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문선 8', - 책과 자연
-서유구 외 저, 안대회 이현일 편역, 믿음사


한국산문선 8권은 권상신, 이옥, 남공철, 심노숭, 서유구, 김조순, 김려, 정약용, 서기수 등 정조 시기에 교육을 받아 창작을 시작하고 순조 시기에 왕성하게 쓴 문장가 23명의 산문 70편을 엮었다.


앞 시대 영조 후기에 일어난 소품문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 더욱 풍부한 문장을 펼친 때로 정조와 순조 년간에 이르는 시기다. 다양한 신분과 처지의 역량 있는 작가들이 도전적인 주제, 참신한 문체, 신선한 시각을 담은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인다.


단연코 '이옥'에 주목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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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밤 하얘지라고 눈이 내린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눈은 빠르게 땅에 닿고 닿는대로 쌓인다. 순식간에 높이를 더하여 땅의 높고낮은 경계를 허문다.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듯 깊어가는 밤의 정적을 깨우는 눈이다.


폭설이다. 입춘도 지난 때 폭설을 만나는 낯선 경험이 싫지가 않다. 꽃 피기를 기다리는 간절함을 시샘이라도 하는듯 하늘의 변덕이 요란하다. 꽃을 향한 그리움이 깊다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눈오는 밤의 운치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뜰에 서서 하늘과 마주 한다.


눈속에서 여물어 더욱 깊어질 봄의 그윽한 향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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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서 막 깨어나는 노루귀와 눈맞춤하고 나니 시간이 흐를수록 얼마나 더 피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다시 보고자 입춘에 길을 나섰다. 생각보다 많은 눈으로 덮인 숲에서 새생명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고 험난한 여정이다.


노루귀 보았던 비밀의 숲은 설국이라 지난번 보았던 개체의 상태만 겨우 확인하고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지난 봄 계곡을 내려오며 발견했던 몇몇 곳의 노루귀 터전이 궁금해서다.


얼어붙은 계곡물 위에 쌓인 눈을 헤치고 스틱으로 꼼꼼하게 두드려 확인하며 거슬러 오른다. 눈에 익은 장소마다 멈춰서서 눈 위로 드러난 흔적을 확인하지만 쌓인 눈을 뚫고 올라온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눈이 녹을 시간동안 안으로 성장했을 노루귀를 기대해 본다.


계곡의 끝에서 만난 소나무다. 한 뿌리에서 나 하늘 향해 나란히 뻗어가다 나란히 누웠다. 그 나무의 기울기가 허락한 터전에 소복히 내려앉은 눈이 제법 두텁다. 눈이 감지하는 눈의 두께와는 다르게 하얀 눈이 주는 무게감은 훨씬 가벼워 보인다.


숲은 계절에 따라 스스로 속내를 보여줄 경계를 마련해 두었다. 가장 깊숙하고 은밀한 곳까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시간이 이 겨울이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겨울숲으로 들어가는 이유다. 숲으로 난 길의 마지막에서 겨우 보이는 하늘을 보며 깊고 긴 숨을 들여마신다. 숨이 가빠오도록 호흡을 멈춘다.


차고 맑고 깨끗한 겨울 숲의 정기精氣를 가슴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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飮茶之法은 客衆則喧이니 喧則雅趣索然이라 獨日神이요 二客日勝이요 三四日趣요 五六日泛이요 七八日施也니라


차를 마시는 법은 한 자리에 차 마시는 손님이 많으면 주위가 소란스러우니, 소란하면 고상함을 찾을 수 없다. 홀로 마시면 신神이요, 둘이 마시면 승勝이요, 서넛은 취미요, 대여섯은 덤덤할 뿐이요, 칠팔 인은 그저 나누어 마시는 것이다.


*동다송東茶頌의 한 구절이다. 동다송은 조선 후기 승려 초의草衣가 다도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우리나라 차에 대하여 송頌 형식으로 지은 책이다. 모두 31송으로 되어 있고, 송마다 옛사람들의 차에 관한 설이나 시 등을 인용하여 주를 붙였다.


