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을 모았다지만 과하지 않다. 소박한 민초들의 삶 만큼이나 소박한 소원이니 굳이 오색 댕기와 같은 과한 치장도 필요 없으리라. 왼쪽으로 꼰 새끼줄을 일곱번 허리에 두르고 정갈한 마음 처럼 하얀 종이를 고이 접어 걸어두는 것이면 마땅했으리라.


더 크고 웅장한 위쪽 할아버지 나무를 두고 잘려나간 가지로 인해 더 애뜻한 할머니 나무에 두손 모아 마음을 얹어 놓았다. 깊은 사연과 뜻하는 바가 있어 할머니 나무에 금줄을 걸었을테지만 길손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420여 년을 한자리에서 살았다고 하니 세월을 짐작도 못한다. 대나무 숲 우거진 마을 입구에 서서 들고 나는 뭇생명들의 안부를 챙겼으리라.


정갈한 마음으로 나무 둘레를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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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부채'
꽃소식 따라 몸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도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꽃이 있기 마련이다. 알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야기 꺼리도 못되지만 먼 곳이거나 가까이 있어도 때를 놓치면 볼 수 없어 언젠가 볼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눈을 녹이면서도 생명의 열정을 보여주는 앉은부채도 그렇게 보고 싶은 식물에 속했다. 지난 겨울에서야 멀지 않은 곳에 자생지가 있다는 것을 접하고 두 번째 발품을 팔아 눈맞춤 했다. 조금 늦은 때라 새 잎이 올라온 것까지 볼 수 있어 이제는 잎을 보고도 알아볼 수 있겠다.


'앉은부채'라는 이름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부처님과 닮아서 '앉은부처'라고 부르던 것이 바뀐 것이라고 하고, 잎이 땅에 붙어 있고 부채처럼 넓게 펼쳐진 모양 때문에 앉은부채라는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앉은부채는 꽃을 피울 때 스스로 열을 내고 온도를 조절하는 신비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눈을 녹이면서 꽃을 피울 수 있나 보다. 봄 눈 다 녹은 후에 가까스로 눈맞춤했다.


우엉취·삿부채풀·삿부채잎이라고도 하는 앉은부채의 꽃말은 '그냥 내버려 두세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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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봄인 게다'
모든 생명의 그 본성은 붉다. 제 아무리 꽃들이 화려한 색과 몸짓으로 봄을 불러온다지만 그것은 다 서막에 불과하다. 봄은 언땅을 뚫고 올리오는 새순의 붉음을 보아야 비로소 시작된다. 봄을 새로운 희망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봄앓이가 서럽도록 아름다운 것은 붉은 생명의 속내가 꿈틀대기 때문이다. 붉은 생명의 기운이 생동하는 작약의 새순으로 내 봄을 맞이하는 근본으로 삼아도 좋으리라.


내 속이 붉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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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의바람꽃'
이른 봄, 꽃을 보고자 하는 이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것으로 치자면 바람꽃이 선두에 선다. 아직은 냉기가 흐르는 숲의 계곡을 엎드리게 한다.


화려한 변산바람꽃을 선두로 성질급하게 빨라 지고마는 너도바람꽃, 작지만 단아한 만주바람꽃 그리고 이 꿩의바람꽃이라는 이름을 단 친구들이다.


햇볕에 민감한 꿩의바람꽃은 꽃잎처럼 보이는 제법 큰 꽃받침잎을 활짝 펼치고 숲의 바람에 흔들거린다. 색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다른 바람꽃과는 순수한 멋이 있다.


바람의 신과 아네모네에 관한 전설이 숨어 있는 꿩의바람꽃은 ‘덧없는 사랑’, ‘금지된 사랑’, ‘사랑의 괴로움’ 등 여러 가지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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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 옆에 있어야 하는 것 
사루비아 다방 김인 대표는 '차의 기분'이라는 책에서 '책 읽는 사람 옆에 있어야 하는 것'으로 '찻잔'을 이야기 한다.


볕좋은 봄날 오후 그 볕에 기대어 책 읽는다. 책 읽는 내 옆에 무엇이 있나 떠올려 본다. 먼저, 손때 묻어 이야기가 더해가는 '참죽나무 책갈피'가 있다. 만지는 촉감이 좋고, 보는 색감이 다정하며, 책과 이웃인 나무라서 좋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손에 들고 있으면 외롭지 않아서 좋다. 
다음으로는 못하는 것이 없어 썩 마음에 드는 휴대폰이다. 여전히 단어의 함축된 의미를 사전에 의지하는 사람이고, 이제는 작은 메모라도 할라치면 펜이 아니라 엄지손가락으로 휴대폰을 두드리는 것이 익숙해진 까닭에 늘 함께 한다.
또다른 하나는 다양한 종류의 열매나 씨앗이다. 생명을 품고 있는 그 무한의 가능성에 매료된 까닭이다. 무환자나무 열매를 시작으로 인연따라 왔다가는 열매들이 있다. 지금은 앙증맞은 풍선덩굴의 씨앗 하나가 함께 한다.
이제는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 찻잔이 그것이다. 잔이 아닌 컵을 대신해 커피나 물이 아닌 차를 둬야겠다. 오랜시간 일부러 멀리했던 차를 찻잔을 핑개로 다시 마주하고자 한다.


마알간 봄볕에 묵은 찻잔을 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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