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는 여전한데 이슬이 물러간 자리에 서리가 주인으로 앉았다. 힘의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린 아침 기온이 이때쯤 부터 즐기는 특유의 코끝의 알싸함으로 다가온다.

서리 내렸으니 가을을 걷는 속내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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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자덩굴'
봄에 꽃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이다가 먼 길을 나섰다. 나무 그늘에 앙증맞도록 작은 크기의 꽃이 마음 쏘옥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먼 길 달려온 보람을 느꼈다. 모두들 이 맛에 먼 길 마다않고 꽃나들이를 다니나 보다.


가을에 다시 열매 맺혔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엔 꽃친구와 함께 나선 길이다. 둘 다 열매는 처음이지만 딱 보고 알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이미 사진으로 눈에 익은 탓이리라.


꽃 보고 열매까지 확인했다. 수많은 꽃을 만나지만 꽃과 열매 둘 다를 확인할 수 있는 식물은 그리 많지 않다. 시간과 거리가 주는 부담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꽃에 더 주목하는 이유가 더 클 것이다.


"호자라는 이름은 가시가 날카로워 호랑이도 찌른다고 해서 호자虎刺라는 이름이 붙은 호자나무에서 유래한다. 잎과 빨간 열매가 비슷하지만 호자덩굴은 덩굴성이며 풀이라 호자나무와는 다르다."


붉은색의 둥근 열매에는 두 개의 흔적이 있다. 꽃이 맺혔던 흔적일까. 다른 열매와 구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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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무릎을 지나 발 밑에 낙엽으로 머물렀을때 비로소 온전해 진다. 산 위에 도착한 가을이 주츰거리다 인심이라도 쓰듯 눈 앞 나뭇가지에 걸리면 비로소 가을이 온 것을 안다. 그때는 제 아무리 붉고 노랑 속내를 드러내 봐야 마음만 조금 싱숭생숭해질 뿐이다. 그렇기에 가을이라며 호들갑을 떨 수는 없다. 

눈 앞 나뭇가지에 제법 오랫동안 머물던 가을이 풀이 껶여 발밑으로 내려와 땅을 뒹글러야 비로소 농익은 가을인 셈이다. 발길에 채이는 낙엽을 가만히 밟아도 좋고, 두손 가득 담아 하늘 위로 더져도 좋지만 신발 위로 오른 낙엽을 툭툭 차며 걷는 맛을 이길 순 없다. 

저물녘 차가워진 공기를 피해 사람들이 떠난 관방제림을 걷고자 길을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을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온몸으로 누려야 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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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시선집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나태주 편역, RHK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흘러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어두었지요.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 부끄러웠답니다.

난설헌, 허초희(1563~1589)의 시 '연밥 따기 노래' 전문이다. 풀꽃시인 나태주의 편역으로 발간된 시집을 만났다.

"시문의 영원함이여. 영광이여. 난설헌, 시인은 죽었어도 여전히 오늘에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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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오늘

내가 걸어온 길 위에 도장처럼 발자국이 찍혀 있다
발자국에서 둥둥둥 심장 소리가 들린다
내 심장이 들려주는 생피 같은 말

하루는 길지만
일 년은 짧고
일생은 잠깐이다

*책 '오후 세 시의 사람'에 나오는 최옥정의 글 '오늘'이다. 유난히 뜨거웠던 올해 여름을 막 벗어나던 때 병마끝에 세상과 이별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을 이 글로 대신하고자 그분의 글을 다시 올린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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