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층잔대'
꽃 핀다는 소리가 들리면 해마다 서너차례 같은 곳을 걷는다. 몇개의 산 모퉁이를 돌고 나면 저절로 발걸음이 멈추는 곳, 빠르거나 늦거나 하여 꽃이 보이지 않더라도 꽃과 함께 기억되는 공간이다. 아는 사람만이 누리는 멋이고 맛이다.


길다란 종 모양의 꽃이 가지를 돌면서 층을 이루고 핀다. 연보라 색이 주는 신비로움에 길게 삐져나온 꽃술이 이채롭다. 삐져나온 암술을 잡고 흔들면 곱디고운 소리가 날듯도 싶지만 매번 생각뿐이다.


잔대가 층을 이루며 핀다고 해서 층층잔대라고 한다. 잔대, 금강잔대, 나리잔대, 톱잔대, 털잔대, 두메잔대, 당잔대, 가는층층잔대 등 잔대 집안도 식구가 많다. 몇가지는 실물을 봤으나 여전히 구분이 어려운 식물의 세계다.


노고단 오르는 기회가 있으면 늘 그곳을 서성인다. 양쪽 몇개체들이 해마다 잊지않고 얼굴을 보여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뿌리가 약재로 사용되어 '감사', '은혜'라는 꽃말을 붙인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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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칸의 비둘기 집
집에서 기르는 비둘기는 여덟 종류가 있다. 첫째는 온 몸이 흰 전백全白이고, 둘째는 몸이 희고 꼬리가 검으며 머리가 검은 점이 있는 점오點烏이며, 셋째는 붉은 몸에 꼬리가 흰 자단紫丹이고, 넷째는 몸이 희고 머리와 목이 검은 흑허두黑虛頭이며, 다섯째는 흰 몸에 머리와 목이 자줏빛인 자허두紫虛頭, 여섯째는 흰 몸과 붉은 목 그리고 날개 끝에 두 줄의 붉은 점이 있는 천앙백天仰白이고, 일곱째는 몸은 검고 꼬리가 흰 흑층黑層, 여덟째는 갈색의 날개 끝에 두 줄의 금색 점이 있는 승僧이다.

여기에 실점오, 자점오, 다대점오, 흑허미, 자허미, 흑승, 고달전항백, 자어농, 흑어농, 가치어농, 자관자, 흑관자, 자휘항, 흑휘항, 덕거머리가 있다. 

별칭으로는 긴두고, 무은, 모외, 마리, 장도리 등 다섯가지가 있으며, 부리는 희고, 눈은 노란빛이 좋다. 목은 크고 꼬리는 깃털이 풍부해야 한다. 날개는 깃털이 많아야 한다. 눈자위는 불쑥 솟아야 한다.

*이는 모두 집비둘기에 대한 이야기다. 조선시대 유득공(柳得恭, 1749~?)의 발합경鵓鴿經은 관상용 집비둘기에 관한 잡다한 기록들을 모아 놓은 책으로 비둘기의 품종, 교배, 성질 등 온갖 내용이 담겨 있다.

18~19세기 조선의 선비들이 화훼벽花卉癖이나 서치書痴니 하는 취미활동이 요란스럽게 유행했다. 그중에 앵무새나 비둘기를 키우는 것도 들어있었다. 선비라고 하면 의례껏 따라는 선입견이 깨지는 대목이다. 기르는 비둘기를 위해 여덟칸의 집을 만들어 놓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을 선비의 얼굴이 얼핀 스친다.

반면, "인가에 들어가 알록달록한 비둘기들이 지붕 꼭대기에 줄지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문득 주인의 품위가 열 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비판 한 이옥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림은 가회민화박물관이 소장한 민화 화조도다. 다정한 비둘기의 모습에서 사람 살아가는 정을 느끼고자 한 것은 아닐까.

산과 들로 꽃을 찾아다니는 꽃쟁이들을 비롯하여 현대인들이 자신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취미활동으로 심신의 안정과 즐거움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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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꿩의다리'
뜰 구석구석어 갖가지 사연으로 들어온 꽃이 피고 진다. 그 꽃은 사람으로 기억되기에 꽃마다 각기 다른 감정이 얻힌다. 쉽게 볼 수 없는 꽃을 나눔하는 꽃처럼 향기로운 그 시절의 마음이 오랫동안 머물러 피었다 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내 뜰에 들어와 두번째 꽃을 피웠다.


