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온도는 상관없다. 지금 그 불 앞에서 집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과 이를 지켜보는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주목한다.

창으로 불을 품고 한껏 달아올라 있는 도자기들을 본다. 극에 달하면 그리되는 것일까. 상상을 넘어선 모습이 황홀하다. 불을 품은 송산요가 안으로 익어갈 시간이다.

불이 허공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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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지
숲속의 여왕이다. 추위에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봄기운에 익숙히질무렵 숲에서 춤추듯 사뿐히 날개짓하는 꽃을 만난다. 한껏 멋을 부렸지만 이를 탓하는 이는 하나도 없다.


햇볕따라 닫혔던 꽃잎이 열리면 날아갈듯 환한 몸짓으로 숲의 주인 행세를 한다. 꽃잎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과한듯 싶지만 단정함까지 있어 우아하게 느껴진다. 숲 속에 대부분 무리지어 피니 그 모습이 장관이지만 한적한 곳에 홀로 피어있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넓은 녹색 바탕의 잎에 자주색 무늬가 있는데, 이 무늬가 얼룩덜룩해서 얼룩취 또는 얼레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씨앗이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4년 이상 자라야만 꽃이 핀다고 하니 기다림의 꽃이기도 하다.


뒤로 젖혀진 꽃잎으로 인해 '바람난 여인'이라는 다소 민망한 꽃말을 얻었지만 오히려 꽃이 가진 멋을 찬탄하는 말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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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醉심취

夫人之醉 在所醉之如何 부인지취 재소취지여하
不必待飮酒而後矣 불필대음주이후의
紅錄眩暈 則目或醉於花柳矣 홍록현훈 칙목혹취어화류의
粉黛?蕩 則心或醉於艶婦矣 분대태탕 칙심혹취어염부의
然則是書之?暢而迷人者 연칙시서지감창이미인자
何渠不若一石而五斗也耶 하거불약일석이오두야야

대저 사람의 취함은 
어떻게 취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반드시 술 마신 뒤를 기다릴 것은 없다
붉은 꽃과 푸른 잎이 눈앞에 어질어질하면
눈이 혹 꽃과 버들에 취한다
곱게 단장한 여인이 정신을 어지럽게 하면 
마음이 혹 어여쁜 여인에게 취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이 사람을 달콤하게 취하게 하며
몽롱하게 만드는 것이 어찌 한섬이나 다섯말 술만 못하겠는가

*이옥李鈺(1760~1812)의 묵취향서墨醉香序에 나오는 문장이다.

지난 주말 얼레지 핀 숲에서 한동안 머무르며 꽃과 눈맞춤 했다. 처음엔 화려한 자태에 넋놓고 바라보다가 그 모습이 눈에 익자 은근하게 달려드는 향기에 젖어서 나중엔 그 향기를 놓칠세라 차라리 눈을 감고 말았다.

어떤이는 반가운 벗과 술자리를 떠올리며 마음이 벌써 취하는 듯하다지만, 술 한잔으로도 취기가 넘치는 이는 딴세상이야기다.

새싹이 올라와 본연의 색을 찾아간다. 이를 축복이라도 하듯 햇살이 눈부시게도 비춘다. 

어찌 취하지 않을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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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
-최성현 저, 불광출판사

책을 손에 들고 글쓴이의 약력을 먼저 본다. 아~, 오래전 책으로 만났던 저자를 다시 만나는 흥미로움이 앞선다. 그의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는 숲에 관심을 갖던 초창기에 즐겁게 만났던 책이다.

스님은 편지 한 통을 내어주며 말했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이것을 열어봐라.
조금 어렵다고 열어봐서는 안 된다.
정말 힘들 때 그때 열어봐라"

이 책은 저자 최성현이 농사짓고 책 읽고 번역하는 농부 최성현이 20여 년 간 모은 선승들의 일화 모음이다.

마알간 봄 햇살에 영혼이 씻기는 개운함으로 마주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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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무릇'
몇해 전 현호색이 무리지어 피는 계곡에서 한 개체를 보고 난 후 때를 놓치거나 다시 찾지 못해 그후로 보지 못했던 꽃이다.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꽃친구와 함께 그곳을 다시 찾았다. 여기 저기 제법 무리를 지어 많은 개체수를 확인했다. 때를 맞춰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잎은 가늘게 하늘거리는 쓰러질듯 힘없이 줄기가 서로를 지탱하느라 애쓰는 모습이 가련하다. 스님처럼 산에 사는 무릇이라는 의미로 그럴듯한 이름이지만 약하디 약한 모습에선 애처럽게만 보인다.


햇볕을 좋아해 어두워지면 꽃을 오므리고 햇볕이 많은 한낮에는 꽃을 활짝 피운다. 노란별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서 핀듯 반갑고 정다운 모습이다. 작고 순한 꽃이 주는 편안함으로 들과 산의 풀꽃들을 찾이나서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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