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에는 지는 햇살들이 발광하는 서쪽이 좋습니다"

시인의 마음을 빌려 
다시, 서쪽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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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앉은부채'
유난히도 매마르고 더웠던 여름날을 짧게 건널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이 모습을 보고자 수 차례 다녀왔다. 매번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으로 다시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랬었다. 기회가 되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치 않는다.


숲 속 그늘진 곳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땅 가까이 앉았다. 부처님 광배 모양의 포로 둘러쌓여 가부좌를 튼듯 신비로운 모습이다. 배경이 되는 포의 색이 은은하게 번져나와 전체적인 이미지에 영향을 주고 있다.


겨울과 봄 사이에 피는 앉은부채와 닮았다. 앉은부채란 가부좌를 튼 부처님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애기라는 뜻은 작고 앙증맞다는 의미로 붙여졌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앉은부채는 이른 봄에 꽃이 피는 반면 애기앉은부채는 여름이 되어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한곳에서 이렇게 다양한 색과 피고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올 여름 큰 행운이었다. 앙증맞도록 이쁜 모습이 '미초美草'라는 꽃말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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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구름

맑은 하늘에 떠 있는 한 조각 순백의 구름으로
형암炯菴 이덕무의 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으리.

靑天中 一片純白之雲 分明是李炯菴知心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이목구심서2'에 나오는 글이다. 이글에 한정주는 '문장의 온도'에서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라는 시각으로 이덕무의 글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기적인 욕심에 대해 말하면 기운이 빠지고, 산림에 대해 말하면 정신이 맑아지며, 문장에 대해 말하면 마음이 즐겁고, 학문에 대해 말하면 뜻이 가지런해졌다. 깨끗한 매미와 향긋한 귤을 취해 뜻을 세우고, 고요하고 담백하게 살았다. 이덕무가 '자언自言'에 새긴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이다. 순백의 구름과 닮은 삶이다."

*구름이 어디있냐고 묻지 마라. 보는 이의 마음에 구름 한점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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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물봉선'
꽃 피었다고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사진 속에서 만났다. 내가 사는 근처에 흔하게 보이는 물봉선과는 분명 다른 멋이 있어 언젠가는 꼭 보고 싶었던 꽃이다. 몇 년 간의 경험으로 보아 한번 보고자 하는 꽃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볼 기회가 생긴다.


물가에 피는 봉선화라고 해서 물봉선이다. 보통의 물봉선이 연붉은 색으로 핀다면 노랑색으로 피어서 노랑물봉선으로 부른다. 흰색으로 피면 흰물봉선으로 부른다.


물봉선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색이 다른 것이지만 그것 외에도 말린 꼬리가 아니라 구부러진 모습이다. 노랑물봉선 무리 속에는 닫힌꽃도 흔하게 보인다.


무주의 적성산에서 처음 본 이후로는 매년 지리산에서 만나고 있다. 봉선화와 같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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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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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의 질감으로 다가온 문장

볕이 참으로 좋은 날이다이 가을 파란 하늘 아래 까실까실한 볕으로 만물이 뽀송뽀송 여물어 간다볕은 어느 계절에나 다 있지만 계절마다 질감이 다르다차가운 겨울을 무사히 건너기 위해서 따스함을 이 가을 속에서 얻고 가는 것이 순리라는 것처럼 볕이 주는 독특한 질감으로 인해 가을이 더 특별해진다.

 

이 독특한 볕처럼 사람의 가슴에 온기를 스미게 하는 것이 또 있다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며 자신이 가진 온기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만드는 글이 그것이다이런 글을 만나면 일상에서 느끼는 버거운 삶이 위로 받기에 가까이 두고 자주 펼치게 된다나에게 있어 그런 문장을 만나게 된 계기는 옛사람들의 글을 접하면서부터다.

 

옛사람의 글에 매료된 계기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있었다면 그 옛글을 본격적으로 탐독하게 된 중심에는 이덕무가 있다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조선의 영 정조 시대를 살았던 문인이다가난한 서얼 출신으로 정조에 의해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되었고북학파로 불리며 박지원홍대용박제가유득공과 교류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그의 문집으로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있다.

 

이 책 '문장의 온도'는 이덕무의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의 글을 고전연구가 한정주가 선별하여 엮고 옮겼다. "거창하고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소박한 문장인데도 몸과 마음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문장"이라는 평을 받는 이덕무의 글은 가을볕처럼 사람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 넣기에 충분하다.

 

만약 한 사람의 지기知己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마땅히 십 년 동안 뽕나무를 심을 것이고일 년 동안 누에를 길러 손수 다섯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할 것이다열흘에 한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한다면 오십 일 만에 다섯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할 수 있을 것이다이 오색의 실을 따뜻한 봄날 햇볕에 쬐어 말리고아내에게 부탁해 수없이 단련한 금침으로 내 지기의 얼굴을 수놓게 해 기이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玉으로 축을 만들 것이다그것을 높게 치솟은 산과 한없이 흐르는 물 사이에 걸어 놓고 서로 말없이 마주하다가 해질녘에 가슴에 품고 돌아올 것이다.” (선귤당농소)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고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고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다.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지만 지극히 드문 일이다이런 기회는 인생 동안 다 합해도 몇 번에 불과하다.” (선귤당농소)

 

이덕무의 글에 가진 독특함은 일상에서 사소하게 만나는 모든 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다는 것에 있어 보인다그러하기에 글에 담긴 사유의 깊이나 온도가 거부감 없이 읽는 이의 마음에 그대로 투영된다그것이 이덕무의 글을 자주 읽게 만들며 그가 이끄는 깊은 사유로 세계로 찾아들게 만드는 힘이 있다가을볕의 질감처럼 사람의 마음에 깊고 두터운 온기를 전하는 글과의 만남으로 나를 위안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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