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꽃
낯선 숲길은 언제나 한눈 팔기에 좋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익숙하면서도 늘 새로운 생명들이 있어 숲을 찾는 이들을 반긴다. 한눈에 알아본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사진을 보고 눈에 익힌 결과다.


작은 꽃대를 곧추 세웠다. 반듯한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기품을 느낀다. 꽃봉우리를 만들어 자잘한 꽃들을 달아 주목받는다. 키도 작고 꽃도 작은 것이 홀로 또는 무리지어 피어 꽃대를 받치는 초록의 두툼한 잎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모내기가 끝난 논에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는 그 새를 닮았다. 꽃의 잎과 잎맥 모양이 두루미가 날개를 넓게 펼친 것과 비슷해서 두루미꽃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영낙없는 그 모습이다.


마치 오기를 기다렸다는듯 30년 만에 찾은 세석평전 일대에서 첫눈맞춤 한다. 두루미의 고고한 자태를 닮은 것과는 달리 '화려함', '변덕'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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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000 번째의 글을 향해 출발한다.


“시우時雨, 고운 비 오신다.
정갈한 마음자리에 고이 담아두었다가
내 뜰에 들어와 꽃으로 핀 그대에게 내어드리리.ᆢ“


이 글을 시작으로 출발했다. 2015. 7. 11부터 ‘꽃마음편지’라는 테마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꽃을 만나며 그날그날 중심적인 생각을 엮어보자는 의미로 시작된 것이다. 목표는 1000 번째 글을 채우는 것이었다. 거의 3년이 지난 오늘 그 1000 번째 글을 쓴다.


첫 번째 글로부터 1000 번째 글까지 오는 동안 무엇이 달라졌을까? 우여곡절도 있었고 마음을 붙잡았던 사건도 사람도 많았지만 스스로 변했고 달라졌다. 대부분의 실마리는 꽃으로부터 시작되지만 날씨도 풍경도 하늘도 그 하늘의 달도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를 매개로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에게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지금까지 써온 글을 처음부터 돌아보며 되새김해 볼 요량이다. 부족한 것은 보테고 넘치는 것은 덜어내는 작업이 마무리되면 나 혼자만의 것이 될지라도 책으로 엮어볼 생각도 있다. 3년 걸려 쓴 글이니 언제 마무리될지는 나도 모른다. 중복된 내용도 있을 것이고 무슨 말인지도 모를 애매모호함도 있을 것이기에 내 스스로 민망함을 줄여보고자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2000 번째의 글을 향해 출발한다.
무엇을 어떻게 엮어갈지 모르나 지금까지 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 온 3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글쓰기는 중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무심코 내 마음을 붙잡는 무엇이 있다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라도 그 흔적을 남겨보고자 한다.


어제 같은 오늘이면 다행이고, 오늘 같은 내일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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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8-06-1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 번째 글 축하드립니다.
전에 어디선가 보니 무진님 언젠가 모범장서가로 선정되셨던 것 같던데 맞으시죠?

무진無盡 2018-06-15 21: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오레전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
 

이 5월에ᆢ. 살아가는 동안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기만하게 만들었거나 혹은 억지로 묻어두어야 했던 희망의 꿈을 꾼다. 이토록 당연하고 어쩌면 쉬워보이기까지한 그 꿈이다. 여느 5월과는 확연하게 달랐던 5월의 끝자락이다.


매서운 겨울의 눈보라가 봄의 화려한 꽃향기를 준비했듯 나풀거렸던 봄향기로 맺은 열매는 이제 여름의 폭염이 굵고 단단하게 영글게 할 것이다.


미쳐 보내지 못한 봄의 속도보다 성급한 여름은 이미 코앞에 당도해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짐작되는 변화보다 예측할 수 없이 당면해야하는 폭염 속 헉헉댈 하루하루가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그 숲 속을 걷거나, 숲 속에 서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숲이 전해준 위안을 꺼내보며 스스로를 다독일 것이다.


환하게 밝은 저 길로 들어서면 반겨 맞이할 무엇을 기대하기 보다는 그 길 위를 함께 걷는 그대가 곁에 있음을 더 큰 위안으로 삼는다. 앞서거나 뒤따르지 말고 나란히 걷자.


짧은 봄과의 이별은 짧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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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꽃나무'
모든 꽃은 아름답고 이쁘다. 꽃이라는 이유만으로 마땅히 주목 받아야 한다. 잠시 피는 꽃이지만 꽃이 피기까지의 수고로움과 열매 맺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꽃이 동등하게 주목 받지는 못한다. 사람마다 취향의 호불호가 다르고 보는 목적이 달라서다. 나 역시 수많은 꽃을 찾아 발품팔면서도 유독 마음이 가는 꽃은 따로 있다. 그 중 이 함박꽃나무가 선두다.


깨끗하고 탐스러우며 특유의 향기 또한 은근하고 깊다. 꽃잎의 백색과 붉은 빛이 도는 수술에 꽃밥의 밝은 홍색의 어우러짐이 환상적이면서도 기품있는 단아함을 보여준다. 모양, 색, 향기까지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을 가졌다.


때를 기다려 높은 산을 올라 기어이 보고나서야 비로소 여름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나에게는 봄과 여름을 가르는 나름 시금석 같은 꽃이다. 매년 이 꽃을 핑개로 무등산을 올르며 보았는데 올해는 지리산에서 눈맞춤 했다.


전국 숲에서 자라지만 눈여겨 보는 이가 많지 않다. 비교적 해발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사는 이유도 한몫 한다. '산에 자라는 목련'이라는 뜻으로 '산목련'이라고도 하며, 북한에서는 '목란'이라 부르며, 국화로 지정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함박꽃나무다.


백련의 숭고함도 아니고 백모란의 원숙미와도 다르다. 순백의 꽃잎을 살포시 열며 보일듯 말듯 미소 짓는 자태가 이제 막 여물어가는 선이 고운 여인의 모습을 본다. 수줍음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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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무렵의 넘치지 않은 빛이 좋다. 길고 짧은 하루를 건너느라 애쓴 마음을 다독이는 손길로 산을 넘는 햇살의 배려라 여긴다.


모내기를 끝낸 논은 뒤집힌 바닥의 흙탕물이 가라앉을 시간이 필요하다. 한동안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부유물 사이에 이끼가 자리를 잡고 그 이끼마저 이내 사라져야 비로소 마알간 물을 통해 논바닥을 볼 수 있다.


빛과 물 그리고 벼논의 어우러짐이 전하는 오묘한 빛의 순간, 이맘때 쯤 흔하게 보는 풍경이지만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농촌에 이방인으로 사는 이가 누리는 호사라 타박을 받더라도 결코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이다.


산을 넘는 해가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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