첩첩산골 길이 끝나는 마지막 분지에 둥지를 틀었다. 주인은 자연 속에 잘 어우러진 터전에서 도자기를 굽는다. 그곳에 둥지를 튼 이의 다실에 붙은 동다송이다. 번잡함을 피한 곳이라 굳이 사람을 청하지는 않으나 오는 이를 막아서지도 않아 보인다. 주인장의 익숙하게 차를 우려내는 모습에서 차향이 배인 단정함이 묻어난다.


언젠가 주인이 자리를 비운 그곳에 앉아 나 스스로를 위한 차를 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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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섬으로 가다 - 열두 달 남이섬 나무 여행기
김선미 지음 / 나미북스(여성신문사)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사계절 나무를 찾아간 사람이야기

숲에 든다사계절 열두 달을 같은 곳에 들어 식생의 변화를 살핀다계절에 따라 변하는 숲은 한순간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며 마법과도 같은 생명의 힘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뿌리내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이 보여주는 변화로 시기를 알 수 있고 다음에 벌어질 상황을 미리 짐작할 수도 있다매번 같은 숲을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전히 나무는 매력적이다한겨울 나무의 민낯을 보면 나무의 사계절이 보인다새 잎이 나서 푸르러 단풍이 들고 낙엽 지는 생의 짧은 주기를 한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사람보다 긴 세월을 살지만 1년 주기로 사계절의 변화를 확인하는 매력이 있다나무에 주목하여 사계절을 함께 지내는 것이 주는 흥미로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이다.

 

그 나무에 관한 내용이다남이섬은 강원도 춘천 북한강 가운데 자리한 섬이다남이섬은 수목원이 아니지만 메타세쿼이아전나무왕벚나무은행나무잣나무튤립나무자작나무중국굴피나무산딸나무 등220여 종의 나무가 숲을 이룬다숲은 1960년대부터 모래땅에 나무를 심어 가꾼 결과라고 한다.

 

나무 여행자 김선미의 남이섬으로 나무 여행의 결과물이 이 책으로 엮였다입춘 무렵부터 대한 즈음까지 매달 사나흘밤낮으로 나뭇길을 걷고 숲속을 떠돌며 나무와 무언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깊은 사색에 빠져든 이야기다같은 길을 시간을 달리해서 찾고 유심히 바라보며 걷는 동안 나무가 보여주는 신비로운 변화를 확인한다.

 

소나무참죽나무와 가죽나무가래나무모감주나무산딸나무와 미국산딸나무버드나무산수유와 생강나무비자나무와 개비자나무수국불두화백당나무이팝나무자귀나무자작나무목련쪽동백튤립나무히어리 등의 나무가 등장한다대부분 알고 있고 구분할 수 있는 나무라 저자의 이야기가 한결 친근하게 다가온다.

 

알 수 없었던 나무의 이름을 알게 되는 재미와 그 이름을 알고 난 후 한층 가깝게 보이는 나무를 만나 교감하는 이야기다다른 장소로 옮겨 심는 나무먼 곳으로부터 남이섬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온 나무의 사연그런 나무를 심고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곁들여진다이 책에서 김선미의 의미 있는 행보는 시간을 달리해 같은 곳을 반복해서 방문하고 그곳의 나무를 살핀다는 점이다그 의미 있는 행동이 주는 변화는 바로 관찰자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무는 남이섬이나 깊은 산숲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사람이 사는 어느 곳이든 크고 작은 수많은 나무들이 함께 산다한번 보고 마는 나무보다는 늘 가까이 두고 자주 눈맞춤할 수 있는 나무 하나를 두고 사계절을 함께 지내다보면 나무가 전하는 계절별 인사를 통해 내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이처럼 이 책이 내 옆 나무에게 눈길 주며 인사 나누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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