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고자 함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수고로움을 마다않고 하늘을 향하는 이유가 있다. 그곳에 닿고자 함이다.


그 끝을 알 수 없기는 하늘 끝을 짐작하는 것이나 알 수 없는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나 매 한가지다. 나는 그 알 수 없는 내일을 담보로 오늘을 내일로 미룬다. 마치 내일을 앞당겨 오늘 살 수 있는 것처럼ᆢ.


닿고자 하나 끝내 닿지 못하리라는 것쯤은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마음의 키를 하늘 끝까지 키울 것이며 버릇처럼 책을 읽을 것이고 먼길을 마다않고 꽃을 찾아다닐 것이며 그것이 무엇이든 눈길 머무는 순간을 기록할 것이다.


내가 내 삶을 살아가며 내 감정과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다는 듯이ᆢ.


약득若得이면 만족滿足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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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오줌'
만나고 싶은 꽃소식을 듣고 낯선 숲에 들었다. 가면 볼 수 있을거란 섯부른 판단이 몸 고생을 자처할거라는 후회는 늘 나중의 일이 된다. 산 중턱으로 잘 가뀌진 산책로엔 나무데크만 더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곳에서 만난 유일한 꽃이다.


연분홍 꽃이 봉우리를 만들었다. 여러 갈래로 난 꽃가지들이 한곳에 뭉쳐나 커다란 꽃차례를 형성하여 전체 모양이 글씨쓰는 커다른 붓같기도 하다. 미세한 털이 빽빽하게 붙어 있는듯 보여 볼 때마다 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노루오줌은 뿌리에서 지린내가 나서 노루오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오줌 냄새를 내는 이유는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서겠지만 뿌리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라 확인은 못한다. 꽃봉우리가 숙여지는 겉모습으로 구분되는 숙은노루오줌도 있지만 이렇게 따로 구분이 필요할까 싶다.


초여름 숲에서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다. 의미를 부여하는 말이 많은 것은 그만큼 친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약 없는 사랑', '붉은 설화', '정열', '연정' 등 다양한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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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길 위에 섰다. 섬진강 상류 어느 곳이다. 강을 가로지르던 기찻길이 철거되면서 끊긴 강 위로 새로운 길을 열었다. 사람도 걸어서 건너지만 돌아오기 위함이고 강을 따라 내려오는 자전거를 탄 이들은 통과하는 곳이다.


해질무렵 산을 넘는 초승달을 보다가 문득 반듯하게 손을 치켜든 형상이 인상적이어서 주목한다. 자전거를 타고 강을 건너다 마주보는 이에게 인사를 건네는 순간인지도 모르겠지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라 눈에 거슬린다. 화면 밖 뒤따라가는 일행은 고개를 숙였다.


해질무렵 앞집 초등학생의 자전거라도 빌려타고 강둑을 달려보고 싶다. 가슴을 열어젖히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조금이라도 시원해질까. 한낮에 더위에 저녁 어두워지는 풍경을 미리 본다.


연일 타는듯 강렬한 햇볕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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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정민, 문학동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이야기 출발은 이 '삼근계三勤戒'라고 한다. 이후 스승이 해배되어 남양주로 올라가고 황상은 강진에 남아 공부에 매진했다. 스승이 죽자 늙은 몸을 이끌고 묘소를 여러차례 찾아 문상한다.


때를 놓치고 만나지 못했던 책을 뒤늦게 우연한 곳에서 만났다. 만나야할 것이라면 기회는 이렇게 다시 오지만, 다시 온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는 없을지도 모른다.


소년의 운명을 바꾼 정약용과 황상의 만남,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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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이다. 그 뜨거움에 살갗이 데일 것만 같아 나서기를 주저한다. 점심시간 무거운 발걸음보다 더 게으른 마음을 부추켜 인근 느티나무 그늘을 찾았다. 이 더위에 숨죽인 것인지 때가 이른 것인지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은 한낯의 정적이다.


"진정한 약속이란, 말이나 새끼손가락을 거는 일이 아니라 
마음속의 그리움을 읽는 것입니다.


그대가 내 그리워하는 마음 다 읽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대 기다리는 
나를 찾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정일근의 시 '약속, 나무 그늘 아래서'의 일부다. 동구 밖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하루에 두번 밖에 없는 군내버스가 마을로 들어오는 모퉁에 시선을 붙인채 하는둥마는둥 힘없이 부채질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선명하다.


나무의 그늘은 품이다. 그 품은 돌아올 것을 믿는 할머니의 기다림을 품어주고, 엄마를 기다리는 소년의 두려움을 품어 주며, 논둑의 물꼬를 트고 온 농부의 발걸음을 품어주고, 소나기를 피하거나 더위를 피하는 나그네의 조급함도 품어 준다. 소리를 품는가 하면, 생명을 품고, 쉼을 품으며 삶의 시간을 품는다. 한여름 그 너른 품을 위해 나무는 잎을 내어 그늘을 드리울 초록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산을 넘어와 강을 건너는 바람이 나무의 품에 들어 잠깐 쉰다. 그 틈에 어쩌다 들리던 매미소리도 멈춘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의 달콤한 오수午睡의 시간은 빨리도 지나갔다.


바람은 먼 곳에서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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