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고'
놓치고 싶지 않은 꽃이 어디 한둘일까. 그래도 선택하라면 빼놓을 수 없는 꽃이다. 매년 찾아가던 가까운 숲을 두고 멀리서 만났다.


청노루귀, 깽깽이풀 처럼 화려한 색도 아니다. 그렇다고 얼레지 처럼 요염하지도 않다. 그저 순한 백색에 줄기에 비해 다소 큰 꽃을 피운다. 까치무릇이라고도 부른다.


하여. 가냘픈 소녀를 보는 안타까움이 있고,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사연 하나쯤 간직하고 있는 여인으로도 보인다. 얼레지가 스크린 속 공주라면 산자고는 담너머 누이다.


향기로 모양으로 색으로 뽐내기 좋아하는 온갗 봄꽃 중에 나같은 꽃도 하나쯤 있는 것이 좋잖아요 하는 소박한 이의 자존심의 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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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다투지 마라.
봄과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의 변화를 존중한다는 뜻이고, 이 시간에 제약된 인간의 삶을 의식하라는 뜻일 것이다. 유한성의 조건이란 인간 생애의 근본 조건이다. 이 근본조건을 생각한다면, 마땅히 놓아줘야 할 것을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없다.

*문광훈의 '미학 수업' 중 '봄과 다투지 마라'에 나오는 문장이다.

속도전을 치루는 것이 봄이다. 짧은 시간동안 주어진 삶의 중요한 일을 마쳐야하는 생명들에게 봄은 미적거릴 틈이 없다. 이 숙명은 한해살이 아주 작은 풀이나 여러해살이 키큰 나무나 다르지 않다. 아지랑이 사라지기 전에 일을 치뤄야 하는 것이다.

이른 봄에 피는 노루귀다. 벼랑끝에 뿌리를 내려 터전을 잡았다. 매년 꽃을 피워올려 눈맞춤 할 수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노루귀는 꽃이 지고 난 후 잎이 나오는데 봄이 지나면서 대부분 사라진다. 그 잎이 말라서 긴 치마를 입은듯 붙어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시간의 벽을 허물었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나무보다 더 짧은 생을 사는 사람이 봄마다 봄앓이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가. 봄앓이가 심할수록 단단하게 성장하고 깊은 향기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봄앓이를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봄의 속내와 다투어 자신의 내실을 키우는 봄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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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
짝사랑이다. 올해 첫꽃으로 만난 꽃이 이 노루귀다. 복수초보다 빨리 봤으니 무척 반가웠지만 이내 꽃앓이를 하게 만든 미운 녀석이기도 했다. 눈 속에서 살짝 보여주곤 성장을 멈춘듯 오랫동안 꼼짝않고 그대로 있어 속을 많이도 태웠다. 그래도 애정이 가는 것은 변함이 없다.


청색의 노루귀가 화사하고 신비스런 색감으로 단번에 이목을 끈다면 하얀색은 다소곳하지만 그래서 더 은근함으로 주목하게 만든다. 이 두가지 색이 주는 강렬한 맛에 분홍이나 기타 다른 색의 노루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지극히 편애하는 대상이다.


꽃이 귀한 이른봄 이쁘게도 피니 수난을 많이 당하는 대상이다. 몇년 동안 지켜본 자생지가 올 봄 파괴된 현장을 목격하곤 그 곱고 귀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안타까워 그후로 다시 그곳에 가지 못하고 있다. 자연의 복원력을 믿기에 시간을 두고 멀리서 지켜볼 것이다.


더디 온 봄이라 탓했더니 거의 모든 봄꽃이 속도전을 치루듯 한꺼번에 피었다 금방 져버리니 괜시리 마음만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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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수업 -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예술 강의
문광훈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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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일상에서 멀리 있는 예술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김연수의 '우리가 보낸 순간'에 등장하는 문장이다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정말 그럴까읽고 쓰는 일만으로 우리는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며 인간을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그 무엇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비슷한 내용에 주목하고 있는 터라 묵직하게 다가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미학 수업에서 인문학자이자 미학자인 문광훈은 "왜 예술이 중요하며그 예술을 통해 개인의 삶은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가에 주목한다당연히 나의 방점은 후자에 둔다개인의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요소라는 시각으로 만나는 예술을 어떻게 일상에서 누릴 수 있을까가 관심의 주 대상이다.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예술 강의라는 부제를 단 미학 수업은 인문학자이자 미학자인 문광훈 교수가 미술과 음악문학과 건축 등예술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새롭게 보고듣고느끼고생각하는 바를 이야기” 한다그가 말하는 예술이 나와 내 이웃의 일상에서 밀접하기를 바란다.

 

예술은 삶의 한계 속에서 어떤 자유를 느끼게 하고그 자유 이상의 책임을 떠올려주며이런 책임 속에서 다시 자유가 얼마나 고귀한지를 절감케 한다자유와 책임 중 하나라도 누락된다면예술은 미망에 불과하다삶의 변화는 내가 꿈꾸면서 다른 사람의 꿈을 깨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어난다우리는 예술 속에서 다시 꿈꾸고 선택하며 새롭게 깨어나 행동하게 된다예술은 설렘과 아쉬움의 교차 경험이는 우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잠시 돌아보게 한다.”

 

저자 문광훈의 좋은 예술작품은 궁극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에 함몰되어버린 감각을 일깨우고 삶의 쇄신을 종용한다.” 이와 같은 시각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일까대신 읽어주는 그림에서 일반인이 알 수 있는 내용과 저자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때는 어디에 우선을 두어야 할까.

 

저자 문광훈의 우리가 부단히 느끼고 꿈꾸는 한 이 세계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말과"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는 김연수의 이야기는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변화를 불러오는 것은 어디로부터 찾아야하는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내일에 저당 잡혀 있는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예술은 여전히 멀리만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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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子見岐路而哭之
爲其可以南可以北
墨子見練絲而泣之
爲其可以黃可以黑

양자楊子는 갈림길을 보고 울었다.
남쪽으로도 갈 수 있고 북쪽으로도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묵자墨子는 하얀 명주실을 보고 울었다.
노란색으로도 검은색으로 물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안劉安(BC 179~122), 회남자淮南子

땅을 보고 걷던 걸음이 멈추고 소리를 따라 고개를 든다. 한참을 둘러봐도 움직임을 찾지 못하고 다시 길을 걷는다. 가다 서다를 몇차례 반복하다가 문득 눈 앞의 나무에 시선이 멈추고 빙그레 웃는다. 소리의 진원이 이곳은 아닐 것이지만 짐작되는 바가 있어 가만히 손길을 더해 본다.

난 무엇하러 숲에 들까. 꽃과 나무는 핑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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