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팔월의 비가 무겁게도 내린다. 채우지 못한 무엇이 그리 많은 것일까.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채워야만 하는 의무를 가진 것처럼 일삼아 퍼붓듯이 비가 온다.

가을이 오는 소리인가? 
결실의 때라 과하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앞서 반가움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쏟아 붓기만 하는 것이 미안한지 가끔 뿌연 하늘이 틈을 내어 햇볕을 보내주기도 한다. 가을을 불러오는 몸짓치곤 다소 거칠다. 

가을 빛을 품은 열매가 오는 비를 고스란히 견디고 있다. 여름 가뭄에도 굴하지 않고 키워온 간직하고자 스스로 부풀어 올라 품에 안았다. 이미 가을로 물들었기에 제 빛을 잃지 않는다. 

가을은 소리보다 색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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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꽃'
태풍이 올라온다는 뉴스에도 불구하고 덕유산의 산행을 감행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이 꽃을 보기 위해서 였다. 영화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라는 영화로 이 꽃을 알게된 이후이니 그 영화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결국 바람때문에 덕유산을 오르지 못하고 말았다. 조선시다 북방에 위치한 '묘향산사고妙香山史庫'를 이전한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가 있는 적성산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산중에 있는 안국사 뒷편 기슭에서 첫 눈맞춤을 했다. 그후 광양 백운산, 지리산 등지에서 자주 봤다.

가을로 가는 길목에 자주색 혹은 흰색으로 핀다. 꽃 모양이 로마 병정이 쓰던 투구 같은데 보기에 따라 고깔이나 옛 모자인 남바위와 비슷하다. 이처럼 꽃이 투구를 닮아 투구꽃이라고 한다.

영화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도 나오듯이 투구꽃은 맹독식물로 유명하며, 식물의 독으로는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종류로는 투구꽃, 각시투구꽃, 세뿔투구꽃, 노랑투구꽃, 선투구꽃, 한라투구꽃 등 여러종류가 있다. '밤의 알림', '산까치'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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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놀이는 여기서
술과 시와 노래를 즐기는 이들은 필운대의 살구꽃, 북둔의 복사꽃, 홍인문 밖의 버들, 천연정의 연꽃, 삼청동 탕춘대의 물과 돌을 즐겨 찾는다.

한양도성의 둘레는 40리인데, 하루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성밖의 꽃과 버들을 두루 감상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 꼭두새벽에 오르기 시작해서 저녁 종을 칠 때쯤이 되어야 마칠 수 있다. 산길이 대단히 험해서 지쳐 떨어지는 이들은 되돌아간다.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의 경도잡지에 언급된 한양 양반들이 철 따라 피는 꽃을 감상하면서 시를 짓고 노래하며 술 마시는 풍류의 모습을 담은 장면이다. 그림은 정선(鄭敾, 1676~1759)의 '필운대상춘弼雲臺賞春'이다.

꽃놀이가 조선시대 한양 양반들의 전유물이었을까? 스스로를 '꽃쟁이'이라고 부르는 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한양 도성이 주 무대가 아니라 남쪽 제주도에서 북쪽 강원도, 동쪽 동해시에서 서쪽 안면도 등 전국을 무대로 꽃을 찾아 다닌다. 눈 내리는 한겨울부터 시작된 꽃놀이는 단풍지고 다음 눈이 내릴 때까지 이어진다.

이들이 발로 쓰는 꽃지도는 어느 공공기관에서 작성하는 식생지도 보다 광범위하며 꽃 피는 철 따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기에 무엇보다 정확하다.

꽃을 매개로 공감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의 교류는 꽃을 닮아 아름다고 향기롭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과 더불어 서로간의 교류를 통해 꽃마음을 나눈다. 서로가 서로를 독려하며 꽃을 보호하고 꽃이 필요한 곳에는 몸과 마음을 보테어 꽃마음을 전한다.

지역의 경계가 없고 남녀와 연령의 구분을 두지 않으며 프로와 아마추어의 벽이 없다. 시가 있고 음악이 있으니 조선시대 양반들의 풍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대를 뛰어 넘어 꽃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니 꽃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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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白露'
이날 이후 가을의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시점으로 삼는다.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 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한다.


안개가 가득한 아침이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에 쑥부쟁이가 피었다. 연보라 꽃에 맺힌 이슬로 가을로 가는 시간을 인증해도 좋을 징표로 삼는다.


속담에 "봄에는 여자가 그리움이 많고, 가을에는 선비가 슬픔이 많다"라고 한다. 백로를 지나면 본격적인 가을이다. 혹, 반백의 머리로 안개 자욱한 숲길을 넋놓고 걷는 한 남자를 보거든 다 가을 탓인가 여겨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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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酒飮敎微醉後
好花看到半開時
좋은 술 마시고 은근히 취한 뒤
예쁜 꽃 보노라, 반쯤만 피었을 때

*중국 송나라의 학자 소옹邵雍이 읊은 시다. 은근함과 기다림에 주목한다.

아침 이슬이 깨어나기도 전에 햇살 품은 꽃봉우리가 곱게도 열린다. 꽃 문을 열개하는 것이 빛일까 아니면 온도일까. 서툰듯 수줍게 속내를 보이지만 허투른 몸짓이 아니라는 듯 야무지다.

대개는 화양연화의 순간을 꿈꾸기에 만개한 꽃에 주목한다. 결과의 달콤함을 얻기 위내 서둘러 만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알까. 꽃 피고 나면 지는 일만 남는다는 것을ᆢ. 

이제는 안다. 화양연화의 순간 보다는 절정으로 가는 과정이 아름답다는 것을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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