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란'
불갑사 대웅전 옆에서 정갈한 모습으로 만났었다. 스님들의 정성스런 손길로 곱게도 피었다. 그후로 공원의 화단이나 남의 뜰에서만 만나다 내 뜰에도 들였다.

바다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 바닷바람 맞으며 홍자색의 꽃을 피운 자란을 현장에서 본 느낌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라 더 생동감 있다. 전남 해남, 진도 고흥 및 목포의 일부 지역에서 나는 다년생 초본이다.

조직배양을 통해 원예종을 재배되어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식물이다. 고운 색감을 전해주며 멋드러진 자태까지 겸비했으니 많은 이들의 눈도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 뜰에 들어온 두가지 색의 자란도 잘 자라서 풍성하고 고운모습을 오랫동안 볼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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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充實之謂美 충실지위미'

충실充實한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하고자 할 만한 것을 '선善'이라 하고, 선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신信'이라 하며, 선이 몸속에 가득 차서 실하게 된 것을 '미美'라 하고, 가득 차서 빛을 발함이 있는 것을 '대大'라 하며, 대의 상태가 되어 남을 변화시키는 것을 '성聖'이라 하고, 성스러우면서 알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

*맹자孟子 진심하盡心下편에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선善, 신信, 미美, 대大, 성聖, 신神"의 여섯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美은 무엇일까.

책을 손에서 놓치 않으나 문자에만 집착해 겨우 읽는 수준이고, 애써 발품 팔아 꽃을 보나 겨우 한 개체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가슴을 울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몰입하나 그 찰라에 머물뿐이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순하게 대상을 한정시켜서 아름다움을 보는 것에 나를 맡긴다면 스스로에게 미안할 일이 아닐까.

마른 땅을 뚫고 솟아나는 죽순에서 지극한 아름다움을 본다. 시간과 때를 알아 뚫고 나오는 힘 속에 아름다움의 근원인 충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해 두해 발품 팔아 꽃을 보러다니다 보니 모든 꽃이 그 충실의 결과임을 알게 되었다.

애써서 다독여온 감정이 어느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은 스스로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한다. 쌓아온 시간에 수고로움의 부족을 개탄하지만 매번 스스로에게 지고 만다. 그렇더라도 다시 충실에 주목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이기는 힘도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충실充實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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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02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순 멋지네요.
 

새우난초

멀리서 들려오는 꽃피었다는 소식은 반가움과 함께 아쉬움도 동반한다. 여건이 허락해 볼 수 있으면 반갑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새우난초가 피었다는 소식이 짠물을 건너올 때마다 아쉽기만 했다.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은 상황일 뿐더러 육지에서 들리는 소식도 북쪽으로 2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에 대한 부담이 있다.

지나고 보니 어쩌면 둘 다 핑개일 뿐이고 꽃이 보내는 유혹이 약했거나 보고 싶은 간절함이 부족한 탓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동안 빈번하게 1박 2일 일정의 더 먼 거리도 훌쩍 길을 나섰던 일은 무엇이란 말일까?

새우난초는 제주도와 남해안 그리고 서해안 일부지역에 자생한다. 5월에 흰색 또는 연한 붉은색, 연한 자주색 등으로 피고 뿌리줄기가 새우등 처럼 생겼다고 해서 ‘새우난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마음도 움직였고 시간도 적절할 뿐만 아니라 선듯 일정을 변경해준 꽃친구가 있어 가능했던 새우난초와의 첫 눈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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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여름 시작이다. 매서운 겨울의 눈보라가 봄의 화려한 꽃향기를 준비했듯 나풀거렸던 봄향기로 맺은 열매는 이제 여름의 폭염으로 굵고 단단하게 영글어 갈 것이다.

미쳐 보내지 못한 봄의 속도 보다 성급한 여름은 이미 코앞에 당도해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짐작되는 변화보다 예측할 수 없이 당면해야하는 폭염 속 헉헉댈 하루하루가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숲 속을 걷거나, 숲 속에 서 있었던 시간을 떠올리며 숲이 전해준 위안을 꺼내보며 스스로를 다독일 일이다.

두 해 전 태백산 천제단 아래,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의 품에 들었다. 속을 내어주고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나무다. 다시 천년에 또 한번의 봄을 건너 여름을 기록할 나무의 품은 아늑했다. 처음 든 태백太白의 품이 어떠했는지를 기억하게 해 줄 나무이기에 곱게 모시고 왔다.

유월 첫날 그리고 여름의 시작, 시간에 벽을 세우거나 자를 수 없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다. 그렇더라도 풀린 매듭을 묶듯이 때론 흐르는 것을 가둘 필요가 있다. 물이 그렇고 마음이 그렇고 시간이 그렇다. 일부러 앞서거나 뒤따르지 말고 나란히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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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꽃

나무가 가득 빛나는 순백의 아름다움

題李花 제이화

汝與我同姓 여여아동성

逢春發好花 봉춘발호화

吾顔不似舊 오안불사구

反得鬂霜多 반득빈상다

자두꽃을 읊다

너는 나와 같은 성씨

봄을 만나 좋은 꽃 피웠네.

내 얼굴은 예와 달라

귀밑에 서리만 가득하구나.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권14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열두 번째로 등장하는 이규보(李奎報, 1168-1247)의 시 '題李花 제이화'다.

자두는 '진한 보라색, 복숭아 닮은 열매'라는 뜻의 '자도 紫桃'에서 왔다고 한다. 다른 말로는 '오얏'이라 불렀다.

"삼국사기"에 복숭아와 함께 백제 온조왕 3년(15)에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무다. 대한제국의 문양이 바로 이 오얏꽃에서 왔다.

‘이하부정관 李下不整冠’이란 말이 있다. 자두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이다. 의심받을 만한 행동은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질 만큼 자두나무는 흔하게 만날 수 있었던 나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내 뜰이 생기자 가장 먼저 심었던 나무가 이 자두나무다. 다른 나무와 달리 아주 빨리 자란다. 키와 품을 열심히 키우기만 하더니 열매를 맺지 않아서 잘라버릴까도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올해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베어버린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해 첫 열매가 무성하게도 열려서 그말을 들었나 싶어 둥치를 가만히 다독여 주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내 뜰에서 가장 넓은 품을 자랑하듯 매년 풍성한 열매로 여름 입맛을 돋구어주는 기특한 나무다. 올해도 가지마다 열매를 가득 달고 볕의 온기와 바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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