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緣'

굳이 말이 필요없다. 언어 이전에 이미 감지하고 무의식적으로 표현되는 영역이 여기에 속한다. 하여, 언어로 설명하기엔 부족하고 어설프다. "어찌 알았을까? 이 마음" 만으로도 충분하다.

애쓰지 않아도 보이는 마음 같은 것. 빛과 어둠이 서로를 의지하여 깊어지는 것. 사람도 자신의 마음에 세겨진 결에 의지하여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시간을 공들여 쌓아가야 가능하다.

이른 아침 볕이 사나워지기 전에 뜰을 걷는다. 잘려나간 단풍나무의 돋아난 새순에 아침햇살이 닿았다. 세상에 나와 숨을 쉬는 것을 축하라도 하듯 새순과 햇살의 만남이 눈부시다.

때마침 서로 서로가 어우러져 눈부심으로 피어나는 것처럼 당신과 내가 만나 겹으로 깊어지는 일도 이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여, 연緣은 연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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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꽃
모란 부럽지 않은 화려한 자태

紅芍藥 홍작약
嚴粧兩瞼醉照勻 엄장양검취조균
共導西施舊日身 공도서시구일신
笑破吳家猶不足 소파오가유뷰족
却來還欲惱何人 각래환욕뇌하인

홍작약
곱게 단장한 두 볼이 취한 듯 붉으니
다들 말하기를 서시의 옛 모습이라 하네.
웃음으로 오나라를 깨뜨린 것도 오히려 부족하여
문득 또 누구를 고뇌하도록 하려는가?
-이규보, '동국이상국전집' 권16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서른 번째로 등장하는 이규보(李奎報, 1168 ~ 1241)의 시 "紅芍藥 홍작약"이다.

작약은 중국이 원산지로 5~6월에 붉은색과 흰색 또는 다양한 색깔로 줄기 끝에 한 송이씩 핀다. 주로 약초나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꽃으로만 보면 모란과 비슷하나 모란은 나무고 작약은 풀이다.

옛사람들은 꽃의 아름다움과 약효에 모두 관심을 두었고 이를 다양한 시로 남겼다.

모란이 꽃잎을 떨구면 기다렸다는 듯 작약이 큰 꽃망울을 활짝 펼친다. 윤이나는 꽃잎이 색과 어우러져 더 화려하게 보인다. 이 모습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꽃이다.

내게 작약은 초등학교 등하교 길에 보았던 무수히 많은 꽃을 피웠던 그 꽃밭으로 남아 있다. 그 기억이 내 뜰을 마련하고 고향집에서 가져온 구근으로 작약 화단을 만들게 되었다.

모란은 흰색으로 핀 단아함을 좋아한다면 작약은 검붉은 색으로 핀 농염함에 주목한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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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난초
삶의 터전을 옮기고 정신 없는 한해를 보내고 난 후 시작된 숲 탐방에서 딱 한개체를 만난 후 두해 동안 보지못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라진 꽃을 마음에 담았다.

다른 식물의 상태가 궁금해 찾아간 곳에서 무리지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눈맞춤 했다.

주름진 녹색의 잎 사이에 황금빛색으로 빛나는 꽃을 달고 아래로부터 차례로 핀다. 백색의 입술모양 꽃부리의 안쪽에는 홍자색의 반점이 유독 눈을 사로잡는다. 녹색과 노랑 그리고 하얀색의 조합이 매력적이다.

닭의난초라는 이름은 꽃잎 모양이 닭의 부리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난초류에 제비난초, 병아리난초 등과 같이 조류 이름이 붙어있는데 그 특징적인 모습을 식물어서 찾아 짝을 지어 이름 부르는 것이 흥미롭다.

초여름의 풀숲 사이에 녹색이나 하얀색이 피는 다른 난초들과는 달리 특별한 색감으로 피어 '숲속의 요정'이란 꽃말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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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그대는 어디서 무슨 병 깊이 들어

길을 헤매는 동안 이곳에도 풀벌레 우니

계절은 자정에서 바뀌고 이제 밤도 깊었다

저 수많은 길 중 아득한 허공을 골라

초승달 빈 조각배 한 척 이곳까지 흘려 보내며

젖은 풀잎을 스쳐 지나는 그대여 잠시 쉬시라

사람들은 제 살붙이에 묶였거나 병 들었거나

지금은 엿듣는 무덤도 없어 세상 더욱 고요하리니

축축한 풀뿌리에 기대면

홀로 고단한 생각 가까이에 흐려 먼 불빛

살갗에 귀에 찔러 오는 얼얼한 물소리 속

내 껴안아 따뜻한 정든 추억 하나 없어도

어느 처마 밑

떨지 않게 세워 둘 시린 것 지천에 널려

남은 길을 다 헤매더라도 살아가면서

맺히는 것들은 가슴에 남고

캄캄한 밤일수록 더욱 막막하여

길목 몇 마장마다 묻힌 그리움에도 채여 절뚝이며

지는 별에 부딪히며 다시 오래 걸어야 한다

*김명인 시인의 시 '그대는 어디서 무슨 병 깊이 들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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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다 받아드릴듯 활짝 열어젖힌 커다란 꽃잎에 어울리는 특이한 꽃술이다. 진한 주황색에 까만 점으로 수놓은 꽃잎의 화려함에 걸맞은 검붉은 꽃술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돋보여야 살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난 꽃들의 화려함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이런 치장은 살아 대를 이어야하는 지엄한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고, 목숨보다 더 무거운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반면에 어떤 경우엔 화려한 외모에 기대 외로움이나 슬픔, 아픔을 감추기 위해서 치장을 하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안으로든 밖으로든 이렇게 외모에 허세를 부린다는 것이 가져다 주는 공허함은 어쩔 수 없다.

이 공허함을 메꾸기 위해 날마다 화려해져만 간다. 겉모양뿐만 아니라 마음자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날로 화려함만을 찾아가는 마음은 외모의 화려함으로 소통을 꿈꾸지만 오히려 관계의 단절을 불러오는 경우를 빈번하게 목격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온갖 치장으로 자신을 꾸미고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아래 온전히 스스로를 내맡긴 참나리의 사명은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그 화려한 꽃잎을 떨구고 난 후 마지막 꽃술이 말라가는 그 간결함에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보듯 물기를 가득 머금은 꽃술에 마음을 얹어놓고 한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마 속을 건너는 여름날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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