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뒷산에 오른다. 이런저런 이유로 먼 길로만 나섰던 까닭에 가까운 뒷산 꽃은 놓치고 말았다.


문득, 지금쯤이면 피었겠다 싶어 찾아간 곳엔 어김없이 피어 반기고 있다. 가뭄과 땡볕에 습지는 말라가다보니 세력이 약해졌만 여린 꽃대를 올려 제 사명을 다 하고 있다.


때마침 핀 잠자리난초와 눈맞춤하며 자축한다.
조심스럽게 건너가야할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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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바위취'
여기 어디쯤인데 하면서 저절로 발걸음 속도가 느려진다. 비오는 날 빗방울을 머금고 영롱하게 빛나던 그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반긴다. 몸이 기억하는 장소다. 그곳엔 가면 어김없이 환한 미소로 반긴다. 모퉁이 돌아 급하게 오르면 남덕유산(1507m) 정상이다.


하늘의 별이 땅으로 내려와 꽃으로 핀 것이 많은데 유독 작으면서도 다섯 갈래로 갈라진 꽃 모양이 꼭 그 별을 닮았다. 하얀 꽃잎 사이에 꽃술도 나란히 펼쳐진다. 험한 환경에 자라면서도 이렇게 이쁜 모습으로 피어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바위취는 바위에 붙어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바위취는 작은 바위취라는 뜻이라고 한다. 국내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비슷한 종류로 바위떡풀이 있는데 잎이 심장형인 것이 다르다.


높은산 그것도 바위에 붙어 살면서도 이쁜 꽃을 피우기까지 그 간절함을 귀하게 보았다. '절실한 사랑'이라는 꽃말로 그 수고로움을 대신 위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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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며 臨鏡贊

멀리서 바라보면 곱기가 부귀한 사람 같은데 다가서서 살피면 비쩍 말라 산택山澤에 숨어 사는 피리하 사람 같다. 이마와 광대뼈는 시비와 영욕의 처지를 잊은 듯하고 낯빛은 온화해서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사물을 해칠 뜻이 없는 것 같다고들 한다. "광대뼈의 솟은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라고 한 것은 민 사문閔斯文이 내 관상에 대해 말한 것이고, "눈동자의 정채가 사람을 쏜다."라고 한 것은 조 학사趙學士가 내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약해서 말조차 타지 못하건만 사람들은 내게서 진晉나라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 두예杜預를 기대하려 든다. 용모가 세상을 움직이지 못할 뿐인데도 사람들은 나를 '태현경太玄經'을 지은 한나라 양웅楊雄 처럼 본다. 내가 두 손을 모으고 천천히 보폭을 짧게 해서 걷는 것을 본 사람은 염락의 어진 이(주돈이와 정호ㆍ정이 형제)를 본뜬다고 의심하고, 내가 형상을 잊은 채 멍하게 앉은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장자莊子와 열자列子의 현묘함을 엿보려는 것으로 의심한다.


아! 내 일곱 자의 몸뚱이를 아는 사람은 몇 명 있지만 한 치 되는 내 마음을 아는 자는 누가 있을까? 위로는 하늘이 나를 알고 아래로는 내가 나를 안다. 벗으로는 덕중德重 임상정林象鼎이 나를 칠팔 분쯤 알고 선배 중에서는 치회稚晦 조현명이 나를 오륙 분쯤 안다. 노자는 "나를 알아주는 자가 드물면 내가 귀하다."라고 했다. 아! 한 사람 조구명을 아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조구명趙龜命(1693~1737). 18세기 조선 영조 대에 활동하며 문장 팔대가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을 알렸다. 조구명이 20대 초반에 자신의 모습을 본 후 쓴 글이라니 믿기지 않은 자기성찰로 읽힌다.


"너 누구니?"
거울을 보지 않고 산지 오래다. 그 흔하다는 셀카도 찍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면허증 갱신을 위해 찍은 증명사진을 받아 들고 놀라서 한 말이다. 그렇게 낯선 모습을 마주한다.


"위로는 하늘이 나를 알고 아래로는 내가 나를 안다."라는 말에서 주춤거린다. 하늘이 나를 아는 것이야 속속 들여다보니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나를 얼마나 알까. 더욱, 나를 아는 이는 누구일까? 자발적으로 사회적 단절을 하며 제 마음편한대로 살고자 하는 이가 스스로를 돌아 본다.


뜬 눈으로 태어나 뜬 눈으로 세상을 사는 물고기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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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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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글의 힘에 주목 한다

고백하건데 매년 적지 않은 책을 읽지만 지독하게도 관심분야만 편독하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매번 때를 놓치고 나서야 저자와 그의 책을 뒤늦게 발견한다. 최근 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부음으로 처음 알게 된 황현산黃鉉産(1945~2018) 선생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무엇이든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조심스런 마음으로 처음 만난다.


무엇이 있기에 한 사람의 죽음에 다수의 사람들이 애석해하며 그의 부재가 가져올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 사람의 살아온 삶이 지친 일상의 위안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사회적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할 것이라 짐작한다.


이 책은 ‘2013년 3월 9일에서 시작되어 2017년 12월 23일’에 이르는 시기로 이때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사건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던 시기와 겹쳐진다. 이는 저자의 가치관이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사회적 공감을 불러오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만큼 조심스럽다는 말이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 선생의 이력은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학이 담당할 사회적 가치와 더불어 동시대의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가와, 사회구조적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사직 속에 존재해야하는 인간의 존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범위다. 문학을 기본으로 두고 있지만 이를 넘어서 사회와 사람들의 삶에 구체적인 부분에 구의 관심이 펼쳐진다. 바른 생각을 가지고 그 생각을 일상에서 실천하며 이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것, 그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된 글이다.


글이 가지는 힘의 원천은 바로 글쓴이의 일상생활과 글에 담긴 감정의 의지가 다르지 않을 때 형성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의 글이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오고 그들의 가슴에 온기를 전해주었다는 것으로부터 앞으로 그의 부재가 불러올 공허함이 크게 다가올 것이라 여겨진다.


특히, 5부에서 만나는 문학작품에 대한 선생의 이야기는 문학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나름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며 개인적으로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을 마련할 근거가 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사소한 부탁이지만, 이들 지엽적인 부탁이 어떤 알레고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는 않다.”


한글날에 일상에서 쓰이는 한글에 관한 몇 가지를 국립국어원과 한글과 컴퓨터에 부탁한다. 이 부탁이 앞으로 그를 그리워하는 한 근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냥 넘겨지지 않는다. 이제‘밤이 선생이다’를 손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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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거꾸로 섰다. 어느 곳엔 소나기라도 내린다는데 여긴 연일 꺾일줄 모르는 땡볕의 기세가 높기만 하다. 매미의 울음소리를 배경음 삼아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물이라 땅 속에서 길러올려 퍼붓어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해야하는 일이다.


키다리나무도 목이 말랐나보다. 쏟아 붓고 난 흔적에 나무가 찾아왔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키를 키웠으니 그만큼 물도 필요할 것이다. 그 덕에 잠시나마 몸과 마음의 갈증을 풀어본다.


'이것도 어디랴'하며 푸르러진 나무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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