무가 불쑥 나타나 아주 진한 향기로 온 몸을 감싸왔다. 특별한 나무로 다가왔기에 해마다 기일이면 눈맞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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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17-12-14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쳐지나면 호랑가시나문줄 알겠습니다. 더 이뻐보입니다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 '나무를 심는 사람'
-유영만ㆍ장지오노ㆍ피터베일리, 나무생각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들과 산으로 식물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품 속으로 나들이를 다니며 실감하는 레이첼 카슨의 말이다. 무심히 그 품 속에 그냥 들어서서 다가오는 무엇이든 다 가슴에 품을 수 있었던 경험은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내적 자산이 되었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의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와 장지오노의 글과 피터 베일리의 그림으로 구성된 책을 유영만 교수가 우리말로 옮긴 '나무를 심는 사람'을 함께 만난다.


"나무에게는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 곁에 함께하는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러 책장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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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다.
"기다림은 세상을 보는 눈을 찾는 일이다." 최준영의 책 '동사의 삶'에 나오는 문장이다. 한 권의 책을 닫으며 문장 하나를 기억한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요즘들어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욱 주목해 본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는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을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과 함께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아는 무엇을 이야기 한다. 그 중심에 그리움이 있다. "너였다가/너였다가,/너 일 것이었다가/"


섬찟한 가시로 무장하고 접근을 거부하는 나무의 겨울눈이다. 시간을 들여 지켜보는 그 중심에 기다림이 있다. 새싹을 낼 힘을 키워가는 나무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감정의 교류다. 봄이든, 희망이든, 시간이든, 너이든ᆢ. 다른 무엇을 담아 기억하고, 보고, 찾고, 생각하며 내 안에 뜸을 들이는 일이 기다림이다. 그렇게 공구한 기다림 끝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꽃을 볼 기회가 궁한 때다. 안 보이던 곳이 보이고 미치지 못했던 것에 생각이 닿는다. "기다림은 세상을 보는 눈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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