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라고 했다.
셀 수야 있겠지만 숫자가 더이상 의미없을 나무는 나이테를 하나 더하는 중이리라. 살아온 흔적을 몸에 새기며 기억하려는 것일까. 덥고 춥고 바람불고 비오고 눈오는 모든 밖의 자극에 섬세한 마음 작용이 더해져야 새길 수 있는 나이테다.

한그루 나무로 살자고 했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담아 가지를 내고 몸통을 부풀렸다. 나무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다. 나무 곁에 사람이 머무르고 싶어하는 까닭이다.

살아가는 동안 비켜갈 수 없이 품어야 하는 마음에 주름이 더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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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 연적硯滴을 산 이야기

골동집 출입을 경원한 내가 근간에는 학교에 다니는 길 옆에 꽤 진실성 있는 상인 하나가 가게를 차리고 있기로 가다오다 심심하면 들러서 한참씩 한담閑談을 하고 오는 버릇이 생겼다.
하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이 가게에 들렀더니 주인이 누릇한 두꺼비 한 놈을 내놓으면서 “꽤 재미나게 됐지요”한다. 
황갈색으로 검누른 유약을 내려씌운 두꺼비 연적硯滴인데 연적으로서는 희한한 놈이다.
사오십 년래로 마든 사기砂器로서 흔히 부엌에서 고추장, 간장, 기름 항아리로 쓰는 그릇 중에 이따위 검누른 약을 바른 사기를 보았을 뿐 연적으로서 만든 이 종류의 사기는 초대면이다.
두꺼비로 치고 만든 모양이나 완전한 두꺼비도 아니요 또 개구리는 물론 아니다.
툭 튀어나온 눈깔과 떡 버티고 앉은 사지四肢며 아무런 굴곡이 없는 몸뚱어리―그리고 그 입은 바보처럼 ‘헤―’하는 표정으로 벌린 데다가 입속에는 파리도 아니요 벌레도 아닌 무언지 알지 못할 구멍 뚫린 물건을 물렸다.
콧구멍은 금방이라도 벌름벌름할 것처럼 못나게 뚫어졌고 등허리는 꽁무니에 이르기까지 석 줄로 두드러기가 솟은 듯 쪽 내려 얽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약을 갖은 재주를 다 부려 가면서 얼룩 얼룩하게 내려부었는데 그것도 가슴편에는 다소 희멀끔한 효과를 내게 해서 구석구석이 교巧하다느니보다 못난 놈의 재주를 부릴 대로 부린 것이 한층 더 사랑스럽다.
요즈음 골동가들이 본다면 거저 준대도 안 가져갈 민속품이다. 그러나 나는 값을 물을 것도 없이 덮어 놓고 사기로 하여 가지고 돌아왔다. 이날 밤에 우리 내외간에는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쌀 한 되 살 돈이 없는 판에 그놈의 두꺼비가 우리를 먹여살리느냐는 아내의 바가지다.
이런 종류의 말다툼이 우리 집에는 한두 번이 아닌지라 종래는 내가 또 화를 벌컥 내면서 “두꺼비 산 돈은 이놈의 두꺼비가 갚아 줄 테니 걱정 마라”고 소리를 쳤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이 잡문을 또 쓰게 된 것이다.
잠꼬대 같은 이 한 편의 글 값이 행여 두꺼비 값이 될는지 모르겠으나 내 책상머리에 두꺼비 너를 두고 이 글을 쓸 때 네가 감정을 가진 물건이라면 필시 너도 슬퍼할 것이다.
너는 어째 그리도 못생겼느냐. 눈알은 왜 저렇게 튀어나오고 콧구멍은 왜 그리 넓으며 입은 무얼 하자고 그리도 컸느냐. 웃을 듯 울 듯한 네 표정! 곧 무슨 말이나 할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왜 아무런 말이 없느냐. 가장 호사스럽게 치레를 한다고 네 놈은 얼쑹덜쑹하다마는 조금도 화려해보이지는 않는다. 흡사히 시골 색시가 능라주속綾羅紬屬을 멋없이 감은 것처럼 어색해만 보인다. 
앞으로 앉히고 보아도 어리석고 못나고 바보 같고...
모로 앉히고 보아도 그대로 못나고 어리석고 멍텅하기만 하구나.
내 방에 전등이 휘황하면 할수록 너는 점점 더 못나게만 보이니 누가 너를 일부러 심사를 부려서까지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냐.
네 입에 문 것은 그게 또 무어냐.
필시 장난꾼 아이 녀석들이 던져 준 것을 파리인 줄 속아서 받아물었으리라.
그러나 뱉어 버릴 줄도 모르고.
준 대로 물린 대로 엉거주춤 앉아서 울 것처럼 웃을 것처럼 도무지 네 심정을 알 길이 없구나. 
너를 만들어서 무슨 인연으로 나에게 보내주었는지 너의 주인이 보고 싶다.
나는 너를 만든 너의 주인이 조선 사람이란 것을 잘 안다.
네 눈과, 네 입과, 네 코와, 네 발과, 네 몸과, 이러한 모든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너를 만든 솜씨를 보아 너의 주인은 필시 너와같이 어리석고 못나고 속기 잘하는 호인好人일 것이리라
그리고 너의 주인도 너처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성격을 가진 사람일 것이리라.
내가 너를 왜 사랑하는 줄 아느냐.
그 못생긴 눈, 그 못생긴 코 그리고 그 못생긴 입이며 다리며 몸뚱어리들을 보고 무슨 이유로 너를 사랑하는지를 아느냐.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커다란 이유가 있다.
나는 고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고독함은 너 같은 성격이 아니고서는 위로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두꺼비는 밤마다 내 문갑 위에서 혼자 잔다. 나는 가끔 자다 말고 버쩍 불을 켜고 나의 사랑하는 멍텅구리 같은 두꺼비가 그 큰 눈을 희멀건히 뜨고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가를 살핀 뒤에야 다시 눈을 붙이는 것이 일쑤다.