연한 자주색 꽃받침이 제법 크다. 이 꽃받침을 배경으로 노랑꽃술이 부풀어 오른다. 색의 조화가 서로 잘 어울려 한층 빛나는 꽃이다. 꽃술이 노랗게 생겨 마치 금색꿩의 다리와 닮았다는 의미에서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꿩의다리는 줄기가 마치 꿩의 다리처럼 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꿩의다리를 기본으로 꽃꿩의다리, 은꿩의다리, 산꿩의다리, 긴잎꿩의다리, 연잎꿩의다리 등 종류가 많고 구분도 쉽지 않다. 뒷산에서 흔히 만나는 은꿩의다리는 올 여름 가뭄으로 부실했다.


금꿩의다리를 북한에서는 금가락풀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꿩의다리의 꽃말이 '순간의 행복'이라고 하나 꽃을 보는이의 마음에 전해지는 이미지가 더 중요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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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곡유거기九曲幽居記

나는 일찌기 한 가지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깊은 산중 인적이 끊긴 골짜기가 아닌 도성 안에 외지고 조용한 한 곳을 골라 몇 칸 집을 짓는다. 방 안에는 거문고와 서책, 술동이와 바둑판을 놓아 두고, 석벽을 담으로 삼고, 약간 평의 땅을 개간하여 아름다운 나무를 심어 멋진 새른 부른다. 그 나머지는 남새밭을 가꿔 채소를 심고 그것을 캐서 술안주를 삼는다. 또 콩 시렁과 포도나무 시렁을 만들어 서늘한 바람을 쐰다. 처마 앞에는 꽃과 수석을 놓는다. 꽃은 얻기 어려운 것을 구하지 않고 사시사철 묵은 것과 새 것이 이어 피도록 할 것이며, 수석은 가져오기 어려운 것을 찾지 않고 작지만 야위어 뼈가 드러나고 괴기한 것을 고른다.

뜻이 맞는 한 사람과 이웃하되 집을 짓고 집 안을 꾸밈이 대략 비슷하다. 대나무 엮어 사립문을 만들어 그리로 오간다. 마루에 서서 이웃을 부르면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의 발이 벌써 토방에 올라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심한 비바람이라도 방해받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넉넉하게 노닐며 늙어 가리라.

*혜완 이용휴李用休(1708~1782)의 구곡유거기九曲幽居記다. 선비들이 자연에서 살고 싶어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림은 다산 정약용의 제자 황상의 별서인 일속산방을 그린 소치 허련의 일속산방도다.

꽃 키우고 나무 심고자 했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오늘날 산과 들을 찾아 꽃을 보고자 하는 꽃쟁이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도시에서 멀지 않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 터전을 잡았다. 크지 않은 집과 집 보다는 넓은 뜰도 마련했다. 나무를 심어 새도 불러왔고 꽃도 구해서 묵은 것과 새 것이 이어서 핀다. 손바닥 만한 텃밭도 있어 푸성귀는 가꿔며 이웃과 나누기까지 할 수 있다.

책은 이미 넘칠만큼 준비했고 언제든 가깝고 먼 공연장으로 나들이 다니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수도 있다. 가까운 곳에 이웃도 있어 뜻 맞는 날이면 마주 앉아 술도 차도 마신다.

때론, 가끔씩 멀고 가까운 산과 들로 꽃보러 다니다보니 심심할 틈이 없다. 혼자서도 잘 노니 무엇을 더 갖추자고 아둥바둥거릴 일이 없다. 이렇게 노닐며 늙어가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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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가라는 가란도일까.
다리를 건너 가을로 간다.


신안군 압해도 바로 옆의 섬이다. 사람 오가는 정도의 나무 다리가 놓이고 섬을 일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길이 '가란도 모실길'이다.


다리를 점령하고 먼저 반기는 낚시꾼들을 뒤로 하고 섬으로 들어간다. 뒷동산 처럼 친근한 산을 중심으로 동네 마실가듯 걸을 수 있다. 바다를 끼고 해변을 걷는 맛도 바다에 언덕을 쌓아 물을 가두고 고기를 잡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돌캐노두길도 독특하다.


물이 빠진 바다는 섬과 섬을 이어주고 그 안에 뭇생명들을 품고 있다. 발이 빠지지 않은 모래 바다를 건너가 금방이라도 닿을 수 있을듯 가까이에 섬들이 있다. 섬과 섬 사이에 또다른 섬이 있다.


구멍가게도 음수대도 없고 사람 발길이 많지 않아 날것의 섬 그대로를 걸을 수 있다. 때묻지 않아 좋지만 정비해야할 곳도 많아 보인다. 넉넉히 걸어도 2시간 30분이면 충분해 보인다.


금오도 비렁길 이후 모처럼 딸과 동행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득 고개를 돌리면 함께 걷는 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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