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 살며시 즈려밟는 것이 진달래라면 다하지 못한 아쉬움에 뒷북치고 매달리며 스스로 붉어지는 것이 동백이다. 아플 것을 지레짐작하며 미리 포기하고 한꺼번에 지고마는 벚꽃이야 말해서 무엇할까. 차라리 온 정성을 다한 후 처절하게 지고마는 목련이 좋다. 

반면, 몸과 마음을 남김없이 불사르며 타고 남은 재마져 하얗도록 다함이 없는 사랑을 한 이의 모습이 노각나무나 차나무, 쪽동백과 때죽나무의 순백의 꽃이다.

늘 다녀서 익숙한 계곡에 들던 어느날, 다 타버리고 남은 장작의 하얀 숯덩이처럼 물위어 떠 있던 꽃무덤을 발견했다. 순간,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나오는 먹먹함에 숨죽이고 한참 동안이나 꼼짝도 못한 채 물끄러미 꽃만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때부터 꽃무덤 찾기가 시작되었다. 때죽나무로 시작된 꽃무덤은 쪽동백으로 이어지고 여름철 노각나무에 이르러 한 고개를 넘어 찬 바람과 함께 차나무꽃 지는 늦가을에 절정을 맞는다.

지고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을 향한 때죽나무 꽃이 다시 피어 소망을 빈다. 숲을 어슬렁거리며 꽃무덤 찾는 발걸음 마다 꽃의 정령이 깃들어 내 가슴에도 꽃 향기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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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
-김훈, 문학동네

"그는 책 서두에 이렇게 썼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출간 소식을 듣고 기다렸다 바로 손에 넣었다. 하지만, 정작 이제서야 펼친다. 무엇이 기다림을 요구했는지는 모르나 비로소 때가 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여전히 사전 정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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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숲이다. 짙어지는 녹음 속으로 아직은 부드러운 햇살이 파고드는 때다. 잎과 햇살 사이를 부지런한 바람이 길을 터주고 있다. 숲이 주는 다독거림으로 옮긴 발걸음이 한없이 느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소 요란스럽도록 많은 꽃을 달고 있는 떼죽나무가 지난 비에 그 꽃을 떠나 보냈다. 제법 많이 내린 비라 계곡을 내려가는 물소리가 봄 햇살 닮아 맑고 경쾌하다. 모든 힘을 다하여 피고서도 부족한 것이 정성이라 떨어져서도 다시 피어났다.

나무가 만들어준 적당한 그늘에 아무렇게나 앉아도 좋다. 그렇게 멈춘 걸음에 들어온 꽃이라서 한동안 눈맞춤 한다. 나뭇잎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을 가슴에 품어 그 싱그러움으로 빛나는 것은 떨어진 떼죽나무 꽃만은 아니다. 

나뭇잎을 통과한 빛을 가슴에 품고 나도 꽃으로 피어난다. 오월의 숲이 주는 선물을 온전히 누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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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앵초'
높은 산 숲속에 꽃들의 잔치가 열렸다. 기꺼이 발품 팔아서라도 눈맞춤하고 픈 꽃이다. 무리지어 아름다움을 뽑내는 것이 장관이지만 홀로 피어도 그 빛을 감추진 못한다.


홍자색 꽃들이 꽃대 끝에 모여 피어 머리에 화관을 쓴 듯하다. 앙증맞은 꽃이 넓은 잎과 어우러져 서로가 서로를 더 빛나게 한다.


앵초라는 이름은 꽃이 앵도나무의 꽃과 비슷해서 붙여진 것으로 큰앵초는 앵초보다 크다는 의미다. 잎의 모양과 크기 등으로 구분이 어렵지 않다.


갈길이 멀어 서두르거나 다소 여유로운 걸음의 사람들이 보랏빛 꽃에 눈길을 주지만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이는 몇명이 되지 않는다. 꽃 이름을 물어보는 사람은 여행길에서 오래된 벗을 만나듯 반갑다. 하지만, 꽃이 있는지도 모르고 걷기에만 바쁜이들에겐 꽃의 인사가 무색하기만 하다.


초여름 지리산 노고단 인근은 큰앵초의 꽃세상이다. 순탄한 길을 걷다가 행운이라도 만나듯 큰앵초를 본다. '행운의 열쇠'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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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숲에 들었다. 봄 가뭄에 때를 늦춘 대상은 보지 못했지만 숲은 싱그러움을 회복했다. 서로 기대어 살며 숲을 이룬 생명들은 늘 의외의 모습이 있어 반갑다. 볼 수 있었던 것은 보고 보지 못한 것은 다음을 기약한다. 

숲의 품은 늘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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