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오로지 해를 따르는 한 가지 마음

葵花 규화
紅爛開時白半開 홍란개시백반개
大於盤面小於杯 대어반면소어배
憐渠本有傾陽懇 연거본유경양간
浪蘂浮花不是才 랑예부화불시재

규화
붉은 꽃 만발할 때 흰 꽃 반쯤 피는데
쟁반보다 크기도 술잔보다 작기도.
해를 향한 간절함 어여쁘니
평범한 꽃들과는 그 자질이 다르네.
-서거정, 사가집 권28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서른 네번째로 등장하는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시 " 葵花규화"다.

접시꽃은 초여름 키를 쑤욱 올려 여러가지 색으로 피는 꽃이다. 접시 처럼 활짝 벌어진 모습으로 여름동안 함께 한다.

접시꽃을 한자로 葵花규화라고 하는데 이는 태양을 따라다니며 핀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연유한 葵心규심은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마치 해를 따라다니는 규화와 같다'고 하여 '忠心충심'을 상징한다. 해를 따라 피는 꽃인 해바라기의 한자도 黃蜀葵황촉규다.

내 기억 속 접시꽃은 어린시절 뛰어다니던 장독대 옆이나 골목길 담장 아래 다소곳이 피어 있던 모습이다. 이후 더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도종환 시인의 시 "접시꽃 당신"에 얽힌 이야기와 이를 영화로 만들어 한 시대를 끌고 갔던 것에 머물러 있다.

내 뜰에 핀 접시꽃은 이미 졌고 벌써 다음해를 준비하고 있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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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黃槿

제주도를 특별하게 기억하게 만드는 식물 중 하나다. 첫눈에 보고 반해 모종을 구했으나 추운 겨울을 건너다 깨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재주 좋은 벗이 씨앗을 발아시켜 나눔한 것을 소중히 키우고 있다.

깔끔하고 단정하며 포근하다. 이 첫 느낌에 반해 오랫동안 곁에 머물렀다. 연노랑의 색부터 꽃잎의 질감이 탄성을 불러온다. 바닷가 검은 돌로 둘러쌓여 아름답게 핀 모습이 꽃쟁이의 혼을 쏙 배놓았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 Ⅱ급인 '황근'은 말 그대로 "노란 꽃이 피는 무궁화"다. 국화인 무궁화가 오래전에 들어온 식물이라면 황근은 토종 무궁화인 샘이다. 어딘지 모를 바닷가 검은 돌틈 사이에 제법 넓은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무궁화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저버리는 하루살이라 꽃이라고 한다. 미인박명의 아쉬움은 여기에도 해당되는 모양이다.

두해의 겨울을 건너고 올 여름 드디어 꽃을 피웠다. 꽃 볼 날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기만 하다고 했더니 그 마음을 알았나 보다. 다시, 내년 여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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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나는 아직도

나는 아직도 꽃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찬란한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만

저 새처럼은

구슬을 굴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놀빛 물 드는 마음으로

빛나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만

저 단풍잎처럼은

아리아리 고울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빈손을 드는 마음으로

부신 햇빛을 가리고 싶습니다만

저 나무처럼은

마른 채로 섰을 수가 없습니다

아, 나는 아직도 무언가를

자꾸 하고 싶을 따름,

무엇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박재삼 시인의 시 '나는 아직도'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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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물이 키워낸 잎과 그 사이를 건너는 바람이 꽃을 피웠다. 꽃은 뜨거운 태양의 열기로 결실을 맺는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떠나보낼 준비를 마쳤다.

8월의 시작이다. 여전히 뜨거운 햇볕으로 버거운 시간일 테지만, 그 뜨거움이 연자蓮子를 여물게 한다. 연자蓮子가 여물어 단단한 껍질 속을 부드러움으로 채워간다.

겉으로 보이는 단단함보다는 내 안의 부드러움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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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다. 볕은 바늘끝 같은데 얼핏 스치는 바람결의 변화가 느껴진다. 순전히 기분탓이겠지만 조만간 실감할 것이기에 그 기운을 미리 품는다.

노랗게 물들이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벌써 부풀어 올랐다. 결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지만 나는 황금빛으로 빛나던 꽃보다 이 열매를 더 기다렸다. 땡볕에 온실 효과일지도 모를 공간에서 여물어갈 내일을 향한 꿈에 기대를 거는 까닭이다.

7월 마지막날, 한낯 열기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다. 반가워할 이유도 없는데 무서울 것 없다는듯 거침없이 파고들어오는 열기에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땡볕도 제 기세를 주체하지 못하는듯 비틀거린다. 이렇게 날뛰는 것은 갈 때가 얼마 남지않은 몸부림이라는 것을 스스로 아는 까닭이다.

염덕炎德이라며 세상을 보듬었던 조상들의 마음자리는 책 속에서만 머물고, 비 소식은 산 너머에서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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