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이다. 그 뜨거움에 살갗이 데일 것만 같아 나서기를 주저한다. 점심시간 무거운 발걸음보다 더 게으른 마음을 부추켜 인근 느티나무 그늘을 찾았다. 이 더위에 숨죽인 것인지 때가 이른 것인지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은 한낯의 정적이다.
"진정한 약속이란, 말이나 새끼손가락을 거는 일이 아니라
마음속의 그리움을 읽는 것입니다.
그대가 내 그리워하는 마음 다 읽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대 기다리는
나를 찾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정일근의 시 '약속, 나무 그늘 아래서'의 일부다. 동구 밖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하루에 두번 밖에 없는 군내버스가 마을로 들어오는 모퉁에 시선을 붙인채 하는둥마는둥 힘없이 부채질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선명하다.
나무의 그늘은 품이다. 그 품은 돌아올 것을 믿는 할머니의 기다림을 품어주고, 엄마를 기다리는 소년의 두려움을 품어 주며, 논둑의 물꼬를 트고 온 농부의 발걸음을 품어주고, 소나기를 피하거나 더위를 피하는 나그네의 조급함도 품어 준다. 소리를 품는가 하면, 생명을 품고, 쉼을 품으며 삶의 시간을 품는다. 한여름 그 너른 품을 위해 나무는 잎을 내어 그늘을 드리울 초록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산을 넘어와 강을 건너는 바람이 나무의 품에 들어 잠깐 쉰다. 그 틈에 어쩌다 들리던 매미소리도 멈춘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의 달콤한 오수午睡의 시간은 빨리도 지나갔다.
바람은 먼 곳에서만 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