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빛과 온기로 온다. 언땅이 몸을 녹여 틈을 내주면 어둠 속에서 세상을 꿈꾼 새싹들이 꿈들대며 고개를 내민다. 이를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햇살의 부드러운 온기다.

상사화相思花. 지난 가을날의 지독했던 그리움이 새로운 몸짓으로 내일을 연다. 이를 축복이라도 하듯이 안부를 묻는 햇살의 마음에 온기가 가득하다. 다시 찬란하게 피어날 그날을 향해 멈추지 못하는 길을 나선다.

매화 몇송이 피었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라지만 그 꽃이 피어야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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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봄은

무심한 그대에게
봄은 온듯 만듯
그렇게 가고 말아요.

그대가 두근거리는 만큼
봄은 두근거리고
그대가 보고싶은 만큼
봄은 꽃을 보여주지요.

봄을 만나려거든
봄길을 걸으세요.
봄을 느끼려거든
봄바람을 안으세요.

그대 마음 안에
이미
봄은 피어 있답니다.

*오종훈의 시 '봄은'이다. 여기저기서 봄의 기운이 전해진다. 겨우내 봄맞이를 준비한 사람들은 복수초나 매화로 봄의 기운을 나눈다. 남의 눈이나 마음으로 봐도 봄은 오지만, 봄은 서둘러 발품 팔아 나선 이의 온전한 몫이다. 그 발품은 내 마음 안에 있는 봄을 깨우는 일이기에?.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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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좋다. 봄날에 따사롭게 내려 쬐는 햇볕을 춘양春陽이라 한다. 볕으로만 보면 봄의 한가운데 있는 듯하다. 

성묘길 냉이가 올라온 밭둑에서 겨울을 지나온 열매를 얻었다. 볕이 좋아 치자 열매를 말린다. 이미 품고 있는 볕에 다시 볕을 더한다. 색과 맛을 숙성시키는 일이니 훗날을 도모하여 향기로운 차로 태어날 것이다.

춘양春陽으로 불러도 손색없는 볕 좋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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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人賦嶺花 위인부령화

毋將一紅字 무장일홍자
泛稱滿眼花 범칭만안화
花鬚有多少 화수유다소
細心一看過 세심일간과

재를 넘으며 만발한 꽃을 바라보며 읊다.

'붉다'는 하나의 단어를 가지고
온갖 꽃 통틀어 말하지 말라.
꽃술엔 많고 적음 차이가 있으니
세심하게 하나하나 보아야 하리.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시다. 정민 교수는 '나는 나다'에서 박제가의 시론을 이야기하는 글을 이 시로 마무리 한다.

'그냥 붉은 꽃'은 없다. 대상은 나와의 관계 속에서 특별해지는 것이기에 눈 앞에 꽃을 보고 그냥 붉은 꽃이라 말할 수 없다. 붉은 색이라도 꽃의 모양이나 빛깔도 제 각각 다르다.

'그 소리, 그 빛깔, 그 향기'를 가릴 마음에 여유를 두어야 한다. '붉은 꽃'이 내게 와 건네는 말을 알아듣게 되면 나는 나의 소리, 나의 빛깔, 나의 향기와 만나게 될 것이다.

내 안에 홍매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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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줄 꽂아놓고 - 옛사람의 사귐
이승수 지음 / 돌베개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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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에 홀로 서는 사람들

살아가는 동안 늘 함께하는 주제 중 하나가 벗의 사귐이다옛사람들도 지란지교芝蘭之交관포지교管鮑之交수어지교水魚之交문경지교刎頸之交단금지교斷金之交지기지우知己之友백아절현伯牙絶絃 등 수많은 고사성어로 그 귀함을 나타내고 있다이들 고사성어의 공통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벗의 사귐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이다어려우니 더 강렬한 열망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이도 한 이 주제에 관한 흥미로운 시선을 발견했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의 저자 이승수가 옛사람의 사귐에 관한 사례를 모아 놓고 이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을 드러낸다사람 사귐의 기본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교류의 빈도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인데 이와 사뭇 다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나옹화상과 이색정몽주와 정도전김시습과 남효온성운과 조식이황과 이이양사언과 휴정이항복과 이덕형허균과 매창김상헌과 최명길임경업·이완과 녹림객이익과 안정복나빙과 박제가

 

옛사람들의 이 조합에서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잘 어울릴 같지만 다시 보면 부자연스러운 조합이기도 하다저자 이승수는 이 관계를 주목하면서 진정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들만이 벗의 사귐의 본질에 가까운 교류가 가능하다는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시대를 주요 배경으로이익과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의 사유와 삶을 존중했던 옛사람들의 아름다운 사귐을 담았다저자는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기록에 남은 감동적인 일화들주고받은 편지와 시그림 등을 재료로 스물네 사람의 사귐을 흥미롭게 풀어내었다.

 

여전히 벗의 사귐 대한 생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그러던 중 발간된 지 한참이나 지난 이 책의 저자 이승수의 머리말에서 아주 흥미로운 문장을 접한다. ‘벗의 사귐에 주목하면서 늘 무엇인가 빼놓고 살아가는 것 같은 아쉬운 내 속내를 짐작케 하는 문장이다.

 

실체가 없는 참다운 우정의 회복을 부르짖고 싶은 마음도 없다옛날에는 참다운 우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는 둥세상이 황폐해져 우도友道를 찾기가 어렵다는 둥옛일을 낭만적으로 떠올리며 내가 사는 이 시대를 개탄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완벽하고 영원한 우정의 모델을 제시해변변한 친구 하나 없는 대다수 사람들을 압박할 마음도 없다나는 다만 내 삶을 성찰하고 싶었다자랑스럽게 내세울 벗 하나 없는 내 삶을 위로하고 싶었다누구에게도 따스한 벗이 되어주지 못하는 내가 우정을 이야기하는 이 불일치와 아이러니에 삶의 진실이 있다.”

 

어쩌면 내 속내를 그대로 담은 듯싶어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던 문장이다이 책에 등장하는 스물네 명의 사연 깊은 이야기보다 더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마침섬진강에 매화 피었다는 소식에 문득 그리운 이를 떠올리는 것과 이들의 사귐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천지간에 홀로 서는 사람들사이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벗의 사귐'에 대해 다시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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