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를 팔아 밥을 해 먹고 與李洛瑞書九書 四

집 안에서 값나가는 물건이라곤 겨우 '맹자' 일곱 권뿐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이백 전에 팔아 그 돈으로 밥을 지어 실컷 먹었소. 희희낙락 영재(유득공)에게 가서 한껏 자랑을 늘어놓았더니 그도 굶주린 지 벌써 오래라, 내 말을 듣자마자 즉각 '좌씨전左氏傳'을 팔아 쌀을 사고 남은 돈으로 술을 받아 내가 마시게 했소. 이야말로 맹자씨가 직접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명 씨가 손수 술을 따라 내게 권한 것과 다를 바 없지 않겠소. 그래서 나는 맹자와 좌구명 두 분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칭송했다오. 그렇다오. 우리들이 한 해 내내 이 두 종의 책을 읽는다고 해도 굶주림을 한 푼이나 모면할 수 있었겠소? 이제야 알았소. 독서를 해서 부귀를 구한다는 말이 말짱 요행수나 바라는 짓임을. 차라리 책을 팔아서 한바탕 술에 취하고 배불리 밥을 먹는 것이 소박하고 꾸밈없는 마음 아니겠소? 쯧쯧쯧! 그대는 어찌 생각하오?


*이덕무와 유득공 두 친구가 긴 굶주림 끝에 보란듯이 책을 팔아 호쾌하게 한끼 밥을 먹고 술을 나뉘 마신 다음 이서구에게 사연을 전해준 편지글이다.


궁핍이 가져다준 웃지 못할 이야기지만 벗이 있어서 익살로 살아난다. 벗의 속내를 흥쾌히 받아준 친구의 마음 나눔이 귀하기만 하다. 이런 벗의 사귐이 어디 옛사람들의 글 속에만 있을까만 늘상 그리운건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부끄러운 속내를 털어놓고도 염려가 생기지 않은 일이 이처럼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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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섬으로 가다'
-김선미, 나미북스


여전히 나무는 매력적이다. 한겨울 나무의 민낯을 보면 나무의 사계절이 보인다. 새 잎나서 푸르러 단풍들고 낙엽지는 생의 짧은 주기를 한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 사람보다 긴 세월을 살지만 1년 주기로 사계절의 변화를 확인하는 매력이 있다.


그 나무에 관한 내용이다. "수만 그루 나무가 자라는 남이섬은 나무섬이다. 본래 밤나무, 뽕나무 등이 간간이 자라던 모래땅에 지금처럼 울창한 숲이 들어선 것은 일찍이 '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연이 함께 한다.


나무 여행자 김선미의 남이섬으로 나무 여행의 결과물이 이 책으로 엮였다. 입춘 무렵부터 대한 즈음까지 매달 사나흘, 밤낮으로 나뭇길을 걷고 숲속을 떠돌며 나무와 무언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깊은 사색에 빠져든 이야기다.


나무는 남이섬이나 깊은 산, 숲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어느 곳이든 크고 작은 수많은 나무들이 함께 산다. 이 책이 내 옆 나무에게 눈길 주며 인사 나누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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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칼을 들면 어떻게 될까. 이 좋은 볕이 무색하게 시린 바람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드문드문 산을 넘는 구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듯 어느덧 반을 채운 낮달이 무심하게 얼굴을 내밀 있다.


초록이 그리운 때, 겨울 숲을 찾는 묘미 중 하나는 생명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나는 것이다. 나무의 겨울눈과 언땅을 뚫고 솟아나는 꽃과 푸르름을 간직한 이끼류가 그것이다. 움츠려 숨죽인듯 보이지만 그 속엔 생명이 꿈틀대고 있다.


바람이 아무리 드세더라도 볕을 이기진 못한다. 제 기운만 믿고 설치다 치친 바람이 잠깐 쉬는 사이 볕이 좋은 곳에 앉아 낮달과 눈맞춤 한다. 반달이 수줍은듯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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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나무'
겨울을 닮은 나무가 뭘까. 춥고 헐벗었지만 날까로운 가시로 단단하게 무장한 것이 찬바람에 눈보라치는 겨울과 닮았다. 고스란히 민낯을 보여준다지만 어디 보이는게 전부랴.


커다란 잎사귀를 떨구면서 이미 준비를 시작한 새순을 노리는 생명들이 많다. 그중에 가장 난폭하고 무자비한 것이 사람이다. 쌉쌀하고 달콤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맛 때문에 아는 사람들은 놓치지 않은 봄맛이다.


나무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단연코 가시다. 감히 범접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한다지만 그것도 어릴 때만 갖는다. 생존이 걸린 문제지만 성장한 후엔 여유롭기도 하다.


사는 마을 어느집 담장을 따라 제법 굵은 나무 여러 그루가 있다. 험상궂은 가시가 돋아 있는 음나무 가지는 시각적으로 귀신이 싫어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벽사의 의미를 두어 담장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몸통에서 새순까지 사람들의 삶에 깊숙히 관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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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
이춘기 지음, 이복규 엮음 / 학지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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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리움일까

시린 겨울이면 아버지를 떠올린다어느 겨울 새벽 유난히 별이 밝았던 날 먼 여행을 떠나신 그 겨울이다가난한 농촌 집안의 장남으로 때어나 땅을 일구며 일가를 이루시기까지 말로 다하지 못할 일상을 한국 현대사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아버지 세대들이 고스란히 겪었을 그 모든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다른 한 사람을 만났다전리북도 지금의 익산 지역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살다 간 이춘기(1906~1991) 옹이 그분이다이 책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 는 이춘기옹의 일기다. 1961년부터 1990년까지 30년 세월이 하루도 빠짐없이 담겨있다.

 

농촌지역에서 과수농사를 지으며 어려운 경제활동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래왔듯 자식 교육에 매진하여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곳곳에 담겼다아내를 먼저 보내고 겪게 되는 일상의 어려움과 주변 사람들의 강압에 못 이겨 재혼하고 다시 파혼하는 과정을 비롯하여 한 농촌 가정이 겪을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일꾼이나 품앗이를 비롯한 농촌지역의 공동체문화를 비롯하여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생활문화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비롯한 굵직했던 현대사의 한 흐름 속에서 한 개인이나 농촌 지역사회가 공통으로 감당해야할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한 시대를 아우르는 생활문화 전반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한 개인의 이와 같은 기록이 갖는 가치는 무엇보다 크다앞선 시대인 조선의 선비들의 개인적 기록이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대정신을 반영한 삶의 지혜를 전해주듯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로 정리된 이 일상의 기록 역시 그와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시대상을 반영하고 한 시대의 생활방식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민속을 증거 할 자료로도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어 그 가치는 더 높아진다고 본다.한 개인의 지극히 사소한 기록이 가지는 가치를 재발견 하는 시간이다.

 

1938년 생이셨던 내 아버지보다 한 세대 앞선 사람이 몸으로 그려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다나와는 다른 세대의 이야기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지던 기억 속 농촌의 모습과 다르지 않으며내 기억 속 아버지의 삶과도 다르지 않다다른 이의 기록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공감대의 발로이리라.

 

한국 땅에서 태어나 머나먼 타국에서 삶을 마감한 일상을 따라가는 것이 앞선 세대에 대한 채무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감당하기에 버거운 무게로 다가온다이춘기 옹의 삶에 비추어 보며 자꾸 반복해서 먼 하늘을 바라보는 것어쩌면 그리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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