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을 아시는가 이것은 나락도 다 거두어 갈무리하고 고추도 말려서 장에 내고 참깨도 털고 겨우 한가해지기 시작하던 늦가을 어느날 농사꾼 아우가 무심코 한 말이다 어디 버릴 것이 있겠는가 열매 살려내는 햇볕, 그걸 버린다는 말씀이 당키나 한가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은 끊임없이 무언갈 자꾸 살려내고 싶다는 말이다 모든게 다 쓸모가 있다 버릴 것이 없다 아 그러나 나는 버린다는 말씀을 비워낸다는 말씀을 겁도 없이 지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아니다 욕심도 쓸모가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마음으로 보면 쓸모가 있다 세상엔 지금 햇볕이 지천으로 놀고 있다 햇볕이 아깝다는 뜻을 아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다 사람아 사람아 젖어있는 사람들아 그대들을 햇볕에 내어 말려라 햇볕에 내어 말려 쓰거라 끊임없이 살려내거라 놀고 있는 햇볕이 스스로 제가 아깝다 아깝다 한다

*정진규의 시 '놀고 있는 햇볕이 아깝다'다. 북쪽을 등지고 볕바리기를 한다. 차가운 겨울날 볕좋은 오후에 잠깐의 여유를 누리는 방법 중 하나다. 품은 온기를 안고 일어서며 다시 읽는다. "햇볕이 아깝다는 말씀은 끊임없이 무언갈 자꾸 살려내고 싶다는 말이다" 나는 무엇을 살려내고 싶은 것일까.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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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 반가운 달이 반긴다. 더하거나 빼거나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달이다. 품을 키워가는 달이 딱 생각하는 그 만큼 부풀어 올랐다. 

초엿새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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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매輪廻梅, 조선 사람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밀랍으로 빚어 만든 매화를 부르는 이름이다. 윤회매를 만들어 놓고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으며 박제가와 유득공에게 만드는 방법을 전수하기도 하고, 직접 윤회매를 팔기도 하였다. 그가 매화를 빚은 마음을 짐작만 해 본다.

몇사람들이 한달에 한번 모여 담소도 나누며 멀고 가까운 일을 도모하기도 한다. 어제밤 그 모임 도중에 마른 가지에 매화가 피었다. 순간 모두의 가슴에 매화향기가 번지듯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가지에 꽃이 필 때마다 여기가 좋다 저기에 달아야 한다 그 꽃은 이쪽을 봐야 한다는 등 훈수를 두는 말이 오가는 동안 순식간에 피어난 매화는 사람들의 속내를 품고서 달빛인양 비추는 전등불 밑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덕무가 윤회매를 빚어 벗들과 나눴던 마음이 섬진강으로 옮겨와 봄날 피어날 꽃을 부르고 있다. 다가올 봄날엔 매화가 만발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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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릴만한 고집'
남과 나를 구분하는 기준이며 자신으로 살아온 근거다. 꼭 필요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가두는 벽으로 통할 때가 더 많다. 누군가에겐 거리를 둬야한다는 신호이며, 누군가를 곁에 머물도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제의 견디기 힘들었던 아픔은 오늘 잠시 누리는 조그마한 위안으로 다독여 진다. 그로인해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늘상 같은 자리를 멤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만 그것도 '부릴만한 고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되돌이표를 찍는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내가 나로 그대곁에 머물 수 있는 이유는 '부릴만한 고집'을 부려서이고 그대가 '부릴만한 고집'을 인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여, 나도 그대의 그 고집을 인정한다.

연일 이어지는 포근한 날씨에 이미 맺힌 히어리의 겨울눈에 온기가 돈다. 춥고 매마른 긴 겨울을 건너가는 동안 애를 써서 품고 키워야할 새생명의 모습이다. 잔뜩 웅크려 힘을 길러야할 때에 서투른 속내를 보인다는 것이 안쓰럽다. 때를 거스르면 된서리를 맞을 것을 알면서도 때론 '미련한 고집'이 필요할 때도 있다.

지금 이 마음이 '물러서야할 고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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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素'
겨울 첫날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서예가 박덕준님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안으로만 파고드는 소리로 가만히 읊조린다.

소素=맑다. 희다. 깨끗하다. 
근본, 바탕, 본래 등의 뜻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근본 자리가 항백恒白이다.

겨울의 첫날이 가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다. 손끝이 저린 차가움으로 하루를 열더니 이내 풀어져 봄날의 따스함과 가을날의 푸르름을 그대로 품었다. 맑고 푸르러 더욱 깊어진 자리에 명징明澄함이 있다. 소素, 항백恒白을 떠올리는 겨울 첫날이 더없이 여여如如하다. 

소素, 겨울 한복판으로 걸어가는 첫자리에 글자 하나를 놓는다.

*1년 전 오늘의 일이다. 그날과는 달리 하늘은 흐리지만 포근한 날이다. 1년 전 그날이나 오늘이나 지향하는 삶의 태도는 다르지 않다. 쌓인 시간의 무게의 반영이 지금의 마음자리일까. 항백 박덕준 서예가의 소素를 그 자리에 다시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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