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의 귓속말
-이만근 저, 나비클럽

손에 들고 펼쳐보는 페이지 마다 틈으로 스며드는 봄바람의 설렘이 있다. 틈과 여백이 주는 여유와 넉넉함이 계절의 깊고 넓은 품을 유영하는 볕의 리듬을 닮았다. 

세상과 지신을 돌아보는 저자의 섬세한 마음에 편집자의 온기 가득한 배려가 만나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볼 기회를 펼쳐 놓았다.

책 속으로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사이 봄이 여물어 가겠다.

#지금_내_손에_책
#이만근 #풍경의귓속말 #나비클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_읽는_하루

바람의 지문

먼저 와 서성이던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그 사이
늦게 도착한 바람이 때를 놓치고, 책은 덮인다

다시 읽혀지는 순간까지
덮여진 책장의 일이란
바람의 지문 사이로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를 맡는 것
혹은 다음 장의 문장들을 희미하게 읽는 것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당신의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때로 어떤 지문은 기억의 나이테
그 사이사이에 숨어든 바람의 뜻을 나는 알지 못하겠다
어느 날 책장을 넘기던 당신의 손길과
허공에 이는 바람의 습기가 만나 새겨졌을 지문

그때의 바람은 어디에 있나
생의 무늬를 남기지 않은 채
이제는 없는 당신이라는 바람의 행방을 묻는다
지문에 새겨진
그 바람의 뜻을 읽어낼 수 있을 때
그때가 멀리 있을까
멀리 와 있을까

*이은규의 시 '바람의 지문'이다. 꽃으로 대표되는 봄은 바람과도 때어놓을 수 없다. 봄 햇살의 리듬에 따라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실려오는 것이 어디 꽃향기 뿐이랴. 아련한 추억 속 그 장면을 비롯하여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꿈도 불러온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얼레지
숲속의 여왕이다. 추위에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봄기운에 익숙해질 무렵 숲에서 춤추듯 사뿐히 날개짓하는 꽃을 만난다. 한껏 멋을 부렸지만 이를 탓하는 이는 하나도 없다.


햇볕따라 닫혔던 꽃잎이 열리면 날아갈듯 환한 몸짓으로 이른 봄 숲의 주인 행세를 한다. 꽃잎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과한듯 싶지만 단정함까지 있어 우아하게 느껴진다. 숲 속에서 대부분 무리지어 피니 그 모습이 장관이지만 한적한 곳에 홀로 피어있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넓은 녹색 바탕의 잎에 자주색 무늬가 있는데, 이 무늬가 얼룩덜룩해서 얼룩취 또는 얼레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씨앗이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5년 이상 자라야만 꽃이 핀다고 하니 기다림의 꽃이기도 하다.


뒤로 젖혀진 꽃잎으로 인해 '바람난 여인'이라는 다소 민망한 꽃말을 얻었지만 오히려 꽃이 가진 멋을 찬탄하는 말이라 여겨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화훼가 세상을 만나는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난초는 주周의 굴원屈原을 만났고 지초芝草는 한의 무제武帝를 만났으며, 국화는 진의 도잠陶潛을 만났고 매화는 남북조南北朝 시대 여러 사람을 만났으며, 모란은 당나라 낙양洛陽 사람들을 만났다. 연꽃은 송나라 주렴계周濂溪 선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만나게 되었으니, 세상에서 연꽃이 가장 늦게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어찌 고결한 존재가 서로 만나기 어려워서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조선 후기 때 사람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의 '순원화훼잡설淳園花卉雜說'의 연꽃 부분에 나오는 글의 일부다. 순원화훼잡설은 신경준이 전북 순창에 내려와 살면서 순창의 꽃들을 기록한 글이다.

굴원의 난초, 왕휘지의 대나무, 도연명의 국화, 임포의 매화 여기에 더하여 영랑의 모란, 소월의 진달래, 도종환의 접시꽃, 김유정의 동백(생강나무), 박완서의 싱아, 송창식의 동백꽃, 이미자의 해당화 등등.

꽃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여럿이 있다. 모든 꽃이 아름답지만 사람이 각기 다른 성격을 지내듯 꽃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 유독 좋아하는 꽃을 곁에 두고 완상하며 자신만의 감정이입을 하는 이들의 마음 속에 꽃 향기가 머물 것이다.

누군가를 떠올릴때 그에 어울리는 꽃이 함께 생각난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이미 꽃길 속을 걷는 것이리라.

나는 무슨 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948년 4월 3일 그로부터 72년이 지났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니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혓바닥을 깨물 통곡 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
제주도에서 
지리산에서 
그리고 한반도의 산하 구석구석에서 
민족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장렬히 산화해 가신 모든 혁명전사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다시, 이산하의 장편 서사시 ‘한라산’ 서문을 읽으며 바다 건너 제주의 그날을 새긴다. 통째로 떨구어 지고난 후가 더 아름다운 동백이다. 늘 새롭고 나날이 새로워져야 할 4ㆍ3의 의미를 상징하는 꽃으로 삼았으니 기꺼이 꺼내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떨어진 동백이 땅 위에서 더 붉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