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딱취'
매화 피어 봄을 알리듯이 꽃 피어 계절의 흐름을 알게하는 식물들이 많다. 이른 봄부터 꽃을 찾아 산과 들로 꽃놀이하던 꽃쟁이들이 한해 꽃놀이의 마지막이나 마찬가지인 발걸음을 부르는 꽃이 있다. 이 꽃 피었다 지는 것을 신호로 긴 휴면의 시간을 갖게 된다고들 한다.


여리디여린 줄기를 쑤욱 올려서 그 끝에 하얀색의 꽃을 피운다. 대부분은 하나이나 간혹 둘 이상의 꽃이 피는 것도 더러 있다. 작아서 지나치기 쉽지만 주의를 기울이면 눈에 잘 보인다. 붉은 색을 띤 세개의 수꽃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다.


'좀'이라는 의미는 '작다'에 있을 것으로 '취'는 나물로 쓰였다는 것을 이해한다. 줄기 아랫쪽에 돌려나는 여러장의 자잘한 잎이 있다. 좀딱취는 화피가 벌어지지 않고 꽃봉오리인 채로 자가수분과 자가수정에 의해 결실하는 폐쇄화가 많아 여러 개체들이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한다.


올해는 여러 곳에서 눈맞춤을 했다. 그것도 풍성하게 핀 것도 만났으니 행운이 따른듯 하다. 여리면서도 강인한 인상으로 다가온 좀딱취의 꽃말은 '세심한 사랑'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라온 2018-11-13 0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에서 잎도 보였으면 좋아겠어요. 심도를 두껍게한 사진 한 장! ^^

무진無盡 2018-11-13 08: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사진 찍는데 참고하겠습니다.
 
누비처네 (반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의 위로를 받다

연암 박지원의 글 눈물은 배우는 게 아니다’, ‘호곡장론’ 이옥의 남자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나도향의그믐달’ 등은 찾아서 즐겨 읽는 글이다이 글들을 통해 글이 담아야할 그 무엇에 대해 하나씩 알아간다이와 같은 맥락으로 매우 흥미로운 글을 쓰는 이를 만났다.

 

저자도 저자의 글도 늦은 만남이다이미 이 세상과 이별한 사람이라 만날 수 없지만 그의 삶의 본성이 담긴 글이 있어 늦은 만남을 할 수 있었다. "죽어서 살아 돌아온 수필가라는 이 표현이 담고 있는 것은 뒤늦게 주목 받았다는 이야기 일 것이니 무엇이 어떤지는 접해봐야 알 것이다.

 

목성균은 “1995년 57세라는 늦은 나이에 등단시적 언어 구사력과 탄탄한 구성력으로 작고 하찮은 것평범한 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생명력 있는 수작들을 빚어내어 2003년 명태에 관한 추억을 출간하는 등 의욕적으로 작품을 쏟아내다 이듬해 세상을 떠난 수필가라고 한다. ‘누비처네는 그가 남긴 수필을 모아 엮은 책이다.

 

천상 이야기꾼이다짧은 글 속에 하고자 하는 의미를 잘도 풀어내고 있다할아버지가 사랑방에서 손자를 앉혀놓고 조근조근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과 같이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일상에서 만나는 지극히 사소한 대상에 주목하고 그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의미를 갖게 되는 계기를 잡아내 삶의 희노애락을 다독이고 있다애써서 웅변하지 않지만 글이 가지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기억 속 가물거리던 추억이 현실로 되살려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게 하지만 그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때 내 손을 꼭 잡던 자기 얼굴을 달빛에 보니 깎아 놓은 밤 같았어.” (누비처네)

 

심지는 깨끗한 창호지로 하는 거여그래야 맑은 불빛을 얻을 수 있지심지 굵기는 꼭지에 낙낙하게 들어가야 해굵으면 꼭지에 꼭 끼어서 기름을 잘 못 빨아올리고가늘면 흘러내리느니그리고 꼭지 끝에 불똥을 자주 털어 줘야 불빛이 맑은 거여.” (등잔)

 

곶의 안쪽이 만이고포구는 만 안에 있다곶이 만을 감싸고 포구는 남편 잘 만난 아낙네처럼 얌전하게 만의 품에 푹 안겨 비 맞고 몸부림치는 곶 끝의 으르렁거림에도 불구하고 혼곤하게 잠들어 있다.” (장마전선을 넘어)

 

글의 흐름을 따라가다 만나는 문장 하나가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아 다시금 글 속으로 이끌어간다문장을 건너가는 호흡이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놓치지 싫은 감정이 이입되어 자꾸만 문장 사이에서 멈춘다상황을 묘사하는 탁월한 문장에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다 속으로 그렇지’, ‘...맞다’ 와 같이 맞장구를 친다.

 

시대가 변했다지만 사람 살아가는 일은 겉모습의 달라짐에 있지 않다서로 의지하고 아껴주며 울고 웃으며 더불어 사는 세상의 근본 바탕엔 무엇이 깃들어 있어야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다그의 글은 따스한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다독이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콩짜개덩굴'
잣나무가 사라진 바위 틈에 푸른 잎의 작은 아이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응달진 쪽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햇볕과는 거리를 두고 살고 싶은 모양이다. 암자의 예불소리와 함께 살아가니 그 속내는 어떨까 궁금해 진다.


콩짜개덩굴은 주로 해안 산지나 섬 지방의 그늘진 바위나 나무줄기에 붙어 무리지어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두툼한 잎에서 전해지는 질감이 독특하다.


영양엽이 콩짜개와 비슷하기 때문에 '콩짜개덩굴'이라고 한다. 짜개는 '콩이나 팥 따위를 둘로 쪼갠 것의 한쪽'은 의미하니 이름이 붙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따뜻한 바닷가 숲을 떠나 내륙 깊숙한 바위에 자리잡은 사연이 따로 있을까. '꿈속의 사랑'이라는 꽃말에 마음이 멈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때가 아님을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나름 가을이 영글어 깊어짐의 증표로 삼는 것 중 하나가 이 잎의 붉어짐이다. 앞서 간 벗들의 서두름과는 상관 없다는 듯이 여전히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으니 계절은 더 머물렀다 간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도종환 시인은 희망을 보며 함께 어우러짐으로 '절망을 놓지 않는다'는 희망을 담았다. 이런 따뜻한 시선으로 이 잎을 보던 이는 또 있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잎이 그것이다.

중력을 거슬러 수직벽을 올랐다.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줄기를 키워가는 시간이 쌓였으니 이제 스스로도 든든함을 믿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담쟁이덩굴이 하늘이 높은 줄을 모르고 오를까.

비 그쳤으니 계절은 활을 떠난 화살같이 겨울로 달려갈 것이다. 그 사이 잠시라도 틈을 내어 계절이 주는 아주 특별한 선물을 놓치지는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추적추적 쉴 틈도 없이 내린다. 과하지 않아서 지금 이 때를 누리라는 비의 배려라 여기기에 한없이 고맙다.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게 내리던 비가 앞산 허리에 안개를 둘러두고 가는가 보다.

거꾸로 선 키다리 나무엔 아직 가을이 찾아오지 않았고 땅에 고인 빗물에 젖어 너무 늦지 않게 찾아올 가을의 때를 기다린다.

곱게 물든 단풍이 곱게 내린 비에 곱게 내려 앉았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나도 단풍 따라 곱게 물들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