*김용준의 수필 '두꺼비 연적硯滴을 산 이야기'다. 제법 긴 글을 옮겼다. 읽어가는 내내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수록된 글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누구나 완상玩賞하는 물건 하나쯤은 있다. 새해 출발부터 붓을 잡을 계획이 있기에 어디서 그럴듯한 연적하나 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아껴보며 미소지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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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화초 무슨 수목이 좋지 않은 것이 있으리요마는 유독 내가 감나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놈의 모습이 아무런 조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고풍스러워 보이는 때문이다. 나무 껍질이 부드럽고 원초적인 것도 한 특징이요, 잎이 원활하고 점잖은 것도 한 특징이며, 꽃이 초롱같이 예쁜 것이며, 가지마다 좋은 열매가 맺는 것과, 단풍이 구수하게 드는 것과, 낙엽이 애상적으로 지는 것과, 여름에는 그늘이 그에 덮을 나위 없고, 겨울에는 까막 까치로 하여금 시흥詩興을 돋구게 하는 것이며, 그야말로 화조花朝와 월석月夕에 감나무가 끼어서 풍류를 돋우지 않는 것이 없으니 어느 편으로 보아도 고풍스런 운치 있는 나무는 아마도 감나무가 제일일까 한다."

*김용준의 수필을 엮은 책 '근원수필近圓隨筆'에 담긴 '노시산방기老枾山房記'에 나오는 문장이다. 감나무 예찬으로 이보다 더 감성적인 글이 또 있을까 싶다.

제법 오래된 감나무가 지키고 있는 골목을 끼고 산다. 경계목을 겸한 감나무는 이제는 늙어 열매보다는 그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그 어떤 나무보다 사람과 함께 살아온 나무만이 갖는 정情이 으뜸인 나무가 감나무다. 들고나는 길 든든한 벗이 되어줄 감나무가 오랫동안 버티고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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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근원수필 - 우리 문화예술론의 선구자들 근원 김용준 전집 1
김용준 지음 / 열화당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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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갖은 글을 만나는 즐거움

"댁의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니다."로 시작하는 글 '매화梅花'을 읽었다글이 주는 매력에 읽기를 반복한다멀리서 매화 향기가 전해지는 듯하여 문득 고개를 들어본다글쓴이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김용준이라는 사람이다.

 

김용준(金瑢俊, 1904-1967), 동양화가이자 미술평론가한국미술사학자로호는 근원(近園), 선부(善夫),검려(黔驢), 우산(牛山), 노시산방주인(老枾山房主人)이다서울대학교 동양화과 교수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50년 9월 월북해 평양미술대학 교수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장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했다저서로는 근원수필’(1948), ‘조선미술대요’(1949),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1958)등이 있으며회화작품으로는 수묵채색화 (1957)이 있다.

 

새 근원수필近圓隨筆은 2001년에 발간된 근원 김용준 전집 1권으로 이미 1948년에 발간된 근원수필에 스물세 편을 더해 엮은 김용준 수필 완결판이라고 한다기존에 발간된 형식을 유지하며 화인전과 같은 미술관련 글을 구분하여 엮었다.

 

툭 튀어나온 눈깔과 떡 버티고 앉은 사지四肢며 아무런 굴곡이 없는 몸뚱어리그리고 그 입은 바보처럼하는 표정으로 벌린 데다가 입속에는 파리도 아니요 벌레도 아닌 무언지 알지 못할 구멍 뚫린 물건을 물렸다콧구멍은 금방이라도 벌름벌름할 것처럼 못나게 뚫어졌고 등허리는 꽁무니에 이르기까지 석 줄로 두드러기가 솟은 듯 쪽 내려 얽게 만들었다.”

 

두꺼비 연적硯滴을 산 이야기이디서 읽었을까읽어가는 내내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교과서에 수록된 글이었다뿐만 아니라 '노시산방기老枾山房記'에 나오는 문장이다감나무 예찬으로 이보다 더 감성적인 글이 또 있을까 싶다.

 

김용준의 글의 영역은 제한이 없다일상에서 마주하는 아주 익숙한 것들이 중심이면서도 전혀 새로운 시각을 선보인다친근하여 거부감이 없고 세심하여 새로움을 전해준다또한 활동하던 시기의 문화상을 그대로 담고 있어 후대 사람이 글을 통해 시대상을 엿보기에도 충분하다또한, 2부에서 접하는 미술과 관련된 글 역시도 수필에서 느끼는 자유스러운 사유의 영역을 확인하게 된다.

 

남에게 해만은 끼치지 않을 테니 나를 자유스럽게 해달라.”

 

근원수필의 발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무엇보다도 자유스러운 심경으로 살고자 했던 김용준의 마음이 담긴 글을 통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힘을 가진 글이 주는 혜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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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레 달이 떳습니다. 여전히 밝고 둥근 달입니다. 연일 미세먼지로 답답했던 하늘이 어제밤 병아리 눈물같은 비에도 맑아졌습니다. 그 하늘에 뜬 달이라 더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겨울이 깊은듯 하나 이제 겨우 동짓달 보름이 지난 때입니다. 섣달(납월)에 핀다는 납매가 벌써 꽃망울을 터트렸으니 꽃을 보고싶어 하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도 하지만 꼭 반가운 것만은 아닙다. 모든 것은 제 때에 맞아야 하고, 이름 있는 것은 이름 값을 해야하기 때문이지요.

달빛을 품은 뜰을 느긋하게 서성이며 문득 먼 곳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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