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발걸음을 멈춘다. 최대한 호흡을 가라앉혀 안정시키면서 눈은 대상에서 한시도 떼지 않는다. 대부분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지만 때론 고개를 들어 해와 마주보기도 한다.


바람에 흔들리고, 그늘에 가리고, 햇볕이 강하여 피해야 하고, 역광으로 만나야 하며, 깜깜한 밤일 수도 있고, 돋보기를 쓰기도 하고, 때론 그 안경을 놓고 볼 때도 있다. 이것이 꽃을 보는 나의 방식이다.


집중하면 다른 세상을 볼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안다. 익숙한 시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평소 걸음 속도를 조금만 늦춰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거나 땅으로 숙여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조건을 고려하면서 마주대하는 것은 바로 주목하고 싶은 '대상'에 있다.


어찌 꽃만 그러겠는가.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도 이와다르지 않으며, 다른 이의 마음과 눈맞춤하는 일도 이와같다.


오늘도 꽃을 보듯 그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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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 2018-08-31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안보이는군요...액막..
좋은 글과 사진 ..늘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무진無盡 2018-09-01 23:19   좋아요 0 | URL
파일이 이상했나 봅니다.
수정했습니다.
관심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저, 난다


고백하건데 매년 적지 않은 책을 읽지만 지독하게도 관심분야만 편독하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매번 때를 놓치고 나서야 저자와 책이 발견한다.


최근 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부음으로 처음 알게 된 황현산黃鉉産(1945~2018) 선생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조심스런 마음으로 처음 만난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폴리네르를 중심으로,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프랑스 현대시를 연구하고, 문학비평가로 활동하며 ‘시적인 것’ ‘예술적인 것’의 역사와 성질을 이해하는 일에 오래 천착해왔다."


저자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으로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든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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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시호'
일년만에 같은 자리에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핀 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특히, 올 여름 같은 가뭄과 폭염에도 잘 견디고 그것도 높은 곳 바위틈에 살면서 꽃까지 피웠으니 수고롭게 높은 산을 올라 눈맞춤한 보람이 있다.


지난해 이슬비 속에서 빗방울을 머금고 영롱한 빛을 안고 피어 있는 신비로운 모습으로 처음으로 만났는데 올해는 가뭄과 땡볕을 견뎌낸 강인한 인상으로 만났다.


높은 산 높은 곳에 무리를 지어 자란다고 한다. 꽃의 모양이 독특하다. 등대시호는 꽃차례가 등잔의 받침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뿌리를 말린 것을 시호柴胡라 하며 약제로 쓴다는데 독특한 모양만큼이나 이름 또한 독특하다. 환경부에서 한국특산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지정번호 식-91)


다음 기회에는 조금 일찍 서둘러 꽃이 활짝 핀 상태와 마주하고 싶다. 온전하게 꽃 하나를 보자고 하면 이렇게 2~3년은 두고 살펴봐야 식생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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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넣어두거라'


送黃子中 황자중에게 준다
奎章全韻一件 규정전운 한 건
唐筆一枝 중국 붓 한 자루
唐墨一錠 중국 먹 한 개
扇子一把 부채 한 자루
烟杯一具 연배 한 개
路費 錢二兩 여비 돈 두 냥


*스승의 제자를 향한 마음이다. 다산 정약용을 찾아온 황상이 돌아간다고 하자 제자에게 준 선물 목록이다. 다산과 강진 유배시절 제자 황상이 다산이 강진 유배 해배 이후 수 십년 만에 만났다. 기력이 다한 다산은 1836년 2월 22일 회혼연回婚宴 마저 취소하고 마지막을 제자와 함께 보낸다.


"규장전운ㆍ먹과 붓, 이제라도 그간 접어두었던 시 공부를 다시 시작하라는 스승의 뜻이시네. 더우면 부채를 부치고, 힘들면 담배도 한 대 피우게, 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란 뜻이시네."


너무도 오랜만에 보았지만 다시는 볼 수 없는 두 사람의 마음에 절절함이 가득이다.


"학연이 대신 말하고, 스승은 다시 자리에 누웠다. 스승의 눈빛은 이미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대답도 못하고 꾸러미를 안고 울음을 삼키며 물러나왔다."


"삼근계를 받던 1802년 10월 17일의 풍경이 떠올라서 울고, 학질에 걸려 덜덜 떨며 공부할 때 '학질을 끊는 노래'를 지어주며 힘을 실어주던 정다운 목소리가 생각나서 울었다. 신혼의 단꿈에 빠졌을 때 혼이 다 나갈 만큼 야단 치시던 그 편지가 생각나서 울고, 아버지 장례 때 다시는 안 보겠다며 서슬 파랗게 진노하던 그 사랑이 그리워서 울었다. 살아서는 네 편지를 다시는 받아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스승의 편지를 받고도 7년을 미적거린 자신의 미욱함이 미워서 울고, 그 아픈 중에 제자를 위해 삐뚤빼뚤하게 규장전운이란 글자를 쓰던 그 마음이 고마워서 또 울었다."


스승과 제자, 다산과 황상의 마음자리를 엿보는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 등골이 송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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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평양
성석제 외 지음 / 엉터리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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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평양?

2018년 4월 27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무위원장이 남과 북의 경계선을 넘어갔다가 넘어왔다마치 전 세계인들을 증인으로 세우기라도 하듯 모두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멈췄던 꿈을 다시 꾸었다가능할까당연히 되던 염원을 넘어 현실로 이뤄질 수 있는 꿈을 꾸었던 것일까?를 반복해서 되 뇌이면서도 믿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꿈을 넘어 현실로 그것도 살아생전에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여기에다 한 가지를 더한다평창 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혼란스러움은 그것만이 아니었다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에 대한 현실보다 북한 주민이 알고 있는 남한에 대한 현실 인식이 훨씬 더 정확하고 실상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런 현실에서 짐작할 수밖에 없는 평양의 오늘과 내일이 얼마나 현실성 있게 그러질 수 있을까? "내일의 평양은 오늘의 평양과 다를 겁니다"라는 이 말이 가지는 현실적인 의미가 무엇일까?

 

'성석제공선옥김태용정용준한은형이승민' 30대에서 50대 중반에 이르는 6인의 각기 다른 세대가 그 북한을 이야기 하고 있다이들이 이야기 하는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지난해 말부터 올 봄에 이르는 극히 짧은 시간 경험했던 것을 반영하겠지만 오랫동안 우리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었던 허상을 출발점으로 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로 인해 여섯 편의 소설이 가지는 모호성이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그들이 그려가는 내일의 평양이 어제의 평양을 뛰어넘어 설정될 수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알아야 지향하는 바가 명확해지며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문학이 가상의 현실을 그려가는 것이라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미래를 선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 현실을 반영하며 암울했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에 익숙한 분위기조작된 사건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자유를 찾아 탈출했다지만 그 자유가 오히려 삶을 구속하는 공간상상만으로 미리가보는 공간 등의 이야기는 한걸음 벗어난 저기 어디쯤에 머물러 있다.

 

그렇더라도 북한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소설이 등장하고 이것이 하등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현실이 중요하다이것으로 시작으로 보다 본격적인 통일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소설이 등장하는 시발점으로 그 의미가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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