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나무'
차가운 겨울 숲에 들어 눈이 숲의 빛에 익숙해질 때까지 숨을 죽이고 섰다. 숲이 맨몸으로 속내를 보여주는 때라 조심스러운 발걸음이다. 이때 숲을 찾는 묘미 중 하나는 나무와 오롯이 눈맞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잎에 꽃에 열매에 주목하다 미쳐 살피지 못했던 나무의 몸통과 만난다.


차가운 손을 뻗어 나무의 몸통을 만진다. 나무마다 거치른 정도가 다르고 온도도 달라 눈을 감고 만지는 느낌 만으로도 알 수 있는 나무가 몇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이 고광나무다. 맨손으로 잡아도 차갑지 않고 온기마져 느껴진다. 나무의 수피가 주는 포근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꽂만 보고 내가 사는 이곳 남쪽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쪽동백과 혼동하여 한동안 들뜬 기분을 안겨주었던 나무로 기억된다.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초여름에 피는 순백의 꽃도 한겨울 수피가 전해는 포근함도 다 좋아 내 뜰에도 있는 나무다.


나무가 사람과 공생하며 전하주는 이야기 속에서 꽃말은 만들어진다. 후대 사람인 나는 그 이야기를 역으로 추적해 본다. '추억', '기품', '품격' 다 이 나무와 잘 어울리는 꽃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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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리 내렸다. 제법 차가움의 힘 쎄 보인다. 하지만, 이 차가움은 아침 햇살에 금방 녹아버릴 순간의 머뭄이라는 것을 안다. 더던 아침 해가 동짓날 긴긴 밤을 건너기 버거웠는지 늑장을 부리고 있다.


익숙한 온기를 벗어나 머리를 깨우는 차가움 속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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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문선'
-정민,안대회,이홍식,이종묵,장유승 편역 외 1명, 민음사 

욕심나는 책이다. 오래전에 나온 태학사 발행 산문선을 즐겨 찾다가 새롭게 발간된 한국 산문선을 발견했다. 산문이 가지는 매력에 푹 빠져 관련 책을 모으고 있다.

1. 우렛소리 
2. 오래된 개울 
3. 위험한 백성 
4. 맺은자가 풀어라 
5. 보지 못한 폭포 
6. 말 없음에 대하여 
7. 코끼리 보고서 
8. 책과 자연 
9. 신선들의 도서관

갈등 중이다. 9권 짜리 세트를 한꺼번에 들여와 처마에 달린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읽어도 좋겠고, 한달에 한권씩 새로운 기분으로 만나도 좋겠다. 어떤식으로 만나던 반가울 책이기에 올 한해 많은 시간을 선인들의 산문 속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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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기대하게 만드는 저물녘의 시간을 건너는 해가 붉다. 긴 하루를 수고로움으로 건너온 해는 무엇이 부족하여 저토록 붉은 여운을 남기면서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산을 넘는 것일까. 눈 한번 깜박이고 나니 이미 해는 보이지 않는다.


하루를 수고로움으로 건너온 모든 이들의 허한 마음을 다독이기라도 하려는듯 붉은 마음을 내놓고 사라진 해의 그림자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눈은 올까. 많은 눈을 예고한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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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덩굴'
푸른 잎이 단풍들어 떨어질 무렵까지 토담벽에 기대어 살면서 꽃이 피는지 열매가 맺는지도 모른다. 홀로서는 설 수 없어 기대어 살지만 애써 드러내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잎이 무성해지는 어느날 담쟁이덩굴의 사이에는 웅성거림이 있다. 벌들이 모여 꿀을 따는 소리다 그것이다. 기대어 살 수밖에 없지만 다른 생명을 품고 나눌줄도 아는 것이다. 생명의 본래 마음자리가 그렇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도종환의 시 '담쟁이'의 일부다. 담쟁이덩굴을 이해하는 시인의 마음에 공감한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주는 잔잔한 감동과도 맥을 함께하고 있다.


담쟁이덩굴이라는 이름은 담장에 잘 붙어서 자란다고 하여 '담장의 덩굴'이라고 부르다가 '담쟁이덩굴'이 되었다. 한자 이름은 돌담에 이어 자란다는 뜻으로 '낙석洛石'이라고 하여 같은 뜻이다.


토담에 이어진 건물벽을 감싸던 담쟁이덩굴을 실수로 자르고 말았다. 그흔적이 그대로 남아 화석처럼 말라간다. 자연스럽게 잎이 떨어지는 때를 기다려 다른 담쟁이덩굴의 모습을 보려고 한다.


대상에 기대어 사는 모습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엿보고자 한 것일까. '우정'이라는 꽃말이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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