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가 있고 없는 것은 내게 달렸으며, 그 재주를 쓰고 쓰지 않는 것은 남에게 달렸다. 나는 내게 달린 것을 할 뿐이다. 어찌 남에게 달린 것 때문에 궁하고 통하며 기뻐하고 슬퍼하다가 내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을 그만둘 수 있으랴"

*조선 후기를 살았던 위항시인 홍세태(1653~1725)의 글이다. 한시에 대한 재능을 널리 인정을 받았고, 위항문학委巷文學의 발달에도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해동유주 海東遺珠'라는 위항시선집을 간행하였다.

꽃봉우리를 내밀고 때를 준비하는 노랑꽃창포의 모습이다. 거꾸로 잡고 긴 기다림의 속내를 풀어내기에 맞춤한 모양이 타고난 재주를 갈고닦은 결과라 여긴다. 여기에 무엇을 더하랴.

여름으로 치닫는 물가는 제게 달린 것을 묵묵히 하는 생명들의 숨터다. 늦거나 빠르거나의 기준은 이를 보는 사람의 마음작용일 뿐 자연은 때를 놓치지 않고 제 일을 한다. 조급함에 갇힌 마음을 다독이니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비로소 보인다.

"어찌 남에게 달린 것 때문에 궁하고 통하며 기뻐하고 슬퍼하다가 내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을 그만둘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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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꽃으아리'
꽃을 보는 해가 거듭될 수록 다음 해에는 꽃보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어느때 어디에 무슨 꽃이 피는지를 짐작하고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보가 쌓이면 꽤 근사하고 유용한 자신만의 꽃지도가 만들어진다.


출퇴근하는 도로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차를 멈추어 수풀 속으로 들어간다. 피고지는 무리들이 한가득이다. 눈여겨보는 사람이 또 있는지 발길 흔적도 있다. 무심코 흘려보내지 않고 눈맞춤 한다는 것은 늘 반가운 일이다.


여린 꽃받침잎이 쉽게 손상되는지 온전하게 피어있는게 드물 정도다. 애써 피운 꽃이 쉽게 상처를 입는 것이 안따깝기도 하지만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만 한다. 내가 범인이라는듯 꽃술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곤충을 한동안 바라다보았다.


우리나라 각지의 햇볕이 잘 드는 숲 안, 숲 가장자리, 길가에 자라는 낙엽지는 덩굴 나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으아리속 식물 가운데 가장 큰 꽃을 피운다.


개미머리라고도 하는 큰꽃으아리는 품위 있는 모습에서 연상되듯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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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에 초록을 더해가는 숲은 봄에서 여름으로 탈바꿈하느라 쉴틈이 없다. 뭇생명들을 품고 기르기 위해 숲은 짙어지고 깊어진다. 풀은 땅을 덮고 나뭇잎은 하늘을 가린다. 닫힌듯 열린 숲은 숨 쉴 틈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때를 보내고 있다.

온기를 담은 품으로 생명을 기르는 일이 숲만의 고유 영역은 아니다. 사람도 사람들의 숲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고유한 빛과 향기를 채워간다. 사람의 숲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거울로 삼고 제 길을 간다.

온기와 그늘로 생명을 품어주던 숲도 눈보라와 비바람으로 그 생명을 내치듯, 언제나 내 편으로 든든한 언덕일 것만 같던 사람들도 자신의 잇속을 챙기느라 너무도 쉽게 손바닥을 뒤집는 것이 사람의 숲이다. 이렇게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에서 풀과 나무의 숲이나 사람 숲은 서로 다르지 않다. 

비오는 날이라고 숲이 제 일을 게을리 할리는 만무하다. 촉족하게 젖은 숙은처녀치마의 꽃봉우리가 이제 만나게 될 세상을 향한 설렘으로 가득하다. 꿈과 희망을 품어줄 세상 또한 새로운 벗을 얻는 설렘으로 서로를 대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풀 한포기 새싹 하나 떨어진 꽃잎? 세상천지 돌아보면 스승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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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피어날...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빼꼼히 신비한 세상 구경을 나온 듯한 윤판나물의 모습이 미소를 자아낸다. 노랑과 녹색의 순함이 어우러진 모습이 경계를 풀고 세상을 품게 만드는 너그러움이 있다.

지극함이다. 억지부려서는 이루지 못하는 간절함이다. 정성의 선을 넘어서는 경지에 들어서야 가능한 일이다. 하늘, 땅, 물, 햇볕, 바람?생명을 향한 모두의 의지가 발현된 결과다. 나뭇잎 하나를 움틔우는 일, 꽃잎 하나가 열리는 일, 무심한듯 무탈한 하루를 보내는 일 이 모두가 한마음 한자리다. 살아 숨쉬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우리가 오늘, 지금을 사는 이유다. 

내 뜰에 들어와 꽃으로 피어난 그대도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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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구슬붕이'
딱히 대상을 정해두고 길을 나선 것은 아니다. 숲에 들어 그때에 맞는 만남이면 좋다. 그것이 풀이건 나무건 특별히 구분 하지도 않는다. 들어가고 싶었던 숲에 들어 걸음을 멈추고 숲의 공기와 소리, 색과 빛 그리고 냄새까지 내 눈과 귀와 몸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보이는 것들에 주목하면 되는 것이다.


볕이 잘드는 땅 가까이에서 하늘 향해 속내를 마음껏 풀어냈다. 과하지 않은 보라색의 꽃잎에 햇볕을 품에 제 본연의 색을 발한다. 여리디여린 꽃대에 어찌 저렇게 큰 꽃잎을 달고 있을까. 땅에 바짝 붙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슬처럼 자줏빛 꽃이 뭉쳐 피어 구슬이 송송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일까. 구슬붕이에 비해 크다고 해서 큰구슬붕이라고 한다. 비슷한 모양으로 꽃을 피우는 것으로 구슬붕이, 봄구슬붕이 등이 있는데 구분이 쉽지 않다.


숲으로 깊숙하게 내려않은 햇볕이 봄 숲에 기쁜 소식을 던해주듯 큰구슬붕이는 보는이에게 꽃말 처럼 봄의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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