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벚나무'
어느 가을날 남쪽 바닷가 마을 벚나무 가로수가 꽃을 피웠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상 기온의 영향일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꽃만 보고 말았다. 최근 가을에 피는 벚나무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연찮게 만났다.


꽃도 시절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다. 무르익어 가는 봄에 흩날리는 벚꽃잎 속을 걸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가을이 주는 감성과 부조화라는 것이 어쩜 벚꽃은 봄에 피어야한다는 갇힌 생각 탓은 아닌지 돌아본다.


'춘추벚나무'는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버젓이 올라있다. 그것도 종류가 네 가지나 된다. 꽃만보고 이번에 만난 춘추벚나무가 어떤 종류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할머니 : 와~ 이 가을에 꽃이 피었네?
할아버지 : 응~
                 이 나무는 가을에 꽃을 피우는 추벚꽃이야~
할머니 : 오~ 그래요?
              당신 멋지다. 어떻게 그런걸 알아요?


꽃 핀 벚나무 아래서 나이 지긋하신 부부의 대화가 재미있다. 그 나무 아래 표지판에는 '춘'이라는 앞 글자가 지워진 채 있었다는 것은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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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의 사람
최옥정 지음, 최영진 사진 / 삼인행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오후 세 시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볕 좋은 가을날의 오후가 볕바라기를 하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만큼이나 여유롭다가을이 주는 독특한 햇살의 질감이 얼굴에 닿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이 햇살의 질감은 봄과 여름을 무사히 건너온 여유로움이 있기에 가능한 마음가짐일 것이다계절의 가을과 삶의 가을이 닮은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그 여유로움처럼 넉넉한 책을 만난다.

 

오후 세 시의 사람을 통해 사진작가 최영진과 글 작가 최옥정 남매가 건네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물음 속을 걷는다삼십 대 중반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글 작가 최옥정은 소설은 픽션이지만 한 줄도 삶과 동떨어진 가짜여서는 안 된다는 다짐으로 “'소설은 진짜여야 한다.”고 강조한다그에 걸 맞는 사진작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팽팽하게 돌아가는 일상의 긴장을 늦추고 사진과 글 사이를 서성이게 한다다소 느린 속도로 천천히 걸어야만 된다는 의무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여백이 넓고도 깊다정제된 언어로 군더더기 없는 글이 주는 담백함이 긴 호흡을 요구한다문장과 문장 사이를 건너는 속도는 느려지고 멈추길 반복하지만 끊어짐은 없다.사진 한 장에 글이 한 편씩 붙어 저절로 오는 긴장감을 사진이 주는 넉넉한 여백으로 인해 풀어지곤 한다.긴장과 이완의 적절한 조합이 남매의 깊은 정을 바탕으로 한 때문은 아닐까 싶다.

 

얻을 게 없어도 시선을 붙든 것에 마음을 한참 걸어 두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의 눈)

 

눈물을 훔치려 꽃밭에 간 사람이//꽃에게서 웃는 법을 배운다” (꽃의 말)

 

나는 좋아하는 건 너무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너무 싫어해서 탈이다//그리고 내 인생은 대체로 너무 좋아하는 것들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비 맞은 풀잎이 되어)

 

뭐가 써 있을까//떨리는 마음으로 펼쳤던 당신의 첫 페이지” (당신의 첫 페이지)

 

사진도 글도 느긋하지만 늘어지지 않고채근하는 듯 하지만 오히려 다정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오후 세 시, “그림자가 서서히 길어지는 시간이자 볕의 온기가 까칠함은 누그러뜨리는 때다가을날의 오후 세 시는 그렇게 다가온다.

 

이 책에 담긴 사진과 어울리는 글들이 유독 오랫동안 서성이게 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또 너무 늦게 만났는지도 모른다글맛에 이끌려 글 작가 최옥정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2018년 9월 13일 앓던 병으로 인해 세상과 이별을 했다고 한다지극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늦게나마 글로 만났으니 다행이라고 억지스러운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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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 마음과는 상관없다는 듯 한없이 더디오더니 막상 오고보니 이제는 급했나 보다. 여기저기 들러 청하는 모든이에게 안부전하며 노닥거리느라 늦었던 걸음이 내 앞에 와서는 서두른다. 먼 곳에서만 머물던 가을이 이제는 발목에 채인다. 

인위적인 경계를 넘는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은 매달 다르지만 유독 시월의 마지막이 안타까운 이유가 따로 있을 까닭이 없을텐데도 다들 유난을 떤다. 그 별스러운 일에 슬그머니 끼어드는 마음이 그다지 낯설지가 않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시간은 기다린 매 순간의 마음과는 달리 늘 서툴기 마련이다. 그 서툰 마음짓으로 다시 다음을 기약한다지만 그 다음이 올지는 미지수라 헛튼 속내는 안으로만 잠기다. 

두어발자국 사이로 걷는 이들의 눈 앞의 단풍이 유난히도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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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밖에 없는 그릴 수밖에 없는'
-나현정 외, 청색종이

시각예술작가 아홉 명의 그림 에세이
"드로잉, 회화, 설치, 조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하는 시각예술작가 아홉 명이 모였다. 봄부터 매달 세미나를 열고 자기의 작품세계를 중심으로 담론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함께했다."

나현정, 박혜원, 정정화, 양해영, 이록현, 송호철, 현병연, 안성진, 김흥민

개성 강한 예술작가들의 담론, 강한 개성으로 어쩌면 더 큰 공감을 불러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책을 들고 펼치기 전에 무엇이 어떻게 담겼을지 상상의 나래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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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지난지가 언젠데 여전히 이슬이다.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이슬의 무게감을 결정할 것이다. 두텁게 내린 이슬로 계절의 깊이를 짐작한다. 기상청의 나팔수는 추워진다고 야단이다. 순리에 따라 보네고 맞이한다. 서리를 기다리는 것은 대봉감만은 아니다.

이제 발아래 단풍으로 가을을 누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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