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그래왔고 어쩌면 지금도 '들이대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꽃도 사람도 자세히 봐야 이쁘듯, 기본은 거리를 좁혀 자세히 보는 것에 있다는 것을 핑개로 여기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가까이만 다가선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자세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더 알고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들이대지만 경험이 쌓이면 이제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두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황이나 조건, 관계에 의해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함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상대와의 알맞은 눈맞춤에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들이대면서 확보된 감정이 거리를 둠이 필요하다는 이성과의 원만한 합의가 요구된다. 그렇게해서 확보된 거리로 인해 보다 여유롭고 편안하게 서로가 마주볼 수 있게 된다. 비로소 공존이 가능해진 것이다.

원하는 것만을 찾는 거리가 아니라 대상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볼 수 있는 '눈맞춤의 거리'를 찾아간다. 꽃을 찾아 눈맞춤하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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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바람꽃
발품 팔아 제법 많은 산들꽃들을 만나면서 꽃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이유가 일상에 휘둘리는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은 마음의 반영인듯 싶다. 못 본 꽃이면 보고 싶다가도 일단 보게 되면 그 꽃에서 다른 모습을 찾게 된다.

남바람꽃, 가까운 곳에 두곳의 자생지가 있어 비교적 쉽게 만나는 꽃이다. 비록 철조망에 갇혀 보호를 받고 있는 현실이지만 울타리 밖 몇개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올해는 조금 더 멀리 잏는 다른 곳에서 보았다.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바람꽃 종류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니 다소 싱겁지만 꽃이 전하는 자태만큼은 다른 꽃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만큼 아름답다. 특히 막 피기 시작할 때 보여주는 꽃받침잎의 색감은 환상적이다. 진분홍빛의 뒷모습이 풍기는 그 아련함을 주목하게 만든다.

적당히 나이들어 이제는 삶의 진면목을 아는듯한 여유로움에서 오는 뒷모습이 곱게 나이들어가는 여인네를 연상케하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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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풀

한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었다. 딱히 나서지 못할 이유도 없었지만 그저 먼길이라 여겨 마음을 내지 못한 탓이다. 아니면 적절한 때에 이르러서 불러주는 이를 기다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만항재라 했다. 동강할미꽃 보러 나선 길에 스치듯 잠시 머무르긴 했지만 안개 속에서 실체에 접근하지 못한 곳에 다시 섰다. 비탈진 경사면에 여기저기 피어나는 중이다. 극히 일부만 봤으니 만항재의 꽃놀이는 아직도 남겨둔 셈이다.

강한 노랑색의 꽃이 모여핀다. 빛을 받아 한껏 미모를 자랑하니 눈맞춤은 오래갈 수밖에 없다. 고도 1,000m가 넘는 강원도의 깊은 산에서 자라는 희귀한 식물이라고 한다. 환경부에서 희귀종으로 지정(지정번호 식-65)하여 보호하고 있다고 하지만 서식지에는 흔한 꽃으로 보일 정도로 많이 핀다고 한다.

실물이 사진보다 이쁜 꽃들이 있는데 한계령풀도 마찬가지다. 노랑의 꽃과 녹색 잎의 어울어짐이 환상의 조합을 이룬다. 실물을 보는 것이 만배는 더 이쁘다. 머리속에 상상으로 그려지는 풍경만으로도 이미 꿈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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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꽃

천향을 사랑하여 저녁 바람 앞에 섰네

題錦城女史芸香畵蘭 제금성여사운향화난

畵人難畵恨 화인난화한

畵蘭難畵香 화란난화향

畵香兼畵恨 화향겸화한

應斷畵時腸 응단화시장

금성여사의 난향난초 그림을 두고 짓다

사람은 그려도 한을 그리기 어렵고

난은 그려도 향기는 그리기 어렵지.

향기를 그리며 한까지 그렸으니

응당 그림 그릴 때 애가 끊어졌으리.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일곱 번째로 등장하는 신위(申緯;1769-1845)의 시 '題錦城女史芸香畵蘭 제금성여사운향화난'이다.

꽃을 보러 나선 길에 종종 꽃놀이 나온 이들을 만난다. 일면식도 없지만 꽃이 좋아 같은 날 같은 길에서 만났다는 것 만으로 친근감이 있다. 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지만 대부분 꽃에 대한 정보교환이 주다.

어느날 먼길을 왔다는 이가 눈여겨 보며 신기해하는 꽃이 있었다. 자신이 사는 곳에선 이렇게 여러개체의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기 힘들다며 남도에 사는 이들을 부러워 했다. 남쪽에선 흔해서 꽃쟁이들 사이에서 덜 주목 받는 꽃이 바로 이 '춘란'이고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다.

춘난은 '보춘화'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봄을 알리는 난초라는 의미다. 동양에서 선비들이 자주 그렸던 사군자에 등장하는 난초가 이 춘난으로 생각된다. 이 춘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투', '복륜', '소심' 등 상당히 복잡한 구성이다. 문외한의 눈에는 그것이 그것 같지만 난초가 가진 멋드러진 풍모는 이해가 된다.

난초 그림으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마음속 난과 종이 위의 난이 둘이 아니다"라는 '불이선란'은 "난초를 그리지 않은 그림"이라는 뜻의 '부작난도'라고도 한다."

옛사람들이야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경지의 속내를 그림으로 그렸다지만 그저 꽃이 좋아 꽃놀이를 일삼는 이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다. 내 마음에 들어오는 모습 그대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나만의 난향을 담는다. 그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면 오만일까.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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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가만 있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성을 다하여 기회를 만든 후에야 비로소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꽃을 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멀리 있어 보지 못하고 아쉬워만 하다가 오는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먼길을 나섰다.

죽령 옛길을 올라 그늘진 경사면에서 첫눈맞춤을 했다. 올해는 강원도 어느 숲에서 만났다. 몇번의 눈맞춤이 있었다고 꽃을 대하는 마음이 한결 느긋하다. 빛을 품고 제 속내를 드러내며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꽃마음이 불원천리 달러온 그 마음에 닿았나 보다. 반짝이는 보랏빛 꽃술을 품는다.

처녀치마, 특이한 이름이다. 땅바닥에 퍼져 있어 방석 같기도 한 잎에서 치마라는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꽃이 필 때는 작았던 꽃대가 활짝 피면서 쑥 올라온다고 한다.

차맛자락풀이라고도 하며 비슷한 종으로는 칠보치마와 숙은처녀치마가 있다. 숙은처녀치마는 지리산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 올해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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