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뒤끝이 깊고 무겁다. 고온에 습기를 더하니 숨 쉴기 틈이 비좁다. 어디라도 볕 들 구멍은 있다던가. 그나마 더디게 산을 넘어와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한줌 바람이 반갑다.

사각거리는 댓잎소리를 반기는 마음보다 틈을 노리는 모기를 쫒는 손짓이 분주하다. 어둠의 깊이 만큼이나 무거운 습도가 지배하는 곳, 때를 놓치지 않고 세상 구경 나온 생명들의 신비를 만나는 시간은 빠르게만 흐른다.

돌아다 본 길이 낯설다. 정작 속에 들어있을 때는 알지 못하다가 틀을 벗어나 보니 안의 시간이 아쉽다. 그 아쉬움으로 지나온 시간은 붙잡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다가올 시간을 목마름으로 기다린다.
하여, 늘 '지금, 이 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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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으로'
저절로 피고 지는 것이 있을까?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견디면서 이겨나가야 비로소 때를 만나 꽃을 피울 수 있다.

잎 위로 꽃 잎 하나를 떨구는 일이 어디 저절로 이뤄지는가. 보내고 나니 비로소 남는 것으로 다음을 예약한다. 품어야 할 무엇을 안고 있는 일은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운명과 맞서는 일 일지도 모른다.

여름이 여름같지 않아도 꽃은 피고 열매까지 맺었다. 다소 싱거운 여름을 탓하기에는 아직 남은 시간이 많다. 지나온 아쉬움 보다 앞으로 펼쳐질 기대감에 주목 한다. 연밥이 연실을 여물게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기다림이란 지극한 그리움을 가슴 속 가득 쌓아두는 일이다. 하여, 이 또한 수고로움을 견뎌내야 한다. 아프고 시리며 두렵고 외로운 이 긴 수고로움이 가득차면 은근한 맛을 품은 열매로 익으리라.

비가 여름날의 중간을 싹둑 잘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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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터리풀'
볕이 드는 숲 언저리가 붉은빛으로 물든다. 붉음이 주는 가슴 뛰는 순간을 놓칠세라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 본다. 간혹 불어오는 바람결을 타고 달려드는 꽃빛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 정신을 차릴 마음은 애초에 없다. 빼앗긴 마음을 돌려세우기가 쉽지 않다.

한여름으로 달려가는 숲에 짙은 자홍색의 작은 꽃들이 빽빽하게 뭉쳐 줄기의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핀다. 하늘의 별이 지상으로 내려와 붉은 별잔치를 벌리는 모양이다.

지리산에 사는 터리풀이라는 의미의 지리터리풀이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하얀색의 꽃이 피는 터리풀 역시 한국특산종이며 꽃 색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나무 그늘 속에서 느린 걸음으로 지리산 노고단을 오르는 길가에는 노루오줌, 도라지모시대, 원추리, 큰뱀무, 둥근이질풀 등 무수한 꽃들의 잔치가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지리터리풀이 보여주는 붉은빛의 꽃의 향연을 놓치면 두고두고 아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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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마도 끝은 있다.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든 장마가 오늘 아침은 는개와 함께 한다. 비를 품지 못한 안개는 더디게 움직이며 산을 넘지 못하고 있다. 덜어낼 무엇이 남은 까닭이리라. 이어지는 장마기에 폭염으로 지치지는 않는다. 동전의 양면이다. 이제는 여름다울 폭염을 기다린다.

마지막 꽃잎을 떨구는 연蓮이다. 색과 모양, 무엇보다 은은한 향기로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잠깐의 시간이었다. 하나 남은 저 잎마져 떠나보내야 비로소 다음으로 건널갈 수 있다. 연실을 튼실하게 키우고 다음 생을 기약하는 일이다.

볕을 더하고 바람을 더하고 비를 더한다. 무게를 더하고 시간을 더하고 마음을 더하는 동안 깊어지고 넓어진다.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은 자연이 열매를 키워 다음 생을 준비하는 사명이다. 어디 풀과 나무 뿐이랴. 존재하는 모든 것은 현재를 살아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관계의 결과물이다.

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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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꽃보다 꽃이 담고있는 사연에 주목한다. 그늘진 곳에 피어 그 화사함이 돋보여 뭇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 무더운 여름 한철 그렇게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에 속으로 더 붉어지는 꽃이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것으로 하여 서로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이름도 상사화相思花라 부른다.

꽃 진자리에 잎 나고, 그 잎의 힘으로 알뿌리를 키워 꽃이 피어날 근거를 마련한다. 숙명으로 받아 안고 희망으로 사는 일이다. 어찌 그리움에 안타까움만 있겠는가. 만나지도 못하면서 서로를 더욱 가치있게 만들어 주는 것, 사랑이 이러해야 함을 스스로 증명한다.

그 어렵다는 사랑으로 살아 더 빛나는 일생이다. 한껏 꽃대 올렸으니 이제 곧 피어나리라. 잎이 준 사랑의 힘으로?.

때를 거스르진 못한다.
바야흐로 상사화의 계절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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