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리고 비, 또 비?.

벼가 쓰러진 논 위엔 새들의 만찬장이 되고 단맛을 품어야 하는 감의 속내는 그늘만 짙어간다. 까실한 햇볕이 필요한 때지만 연 이어 내리는 비로 한해 농사 끝맺음이 헐겁게 되었다. 

때를 기디려 만개한 금목서는 밤을 건너지 못하고 향기를 접었고, 순백으로 피어날 구절초의 꽃잎은 이내 사그라들고 만다.

"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한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하고, 저녁 꽃은 화창하게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바람을 맞이한 꽃은 고개를 숙인 듯하고, 안개에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이내 낀 꽃은 원망하는 듯하고, 이슬을 머금은 꽃은 뻐기는 듯하다. 달빛을 받은 꽃은 요염하고, 돌 위의 꽃은 고고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 길가의 꽃은 어여쁘고, 담 밖으로 뻗어나온 꽃은 손쉽게 접근할 수 없고, 수풀 속의 꽃은 가까이하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이런 가지각색 그것이 꽃의 큰 구경거리이다."

*조선시대 사람 이옥(1760년 ~ 1815년)의 '화설花說'의 일부다. 꽃보는 마음이 곱기에 종종 찾아서 읽는 문장이다.

몹쓸 비가 준 선물이다. 

떨어진 꽃잎에 걸음을 멈추고 눈맞춤 한다. 계절이 순환하는 때를 기다려 꽃을 피워야하는 나무와 그 꽃을 보고자 나무와 다르지 않을 마음으로 기다린 내가 한 마음이 되는 순간이다. 시간을 넘어선 눈맞춤이 못다한 향기를 품는다.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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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왕도 익산, 그 미완의 꿈 - 무왕과 왕궁리, 선화공주와 미륵사
이병호 지음 / 책과함께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다시 보는 왕도 익산

익산은 내게 늘 궁금증을 유발하는 곳이다그 중심에 5층 석탑이 있는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가 있다왕궁리 5층 석탑(국보 제289)은 담양 학선리의 개선사지석등(보물 제111)과 나주 불회사 대웅전(보물 제1310)과 함께 내가 좋아하고 자주 찾아보는 문화재다.

 

개인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익산은 백제의 왕도였다는 점이 주된 이유지만 신라의 왕도 경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조명 받고 있다는 심리적 박탈감도 작용한다본질적인 관심은 남겨진 유적과 유물을 중심으로 백제 역사의 체계적인 정립에 대한 열망이 그 근본 바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매우 흥미를 불러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인 관학자들에 의해 익산의 근대적 문화재 조사가 처음 시작된 1910년부터,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준공식이 있은 2019년 현재까지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제석사지쌍릉 등 익산의 주요 유적과 그곳에서 출토된 문화유산의 특징과 역사적 의미를 통해 익산을 낳은 백제’, ‘백제를 품은 익산을 대면해보는 책이다."

 

이 책에서 관심 있게 본 주제는 익산은 미륵사지 석탑에서 사리봉영기가 발견되기 이전에도 수없이 다채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라는 문장에서 출발하고 있다삼국유사에 실린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봉영기에 담긴 왕비의 이야기 서로 어긋나기에 진실은 무엇일까를 추적하는 과정이 그것이다여기에 쌍릉의 발굴 과정과 결부되면서 한정된 자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가정을 살피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익산의 백제 문화유적을 무왕을 중심으로 상호 연관성 속에서 살피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도 흥미롭다눈에 보이는 몇몇 문화재가 서로 어떤 연관성 속에서 익산에 존재하게 되었는지그것이 백제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현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등 다양한 시각으로 백제의 왕도 익산을 조망하고 이해할 좋은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국립박물관 큐레이터로서 특별전 백제’, ‘백제의 공방’ 등 다수의 전시 업무를 수행했다현재는 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으로 새로 건립하는 국립익산박물관(가칭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저자 이병호의 이야기라서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유네스코 세계역사유산(백제역사유적지구)으로 등재된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있는 역사의 도시유물과 유적에 갇힌 역사가 아닌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문화재를 중심으로 현재진행형의 역사로 바라보는 시각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백제의 유서 깊은 문화유적을 품고 있는 익산을 '무왕과 왕궁리선화공주와 미륵사쌍릉'을 중심으로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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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목서'
향기를 기억하는 몸은 어김없이 고개를 돌려 눈맞춤 한다. 맑아서 더욱 짙은 향기에 비가 스며들어 더욱 깊어지는 속내가 가을이 여물어가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은 진한 초록의 잎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꽃의 크기에 비해 꽃대가 다소 길게 밀고나와 다소곳히 펼쳤다. 하나로도 충분한데 옹기종기 모여 더 확실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환상적인 색에 달콤한 향기 그리고 푸르름까지 겸비한 이 나무는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금목서'는 늘푸른 작은키나무로 목서의 변종이다. 꽃은 9~10월에 황금색으로 피며, 잎겨드랑이에 달리며 두터운 육질화로 짙은 향기가 있다. 목서의 잎은 차 대용으로 끓여 마실 수 있고, 꽃으로 술을 담가 마신다.


다소 과한듯 향기가 진하면서도 달콤함까지 전하는 금목서는 '당신의 마음을 끌다'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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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동그란 길로 가다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인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박노해의 시 '동그란 길로 가다'다. 세상과 더불어 사는 일에서 더하고 빼기를 반복하는 동안 넘치거나 부족하기 마련일 텐데 균형을 잃지 않고 사는 이들이 있다. 세상이 온기를 품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롯이' 나로 사는 일이 가능할까.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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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만한 뜰을 거닐며 지난밤의 흔적을 밟는다. 발길에 채이는 이슬을 털고 옹기종기 피어난 물매화와 눈맞춤이 정답다.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진실은 알지만 기다리고 있을 때다
진실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진실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고
조용히 조용히 말하고 있을 때다"

*정호승의 시 '거미줄'의 일부다. '진실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고'하지만 기다림은 침묵이나 멈춤이 아니라는 것은 지난날 거리를 밝혔던 무수한 촛불로 인해 몸과 마음에 각인되었기에 충분히 안다.

느긋한 아침이 가볍지 못하는 이유가 밤을 길게 돌아서 온 시간 때문이 아니다. 주목 받고 있는 한 젊은이의 차분하고 결기 있는 목소리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 부끄러움을 느낀 탓이 더 크다.

아름다울 날, 진실이 우뚝 서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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