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좋다. 생동하는 봄을 맞이하는 의식을 치루듯 허리를 숙이고 오랜 눈맞춤을 한다. 온 몸에 온기를 나르며 살아 숨쉬게 하는 피가 붉은 이유를 이른 봄 새싹의 빛으로 짐작 한다. 애써 새싹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로소 봄이 내 몸 안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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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위로 - 깊은 밤, 달이 말을 건다
안상현 지음 / 지식인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궂이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세상 속에서 철저히 외톨이가 된 날, 사랑에 아파 눈물짓는 날, 사무치는 그리움에 잠들지 못하는 날"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 와도
지금처럼만 걸어가기로 해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내가 묵묵히 비춰 줄게요."


달, 보이지 않은 낮에도 그곳에 있는 줄 익히 알기에 '달'이라 가만히 중얼거림 만으로도 충분하다. 달에 기댄 사람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달의 차고 기우는 모습처럼 긴 여운으로 남은 사람을 기다린다. 가슴의 온기가 하늘에 닿아 달은 달마다 새로이 눈을 뜨는 것을 안다. 


달이 예쁘지 않은날이 없다는 것은 여전히 내 가슴에 자리 잡고 빛나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달을 보듯 너를 보고 달을 품듯 나를 품는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으로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오늘 쓸데없이 달은 참 예쁘다."


달빛에 비춘 그림자에 스스로 놀란 어느날 누눈가에게 달로 남을 이야기들을 만난다. 길지 않아 담백하며 울림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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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생명의 기운이다. 어찌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긴 눈맞춤으로 봄을 품는다.

이른 봄에 숲에 드는 이유다. 하늘을 가릴 키큰 나무와 자신을 덮을 풀들이 자라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하는 식물들의 오묘한 색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얼레지의 새순이 올라왔다. 서둘러 땅을 헤치고 나온 기운이 힘차다. 환영이라도 하듯 햇볕의 인사가 곱기만 하다. 날개를 활짝 펼치며 숲을 환하게 밝힐 그날을 기다린다.

바야흐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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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안대회 저, 산처럼

"옛 시인들의 숱한 한시집들과 그에 관련된 자료들 중에서 시인이 살아가면서 겪은 희로애락을 시인만의 절실한 체험으로 녹여낸 작품을 가려 뽑아 모은" 152편의 한시에 해설을 붙였다.

閒中 한중

墻角槐花灑地斑 장각괴화쇄지반
晴空一解駁雲頑 청공일해박운완
人方偃臥羲皇上 인방언와희황상
月亦徘徊斗牛間 월역배회두우간
天外無邊東海水 천외무변동해수
人間何處漢陽山 인간하처한양산
有才豈有不忙客 유재개유불망객
惟喜無才我獨閒 유희무재아독한

한가하다
담 모퉁이 회화나무는 땅바닥 여기저기 꽃을 뿌리고
억세던 구름장이 걷혀 하늘도 모처럼 활짝 갰다
태평성대 사람인양 비스듬이 누워 보니
남쪽 하늘 별 사이로 달도 함께 배회한다
하늘 밖이라 끝없이 동해바다 넘실대니
이 세상 그 어디에 서울이란 데가 있나?
재주 있는 사람 치고 바쁘지 않은 이가 있던가?
다행이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조선 영조 때 문인인 홍신유(洪愼猷1724-?) 의 시다. 이 책의 저자 안대회 선생님의 번역이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찾아보았다. 책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을 '대신 읽어 주는 이'들이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동서양의 옛그림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고, 건축물이 그렇고, 나무와 풀이 그렇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문 고전이다. 대신 읽어주는 이가 없으면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분들의 수고스러움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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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을 헤매던 지난날을 회상하니
고비마다 하이얀 바람꽃이 피었구나"

*김덕종의 시 '변산바람꽃'의 일부다. 올 봄, 변산바람꽃 핀다는 소식에 다섯 곳을 찾아다니며 눈맞춤 했다.

무엇보다 앞서 봄을 부르더니 서둘러 떠난다. 혹시라도 그 화려함 속에 감춘 속내가 드러나면 어떨까 싶어 급한 발걸음을 내딛다가도 잠시 멈춰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봄도 잊지 않는다.

꽃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고 다니는 이유는 뭘까. 누구는 나이든 탓이라며 쉬운 핑개를 댄다지만 그것으로 부족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안다. 건들부는 바람결에 향기라도 맡으며 걷다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뜻밖의 눈맞춤이 길어진다. 발걸음도 멈추고 허리도 굽히고 살피다 급기야는 무릎을 꿇고서 숨을 멈추며 눈맞춤을 한다.

꽃에 투영된 내 지난 시간을 만나는 찰나刹那다. 그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순간은 단 한번도 저장되는 일이 없다. 다시 만나고 싶은 그 찰나를 위해 걷고 또 걸어 꽃을 찾는다.

깨어나 보니 눈 앞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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