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물

왜 자꾸 마음이 그곳으로 가는 것일까. 몇 년 전 어느 시인은 억울한 영혼들이 묻힌 곳에는 어김없이 피어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후로는 일부러 꽂 필 때를 기다려 찾아간다.

지천으로 핀 다른 꽂 보다는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피나물 곁에서 더 오랫동안 머무르다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더디게 옮겼다. 늘 눈에 밟히는 그곳의 피나물 모습에 해마다 다시 찾아간다.

샛노랗다. 꽃잎도 꽃술도 온통 노랑색이어서 더 강한 울림이 전해지는 것일까. 과한듯 하면서도 한없이 포근한 온기를 전해주는 것이 할 수만 있다면 저 무리 속에 누워 한동안 안겨있고 싶은 마음이다.

'피나물'이라는 이름은 연한 줄기와 잎을 꺾으면 피血와 비슷한 적황색의 유액이 나와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여름이 되면 잎과 줄기는 없어지고 무 열매를 닮은 열매를 맺는다. 유사한 종류로 '애기똥풀'과 '매미꽃'이 있다. 주의깊게 관찰하면 구분이 어렵지 않다.

홀로서도 빛나지만 무리지어 그 빛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숲에서 마주하면 나비가 날아가는 듯한 연상이 되는데 '봄나비'라는 꽃말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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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사지 동백숲

벼르고 벼르다 기다림에 지친 것일까

찾아간 날은 절정에서 두어걸음이나 지난 후.

오르막 초입에서는 김초혜의 '동백꽃 그리움'을 염두에 두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김용택의 '선운사 동백꽃'에 몰두하고 있다. 아차 싶어 변준석의 '동백꽂 지다'를 불러왔다.

"동백꽃 한 송이

소리 없이 떨어진다.

호상(好喪)이다."

내려오는 길에는 정태춘의 노래 '선운사 동백꽃이 하 좋다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아쉽다.

다시 찾을 날을 위해 미리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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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풀
첫 만남에는 먼길 나서서 비를 맞고 꽃 다 떨어진 후 딱 한송이 남은 모습으로 마주했다.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그 다음해에야 비로소 무리진 모습을 제 때에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색을 달리해서 피는 꽃을 한꺼번에 볼 수 있으니 행운인 샘이다.

미치광이풀, 요상스런 이름이다. 소가 이 풀을 뜯어 먹으면 미친 듯이 날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독성분이 강하기에 조심스럽게 다뤄야하는 풀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제법 큰 무리를 이룬 서식지에는 풍성하게 꽃밭을 이루고 있다. 서식 환경이 적합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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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맞춤이다. 나무를 사이에 두고 햇살과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때론 스스로를 잊어버리는 몰입의 때이기도 하다. 이 경험이 주는 환희가 있어 생명의 꿈틀거림으로 요란스런 봄 숲을 찾는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봄의 숲은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가슴을 펴고 설렘으로 다가올 시간을 마주하는 마법의 힘을 발휘한다. 알든모르든 모든 생명이 봄앓이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순하디 순한 이 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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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꽃'

어찌 도리화와 봄을 다툴까

茱萸花 수유화

勁節高孤似伯夷 경절고고사백이

爭春桃李肯同時 쟁춘도리긍동시

山園寂寞無人到 산원적막무인도

藹藹淸香只自知 애애청향지자지

수유화

굳은 절개 고고함이 백이와 같거늘

어찌 도리화와 같은 시기에 봄을 다투겠는가?

고즈넉한 산속 동산 이르는 사람 없어도

가득한 맑은 향기에 그저 절로 알겠거니.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다섯번째로 등장하는 곽진(郭瑨, 1568~1633)의 시 '茱萸花 수유화'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이른 봄 꽃을 피우는 산수유는 매화와 더불어 봄꽃의 대표주자 중 하나다. 옛사람들도 이 점에 주목하여 가까이 두었나 보다.

이 시에서는 가을에 꽃봉우리를 맺어 추운 겨울이라도 뜻을 굽히지 않고, 봄에 이르러 다른 꽃들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모습에서 백이 숙제의 절개를 이야기하고 있다. 도리화가 피는 봄에는 꽃향기가 어지럽지만 그 전에 피는 산수유꽃은 향기도 맑아 정신을 맑게 한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어찌 도리화와 봄을 다툴까"라는 수식어는 여기에서 온듯 싶다.

섬진강을 따라 오르던 봄기운이 광양 매화마을에서 머물며 숨고르기를 한 후 다시 올라와 지리산 자락에서 노랑꽂을 피운다. 넓다란 골짜기를 노랗게 물들이며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봄기운을 불어넣는 곳이 산수유로 유명한 산동이다.

그곳에 현천 마을이 있다. 골목마다 돌담과 샛노란 산수유가 어우러진 마을에 선배 한분이 산다. 대학 4학년 말 갑자기 사라져 소식을 몰라 모두가 궁금해 했는데 어느날 불쑥 들려오는 소리가 그곳에 터를 잡고 살림을 차렸다는 것이다.

그 집터에 커다란 산수유 나무가 있었고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어느날 붉은 열매를 딴다기에 몇명이 방문했다. 그렇게 만난 것이 산수유와 첫만남이었다. 그후로도 몇번 나들이겸 방문하였는데 잘 살아가는 모습이 더없이 정겨운 모습으로 꼭 산수유 나무 같았다.

나 역시 시골에 자리를 잡고 뜰을 가꾸면서 산수유 한그루를 심었다. 이제는 제법 커서 꽃피는 봄날이면 노랗게 봄기운을 전해준다. 하지만 꽃은 만발한데 열매를 맺지 못한다.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미적대며 대책을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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