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동백숲길에서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 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예 씻어 보겠다는 나인가

*고재종의 '백련사 동백숲길에서'다. 구강포 바다가 보이는 곳, 동백숲에 들었다. 동백나무를 쓰다듬고 내린 지난 눈이 숲길을 밝힌다. 막 피어나는 동백의 단내가 꽃보다 먼저 반긴다. 꽃 터널을 걷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애써 찾아온 이를 반기듯 동백의 속내는 여전히 붉다. 동박새 울음으로도 다독일 수 없는 마음을 떨어진 동백 붉은 꽃잎에 덜어두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핀 꽃 혼자 보기 아까워 매향 가득한 꽃그늘 아래를 서성입니다. 박새가 향기를 품고 떠나는 순간 납월홍매 한송이가 툭 발끝으로 떨어졌습니다. 향기를 품고 떠난 새도 나무 아래를 서성이는 내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요. 그대 계신 곳을 향하여 찻잔에 올려두고 합장합니다.

간다는 기별도 없었지만 마중하는 마음은 이미 꽃으로 피었습니다. 춘삼월 기다릴 여유가 없었기에 납월 추위 속에서 향기를 건네는 이유라지요.

금둔사 납월홍매는 이미 빛을 잃어가고 있더군요. 그 빈자리에 은근한 향기만 남았습니다. 오는 발걸음 서두르라는 뜻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_읽는_하루

봄 

봄은 그 이름만으로도 달뜬다

예서 제서 쭈뼛거리는 것들 
쭈뼛거리다 돌아보면 터지고 

터지다 못해 
무덤덤한 심장까지 쫓아와 흔들어대는 
연초록 생명에 오색 꽃들에..., 

하늘마저 파래 주면 꽃잎 날리듯 
심장도 풋가슴으로 춤을 춘다

애먼 걸 둘러대어도 이유가 되고 
용서가 될 것만 같은 봄, 봄.

*김필연의 시 '봄'이다. 우수雨水에 흡족한 비까지 내렸다. 땅 밑 세상은 불쑥불쑥 몹시도 부산해 질 것이다. 꿈틀거리는 새싹들의 몸짓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봄인 것이다. "애먼 걸 둘러대어도 이유가 되고//용서가 될 것만 같은 봄" 누리는 자의 몫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재주를 믿고 날뛰지 마라. 학문의 수양으로 재주를 거럴내야 한다. 기교로는 눈만 놀라게 할 뿐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오래 깊숙이 울림을 남기는 시를 쓰려면,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시와 사람이 따로 노는 것이야말로 재앙이다. 저 혼자 온 세상 다 짊어진 것처럼 끙끙대고 , 세상을 향해 이유 없이 이빨을 드러내 물어뜯는 버릇을 시인의 특기로 여기면 피차에 민망하다. 시로 징징대지 마라."

*정민 교수의 '나는 나다' 중 성대중(成大中, 1732~1812) 편에 나오는 문장이다. 당시 천재시인으로 많은 이의 주목을 받던 이언진(李彦?, 1740∼1766) 과의 일화에 관련된 이야기다.

"기교로는 눈만 놀라게 할 뿐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어디 시를 짓는 것 뿐이겠는가. 사람 사는 일 모두가 이 뜻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가슴에 품은 온기로 내민 손의 정情을 알지 못하고 건넨 손을 뿌리치는 것은 상대방이 전하는 온기를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나를 내세우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변산바람꽃
유독 사람의 이목을 끄는 꽃이다. 긴 겨울이 끝나간다는 신호로 이해한다. 꽃도 사람도 봄을 맞이하려는 조급한 마음이 눈맞춤을 부른다.


화려한 외출이다. 본래부터 속내는 그렇다는듯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하거나 숨기는 일이 없다. 그 화려함이 주목 받기에 한몫한다.


꽃보다 사람이 많은 곳과 시간을 피하느라 너무 이르거나 조금 늦기 마련인 꽃놀이다. 그러다보니 피고지는 과정을 볼 기회가 더 있다. 꽃놀이에서는 그것으로도 충분함을 알게하는 꽃이다.


처음 간 곳이다. 지형을 모르니 햇살이 드는 시간을 모른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한번은 더 이 꽃을 주인공으로 꽃나들이를 할 것이다. 조금 늦게 나선 길에 지는 꽃과 다음 봄을 약속할 수 있길 바래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