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달라진 질감으로 얼굴에 닿는 볕이 아깝지만 붙잡을 도리가 없다. 볕 날 때 그 볕에 들어 볕의 온기를 가슴에 품어두는 수밖에.

향기 또한 다르지 않다. 가을볕의 질감으로 안겨드는 향기를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가을볕 만큼이나 짧은 향기가 아까워 한 줌 덜어다 그릇에 옮겨두었다.

하늘의 볕을 고스란히 품었으니 볕의 질감을 그대로 닮았다. 색감에서 뚝뚝 떨어지듯 뭉텅이로 덤벼지는 향기에 그만 넋을 잃어 가을날의 한때를 이렇게 품는다. 다소 넘치는 듯하나 치이지 않을만큼이니 충분히 누려도 좋을 가을의 선물이다.

아는 이는 반가움에 가슴이 먼저 부풀고, 처음 본 이는 눈이 먼저 부풀어 이내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 이 향기다. 하늘색 종이 봉투에 한 줌 담아서 그리운 이의 가슴에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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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국
바다를 떠난 그리움이 해마다 깊어져 속내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일까. 꿈 속 바위에 부딪치던 바다의 멍든 가슴을 함께 아파하느라 바다를 품어버린 흔적일까. 산을 넘어 아침 햇살이 전해주는 바다소식이 닿기까지 꽃은 한껏 치장을 하고 있다.


남쪽바다를 떠나 뜰에 든 해국은 해마다 품을 넓혀 바다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것일까. 더욱 풍성해진 모습으로 가을날의 뜰을 바다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바닷가에 자라는 국화라서 해국海菊이라고 한다. 두툼한 잎에 강인한 줄기로 바닷가 돌 틈에서 해풍을 맞으며 자라는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꽃이다. 늦가을까지 탐스러운 꽃을 피운다. 흰색으로 피는 꽃도 있다고 하나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해풍에 시달리면서도 곱고 풍성한 꽃으로 말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침묵'이라는 꽃말에 오랫동안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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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영자찬 寫影自贊

貌有形 모습에는 형상 있고
神無形 정신에는 형상 없네
其有形者可模 형상 있는 것은 그릴 수 있지만
無形者不可模 형상 없는 것은 그릴 수가 없네
有形者定 형상 있는 것이 정해져야
無形者完 형상 없는 것이 온전하다네
有形者衰 형상 있는 것이 쇠하면
無形者謝 형상 없는 것은 시들해지고
有形者盡 형상 있는 것이 다하면
無形者去 형상 없는 것은 떠나간다네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이 자기의 초상화를 보고 쓴 글이다. 23세 젊은 때를 그린 초상을 늙고 쇠잔한 때에 마주보는 감회가 담겼다.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죽음에 임박한 때나 늘그막에 와서 기운빠져 할 일이 없을 때나 하는 일일까. 가끔 접하는 옛사람들의 글 속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가짐을 다잡는 글이 많다. 모두 자기성찰에 중심을 두고 있다.

셀카가 일상인 시대다.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시대를 산다. 셀카를 찍으며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모습들이 참 좋다. 혹, 이런 노력이 더해지면 뒷모습도 그만큼 아름다워진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이유로 늘 낯설기만 한 내모습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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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매화'
한해를 기다려 꽃을 보고자 한다. 계절마다 피는 그 많은 꽃들 중에 놓치지 않고 꼭 눈맞춤하고 싶은 꽃은 따로 있기 마련이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라지기에 눈맞춤에 대한 갈망도 다르지만 꽃을 보고자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 한자리를 차지하는 꽃이 이 물매화다.


누군가는 벗을, 누군가는 그리운 연인을, 누군가는 살뜰한 부인을 누군가는 공통의 이미지인 아씨를 떠올린다. 유독 사람받는 꽃이기에 수난을 당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때를 놓치지 않고 피어 눈맞춤할 기회를 준다.


꽃에 투영된 이미지 역시 제 각각이다. 이제 이 꽃은 오매불망하던 꽃과 계절이 네번 바뀌는 동안에도 넣었던 청을 잊지 않고 흥쾌히 자리를 마련해준 이의 눈망울로 기억될 꽃이다.


서리 내리고 눈 올때 까지도 많은 꽃들이 피고지겠지만 올해 내 꽃놀이의 백미는 여기에 방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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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믐날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날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의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女王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客窓寒燈에 정든 임 그리워 잠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 잡은 무슨 한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 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들은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이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靑孀과 같은 달이다. 내 눈에는 초생달 빛은 따뜻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보름달은 치어다 보면 하얀 얼굴이 언제든지 웃는 듯하지마는, 그믐달은 공중에서 번듯하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푸른빛이 있어 보인다. 

내가 한恨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情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는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 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준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날 수 있다 하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나도향의 수필 '그믐달'이다. 그믐달을 보고자 애를 태우면서도 비오고 안개가 끼어 몇달을 보지 못하였다. 지난밤 별이 초롱초롱 맑은 하늘에 오늘 새벽 기대를 했더니 잠깐 보여주고 이내 숨어버린다. 그나마 어디랴 덕분에 좋아하는 나도향 그믐달을 꺼내 다시 읽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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