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음과 어두움,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근거다. 둘의 어우러짐으로 깊이와 넓이를 더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비로소 이루어진다. 빛과 그림자, 적절한 균형이 요구되는 더딘 발걸음이기에 때론 감당하기 버거운 배려와 인내를 요구한다.

둘의 균형, 반드시 필요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유지되길 바라는 것도 욕심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고정불변이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보아야 한다.

자신을 들여다보듯 닮은듯 서로 다른 마음을 본다. 동질감을 넘어선 자리에는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큰 소망하나 담아 무심한듯 흐르는 달을 바라보며 두손 모아본다.

내가 다시 피울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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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평전'
-간효윤, 소명출판

한 쪽 귀는 늘 열어둔다. 그 방향이 18세기 조선 후기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 중심에 연암이 있다.

유한준, 정조, 박규수, 오복, 이씨 부인, 박종채, 이재성, 백동수, 유언호, 연암, 간호윤

위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11인의 시각으로 쓴 연암 박지원의 평전이다.

"무결점의 박지원이 아니라, 조정의 이단아이자 세상 물정 모르는 선비로서의 박지원, 집에 빚쟁이가 늘어서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으려는 박지원, 왕에게 아부하는 대신 종에게 자신의 소설을 들려주는 박지원"을 이야기한다.

이미 아는 기존의 정보에 넓이와 깊이를 더할 기회가 몹시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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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참대'
무엇이든 때가 있나 보다. 같은 꽃을 매년 보지만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예년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높은 산 계곡가에서 환하게 반겨주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흰꽃이 많이도 피었다. 독특한 모양의 꽃술을 받치고 있는 속내가 노랗다. 이 노랑색으로 인해 비슷한 꽃을 피우는 다른 나무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 나무와 꽃만으로는 혼동하기 쉬운 나무로 말발도리가 있다. 물참대는 잎이 마주나고 표면은 녹색이며 털이 거의 없다. 줄기는 밑에서 많이 올라와 포기를 형성한다.


지리산 노고단 아래에서 첫눈맞춤하고 세석평전 오르는 계곡에서 풍성한 모습을 만났다. 올해 만난 꽃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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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심완미潛心玩味"
퇴계 이황은 "'책만 읽으면 맛이 있어서 맹자孟子가 이理와 의義가 내 마음을 즐겁게 함이 소, 양, 개, 돼지고기가 내 입을 즐겁게 함과 같다'라는 설이 나를 속이지 않음을 실감했는데, 이 뜻이 한 해 한 해 갈수록 더 깊어졌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다산 정약용은 "정자, 주자 등 여러 선생들은 경전의 뜻을 해석할 때에 흔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음미하여 스스로 깨쳐야한다고 했는데, 그 맛이 무엇일까. 맛의 진 맛을 모르다가 퇴계의 글에서 알아차릴 기회를 얻었다."고 하면서

"슬프다. 세상을 살아가며 정자程子, 주자朱子, 퇴계退溪가 맛보았던 맛을 느끼지 못하면 비록 팔진미八珍味, 오후정五侯鯖을 실컷 먹으며 높은 귀족의 부귀를 누리더라도 오히려 주리고 또 곤궁하다 하겠다."고 했다.

다산 정약용이 퇴계 이황의 편지글을 통해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공부 맛에 대한 깨달음을 이야기 한 것이다.

*"잠심완미潛心玩味" 마음을 가라앉히고 글의 의미를 깊이 음미한다는 말이다. 맛을 아는 사람끼리만 맛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묘한 경지리라. 책과 공부를 통해서 느끼는 바가 진짜 맛이나 재미이지 팔진미 오후정의 음식 맛이 맛있는 것이 아니며 고관대작의 지위가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퇴계나 다산의 공부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면 스스로를 기망하는 것일까? 뜻도 다 헤아리지 못하면서 여전히 손에서 책을 놓치 못한다. 눈만 즐겁게 하는 서재에 앉아서 책 제목을 살피는 순례를 한다.

6월의 숲에 빛이 들었다. 푸르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빛이겠지만 숲의 그늘이 없으면 그 가치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공부가 책을 읽는 것만은 아니다. 몇 년 사이 숲에서 마주하는 감동의 순간이 속내를 들여다보는 성찰에 한층 더 가깝게 느낀다. 억지 핑개를 대며 높고 낮음을 구별하지 않고 깊고 얕은 숲에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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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등불버섯'
키큰나무들로 숲은 이미 그늘에 들었다.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나도제비란이 나무 밑에 무리지어 피었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간 숲 개울가에 노란빛을 내는 이상한 녀석을 만났다. 몇차례 봐온 나도제비란은 뒷전이다.


줄기와 머리가 확연이 구분된 모습에 노랑색이 눈을 사로잡는다. 길어봤자 손가락 크기만 한 것들이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가 썩은 나무 둥치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치 콩나물이 자라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인터넷 검색으로 같은 모습의 사진들이 많이 올라와 있고 이름을 '습지등불버섯'이라고 한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도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DB에도 검색되지 않는다. 습지에서 자라고 등불을 켜놓은 모습이 연상되기에 붙은 이름으로 추정된다.


처음 본, 더구나 알지 못하는 대상의 이름이라도 알아보려고 이곳저곳을 기웃대는 동안 신비로운 자연 앞에 숙연해지는 마음이다. 숲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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