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
-공상균, 나비클럽

오매불망, 어쩌면 꿈 속에서나 가능할지도 모를 내 첫 책이 나오는 것처럼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이다. 

공상균,
형제봉 아래 그 뜰에 달 뜨거든 달 보러간다고 했던 것이 먼저인지, 꽃 보러 노고단을 걷고 있는 사람을 불러내린 일이 먼저인지 애써 따질 필요도 없다. 그렇게 만나 연애하듯 설레임을 알가가던 향기로운 사람이 불쑥 내밀었던 글을 통해 이미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오늘이 이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 파는 점빵, 토담농가, 달빛강정, 달빛쑥차로 이미 익숙한 저자 공상균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글과 일상이 일맥상통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특별하고도 커다란 행운이다. 며칠 후면 내 손에 닿을 이 책을 눈 빠지게 기다린다.

기다림의 가치가 충분한 책이 예약판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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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소백산록新遊小白山錄 2'
이튿날, 소백산 아래서 서두를 것 없는 아침이라 느긋하게 일어나도 눈치볼 사람도 시간에 쫒기는 부담도 없다. 어제밤 막걸리 두병도 못 비우는 거한 만찬으로 아직도 꺼지지 않은 배를 다독이면서도 산행을 위해 국물이 끝내주는 간편식으로 아침을 떼우고 죽령에 올랐다. 널널한 시간으로 여유롭게 거닐며 어제봤던 처녀치마와 눈맞춤 한다. 그사이 도착한 꽃친구들을 만나 유난히 덜컹거리는 마차를 타고 소백산의 품에 들었다.

천문대 원형지붕 아래 서북사면에 보이는 눈속의 처녀치마는 부끄러운듯 살포시 얼굴만 내밀고 있다. 그러거나말거나 눈맞춤하러온 이들은 아랑곳없이 얼굴을 들이대며 보랏빛 웃음을 나눈다. 

처녀치마의 보랏빛 연서보다 더 큰 끌림은 다른 곳에 있다. 언땅을 뚫고 막 깨어나고 있는 모데미풀의 청초함에 저절로 숨은 멈춰지고 눈만 초롱초롱 반짝인다. 여기저기 터지는 감탄사에 눈을 뜬 모데미들의 놀란 표정이 귀여운지 마침 하늘에선 싸락눈이 내려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에도 여기까지 왔으니 연화봉은 올라야겠기에 식당으로 향하는 일행을 뒤로하고 베낭도 카메라도 두고서 내달려 다녀왔다. 높은 산을 오르는 이유를 확인하고서야 느긋해지는 발걸음이다.

꽃구경도 식후경이라고 맛있기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소백산천문대 식당의 육개장에 산나물, 동해바다에서 올라온 문어묵은지찜이 어우러져 밥통의 밥은 이내 동이나고 말았다.

밤에는 하늘의 별로 낮에는 땅의 별로 별세를 받아 살림을 꾸리는 천문대장의 숨겨놓은 곳이 따로 있었다. 길에서 내려다본 숲에 노랑빛이 환하다. 야생에서 처음 봤던 그 모습대로 복수초가 불을 밝혔다. 이미 씨방을 맺은 남쪽의 개복수초와는 달리 그냥 복수초다. 이에 질세라 작디작은 선괭이눈도 무리지어 노랑빛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중이다. 노랑꽃술이 매력적이던 너도바람꽃은 소백의 흰빛을 닮고 싶었는지 꽃술도 햐얗다. 길가에 호랑버들과 다람쥐꼬리의 배웅으로 꽃놀이는 끝났다.

볼 꽃은 봤다는 안도감이 있었을까. 걸어서 내려가는 발걸음이 유독 가볍다. 꽃쟁이들은 안다. 방심은 금물이라고 언제 어디서 불쑥 눈맞춤하자고 나설지 모르는 꽃들이 있기에 눈길은 해찰을 부리기 마련이다. 

원래 소백산맥 중에는 '희다' '높다' '거룩하다' 는 뜻에서 유래된 백산(白山)이 여러개 있는데. 그중 작은 백산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소백산이라고 한다. 그 소백의 품에 들었으니 가슴 속 넘치는 기운은 애써 말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높고 거룩한 뜻이라도 일상의 소소한 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극히 낮고 깊어서 하늘이라도 품을 것만 같은 꽃쟁이들의 눈높이는 백산의 그 뜻과 결코 어긋나지 않는다. 이제는 반백으로 여물어가는 늘그막(?)에 벗들을 얻어 산에 드니 별 생각 없이 꽃보며 살아온 세월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조선 사람 성여신(1546~1632)의 글로 소백산 유람에 피치못할 사정으로 오지 못한 벗, 짠물 건너에 사는 조은鳥隱 샘의 허전한 마음에 위로를 전한다.

"나는 알지 못하겠다.
공자께서 태산과 동산에 오르셨을 때와 
정자가 남여로 3일 동안 유람했을 때와 
주자가 눈 내리는 남악을 유람했을 때도
오늘 나만큼 활달했을까?"

*사진(모데미풀)은 밤낮으로 별세 받는 천문대장 성삼여 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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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붓꽃'
연분홍 진달래가 지고 산철쭉이 피기 시작하면 꽃을 찾는 눈길은 땅에서 높이를 점차 높여간다. 그럴때 아직은 아니라는듯 키는 작지만 특이한 모양과 강렬한 색으로 눈을 사로잡는 꽃이 있다.


