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조금 남겨 뒀어요.
다음에 오는 바람 섭섭하지 않게ᆢ.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탱자나무'
뽀쪽한 가시로 중무장 했다. 지겨야할 무엇이 있기에 날카로움을 밖으로 세웠다. 단단한 나무고 깊숙히 열매를 품고 있기에 나름 방비를 갖췄다고 여겨지지만 가시까지 무장한 것으로 봐선 지키고자 애쓰는 것이 꼭 자기자신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풀어헤쳐진 꽃잎의 자유분방함에 하얀색으로 유독 빛난다. 윤기나는 연초록 잎과 눈부시도록 하얀 꽃의 어울림이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한다. 여기에 향기까지 있어 탱자나무가 가지는 그 넉넉함은 넓고 깊다.


탱자나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위리안치圍籬安置다. 귀양 보내 주거지를 제한하는 형벌로서 집 주위에 탱자나무를 빙 둘러 심어 바깥출입을 못하게 한 것을 말한다. 시골 마을엔 울타리용으로 가꾼 흔적은 지금도 더러 남아있다.


열매, 뿌리, 껍질 등은 약재로도 쓰였고 요즘은 열매로 차를 담아 음용한다. 또한 소리꾼의 북을 치는 북채로는 탱자나무로 만든 것을 최고로 친다. '추억'라는 꽃말을 가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의순공주 - 조선이 버리고 청나라가 외면한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느냐

'조선이 버리고 청나라가 외면한수식어가 주는 아픔에 앞서 '의순공주'가 어떤 인물인지가 궁금하다역사 속의 기록된 문헌을 찾아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행간을 읽어내는 스토리텔링의 탁월한 묘미를 보여주는 작가 설흔을 통해 만난다.

 

"의순공주(義順公主, 1635~1662)는 조선 효종의 양녀이다종친 금림군 이개윤의 딸로 본명은 이애숙(李愛淑)이다순치제의 섭정왕이자 계부였던 도르곤의 계실 대복진이다. 1650년 12월 31일에 도르곤이 사망하여 도르곤의 조카이자 부하 장수였던 친왕 보로에게 재가하였지만 보로 또한 1652년 2월에 사망하여 홀로 지내다가, 1656년 4월에 청 연경에 봉명사신으로 온 아버지 금림군이 순치제에게 요청하여 그녀를 다시 조선으로 데려왔다. 1662년 8월에 사망하여 경기도 양주군 양주면 금오리에 안장되었다."

 

-'의순공주'에 대한 위키백과의 설명이다. "종친의 딸에서 조선의 공주중국 황실의 부인그리고 화냥년이 되기까지조선시대 비극의 역사가 담긴 의순공주의 일생"을 담았다여전히 역사 속 의순공주 보다는 작가 설흔이 펼쳐갈 시각과 문장에 담긴 이야기에 대한 강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병자호란 이후청나라는 조선에게 왕의 누이나 딸혹은 왕의 근족(近族)이나 대신의 딸 가운데” 참한 여자를 청황실에 시집보내라고 요구한다오랑캐 나라에 딸을 보낼 수 없다고 여긴 효종은 이내 금림군 이개윤의 딸 애숙을 양녀로 삼아 의순공주라고 작위를 내리고 진짜 공주를 대신해 시집보낸다.

 

삼전도 굴욕의 여파일지도 모른다북벌을 이야기하지만 뜻은 없어 보이는 북방정책과 국내정치의 혼란 속에서 국왕과 근족대신에 이르기까지 지켜야할 명분과 실리를 두고 치른 한바탕 소동의 결과가 의순공주로 나타났다.

 

역사적 팩트를 실마리로 국제 관계국내 정치정세 속 세력이나 개인들의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전개방식이 독특하다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이끌어 가는 듯 싶지만 늘상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듯 풀어가는 이야기의 전개방식에서 설흔의 작가적 상상력을 다시 한 번 확인 한다.

 

조선시대 왕과 근족으로 대표되는 조선 남자들의 비겁함과 유교의 도리라고 불리는 덕목들의 부조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라고 읽히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바가 없지는 않으나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보여주는 희극적 요소가 오히려 아픔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보면 유교적 도리를 강조하나 그것이 지향하는 바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되묻고 있다그 질문에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었던 유민주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 부르는 모란송가牡丹頌歌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일부다. 도대체 모란이 뭐라고 묘목을 사다 심기를 그토록 반복하는 것일까.


올해 새로 심은 백모란만 해도 10여 그루다. 5년 만에 첫 꽃으로 슬프도록 붉은색의 모란 두송이를 피웠던 나무는 잎만 무성하고, 지난해 첫 꽃을 피웠던 순백의 숭고한 백모란 다섯 송이로 늘었다.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을 심고 가꾸며 꽃을 피울 봄날을 기다리는 심정이 이 말 말고는 무엇으로 다할 수 있을까. 남은 다섯 날 만이 그 꽃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긴긴 삼백 예순 날을 기꺼이 기다린다.


어찌 모란뿐이겠는가. 앞으로 몇 번 더 모란이 피는 것을 볼 수 있을까. 매 해 새 봄이라 부르며 맞이할 숭고한 시간을 그 누구도 장담 못하기에 이 모란이 피는 봄날이 눈부시도록 찬란한 나의 봄이다.


날마다 화양연화花樣年華를 읊조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숭고하게 피어올라 처절하게 지고마는 모란이다.


다시,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월든'
-핸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박현옥 옮김, 위즈덤하우스

소박한 농촌 마을에 삶의 터를 옮기고 어느덧 7년, 넓은 하늘과 막힘 없는 전망, 밤하늘의 달과 별빛, 아침 안개에 많은 눈, 다양한 새와 먼 산 고라니 소리까지 눈과 귀를 예민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차고 넘친다.

딱히, 무엇을 원하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태생이 시골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변화다. 달라진 것은 촌스러운 겉모습이 아니라 더 부드러워진 마음가짐이다.

'월든', 2년 2개월 2일, 시간의 무게 보다는 깊이를 생각해 본다. 보았는지 들었는지 겪었는지 알 수 없고 내용도 가물거리지만 지극히 익숙한 이야기다.

지금 나는 '월든'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