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허수경, 난다

“시를 읽는 어떤 시간은 이런 시간이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것들이 돌아오는 시간. 그 시간을 새로 발견하고는 그 시간으로 들어가 보는 것.”

위 문장과 함께 2015년 '너 없이 걸었다'로 만났으니 초면은 아니다. 시인의 부음을 접하고 가물거리는 기억 속 끈을 찾았다. 

독자와 저자가 책으로 만나는 것만큼 소중한 인연이 또 있을까. 그 인연을 이어가고자 선택한 책이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다.

"사람은 좋아하는 이에게 좋아하는 것을 건네는 법이니까요."라는 시인 박준이 건네는 인사에 유독 오랫동안 머문다.

'길모퉁이의 중국식당'(2003)의 개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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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남이 없다. 비는 꽃에 향기를 더하려는 몸부림이다. 한층 짙어진 속내가 속절없이 파고드는 가슴에 방망이질이 멈출틈이 없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듯 방울방울로 향기 품은 꽂멍울을 아로새긴다. 다음 꽃이 필 때서야 비로소 향기로 풀어낼 수 있는 숙명이다.

아로새긴 향기가 어김없이 꽃으로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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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그 강에 가고 싶다

그 강에 가고 싶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
금방 기뻐 웃을 일도 아니고
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
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도 아니다

강가에서는 그저 물을 볼 일이요
가만가만 다가가서 물 깊이 산이 거기 늘 앉아 있고
이만큼 걸어 항상 물이 거기 흐른다
인자는 강가에 가지 않아도
산은 내 머리맡에 와 앉아 쉬었다가 저 혼자 가고
강물은 때로 나를 따라와 머물다가
멀리 간다

강에 가고 싶다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그 산에 그 강
그 강에 가고 싶다

*김용택의 시 '그 강에 가고 싶다'다. 계절이 익어가느라 연일 안개 세상이다. 아침 출근길 차를 몰아 강으로 간다. 잠시라도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자는 것이다. 산을 품은 물이 숨을 쉬는 모습이 물안개로 피어난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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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쑥부쟁이'
가을 들판에 무수히 피는 꽃들을 정확히 구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안도현의 시 '무식한 놈'이다. 매년 가을이면 한번씩은 찾아보며 미소 짓는 시다. 쑥부쟁이, 개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섬쑥부쟁이, 갯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등 꽃쟁이 눈에도 구분이 어려운게 쑥부쟁이들이다. 물론 구절초와 쑥부쟁이의 구분이 비교적 쉽다.


개쑥부쟁이는 쑥부쟁이의 한 종류로, 쑥부쟁이와 거의 비슷하다. 가지를 많이 쳐서 꽃이 핀 모습도 훨씬 풍성해 보이고, 잎의 톱니가 훨씬 더 뚜렷하고, 꽃이 진 뒤 봉오리에 털이 송송 나 있고, 꽃받침잎이 뒤로 까지는 것 등으로 구분되는 쑥부쟁이와의 구별은 쉽지가 않다.


흔하게 보여 그 이쁜 모습을 놓치기 쉬운데 쑥부쟁이는 누가 봐주지 않아도 묵묵히 가을을 넉넉한 풍경에 특별한 수를 놓고 있다. 쑥부쟁이의 꽃말이 '평범한 진리'라 이와 비슷한 이미지가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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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랑이 피어나는 때와는 분명 다른 질감이다. 봄볕이 곰살맞다면 가을볕은 깔깔하다. 봄볕은 부드럽게 다가오는가 싶으나 성질머리가 사납고 가을볕은 까칠하게 덤비지만 넉넉한 품으로 반긴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얼굴에 닿는 가을볕의 질감이 참 좋다.

'봄볕은 며느리를 쬐이고 가을볕은 딸을 쬐인다'는 속담의 속내를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그렇더라도 점점 짧아지는 낮이 아쉬운 것처럼 이내 사라질 늦은 오후 가을볕이 아까운 것은 사실이다.

볕에 여물어가는 벼가 고개를 숙인 논둑을 걷다 만났다. 이질풀이 까실한 가을볕을 한껏 품고 뿌듯한듯 하늘 향해 활짝 웃는다. 꽃을 바라보는 이의 가슴도 그 볕에 이처럼 부풀었다.

애써 먼길로 돌아가는 것은 그 길에 가을볕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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