삼각형 모양에 보라색의 길다란 꽃잎에 선명한 무늬를 새기고 하늘을 향해 마음껏 펼쳤다. 꽃줄기 하나에 꽃이 한 송이씩 달린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양지바른 곳에 주로 자라며 큰 군락을 이루는 곳은 별로 없고 대부분 군데군데 모여 핀다.


붓꽃 종류 중 가장 먼저 피고 키가 가장 작기 때문에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귀엽고 이쁘다고 '각시붓꽃'이라 한다. 올해는 궂은 날씨에 화사한 모습을 보지 못했으나 빗속에서 만난 이미지는 영낙없이 각시 느낌이다.


미인박명이라 했던가 봄이 가기 전 꽃과 잎이 땅에서 모두 없어지고 만다. 옮겨 심는 것을 싫어하는 품종이어서 가급적 자생지에서 피어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좋다. 같은 시기에 노랑색으로 피는 금붓꽃과 함께 숲으로 마음을 이끄는 꽃이다.


비슷한 꽃으로 넓은잎각시붓꽃이 있다. 현장에서 두 종류를 비교하면서 보고도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닮았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재된 이름이다.


피는 모습에서 연유한 듯 '기별', '존경', '신비한 사람'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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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바람꽃'
발품 팔아 제법 많은 산들꽃들을 만나면서 꽃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이유가 일상에 휘둘리는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은 마음의 반영인듯 싶다. 못 본 꽃이면 보고 싶다가도 일단 보게되면 그 꽃에서 다른 모습을 찾게 된다.


남바람꽃, 가까운 곳에 두곳의 자생지가 있어 비교적 쉽게 만나는 꽃이다. 한곳은 사랑들의 발길에 허물어지는 것이 안타깝고, 한곳은 굴곡의 현대사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곳에 피어 있어 더 특별하다.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바람꽃 종류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니 다소 싱겁지만 꽃이 전하는 자태만큼은 어느 꽃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만큼 아름답다. 특히 막 피기 시작할 때 보여주는 꽃잎의 색감은 환상적이다. 진분홍빛의 뒷모습이 풍기는 그 아련함을 주목하게 만든다.


적당히 나이들어 이제는 삶의 진면목을 아는듯한 여유로움에서 오는 뒷모습이 곱디고운 여인네를 연상케하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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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소백산록新遊小白山錄'
몇 날 며칠을 벼르다 벼르다 멀리 사는 벗들이 모였다. 꽃놀이를 위해 오랜만에 만난 자리다. 산 넘고 물 건너서 심지어 누구는 짠물까지 건너와 모인 벗들이다. 서로를 향한 온기로 양손은 한없이 무겁고 마음은 가볍기가 그지없어 한달음에 죽령을 넘을 기세로 달려온 벗들의 눈가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 웃음 띤 얼군의 속내가 이제 막 피어나는 소백산 철쭉을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이 소백산을 유람하고 그 소회를 글로 남겼던 퇴계 이황(1501~1570)의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을 들춰보니 이번 벗들의 나들이가 훨씬 아취가 넘치는듯 하다. 그 뿌듯함으로 슬그머니 번지는 미소는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인다.

풍기 군수 시절 퇴계의 소백산 유람은 백운동서원에서 하룻밤 묵고 죽계에서부터 출발하여 초암사. 석륜사를 거쳐 올라가는 이른바 배점리코스를 통해 갔다. 철쭉꽃이 숲을 이룬 때라고 하니 우리보다 조금 늦은듯 하다.

퇴계의 소백산 유람과는 달리 우리의 나들이는 첫날, 죽령 고개를 올라 옛길을 따라 풍기쪽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붉은 뒷태의 노랑제비꽃이 반기는 초입을 벗어나 큰개별꽃, 개별꽃, 연복초, 자주족두리풀과 뫼제비. 꼬깔제비, 남산제비, 태백제비 등 각종 제비꽃들의 환영을 받자마자 이미 늙어버린 처녀치마의 배웅을 받으며 아래로 내려간다. 꽃에 따라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던 벗들의 걸음걸이가 흰괭이눈을 지나며 만난 홀아비바람꽃 군락에 멈춰 일제히 반색인 서로 머리를 보며 웃음이 넘친다. 홀아비꽃의 하얀 뒷태나 반백인 우리들의 머리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리라. 듬성듬성 핀 노루귀들, 무리지어 터를 잡은 달래, 유독 노랗던 산괴불주머니에 다정한 현호색, 붉은빛의 줄딸기, 바위틈 매화말발도리에 이어 묘역을 점령한 할미꽃까지 이미 봄꽃시즌이 끝나버린 남쪽과는 달리 이곳은 만화방창이다.

익숙하거나 첫 만남의 꽃들과 눈맟춤이라고 허기를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느긋하게 들어간 식당에서 현지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벗들을 생각하며 이고지고 바리바리 싸온 맛난 음식이 생각하며 숙소에 들었다. 자연과 노니는 나들이에 술이 빠질순 없다지만 장정 일곱이서 막걸리 두병을 다 비우지도 못한 자리는 이야기꽃이 피어 향기 가득하다. 인생 후반기에 꽃으로 만났으니 가슴에 쌓인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하지 않아도 다 알만하다

술로 취한 것보다 더 격조있는 이야기에 취했으니 무엇이 아쉬울 것인가. 내일을 꽃과의 눈맞춤을 위해 잠자리에 든 얼굴마다 벗들을 닮은 꽃들이 피었다.

*이어서 소백산 언화봉에서 죽령으로 내려온 이야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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