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꽃풀, 기다림을 알았을까.

몇년 전 한라산 기슭에서 처음 눈맞춤 한 후 같은 자리에서 거의 매년 보아오던 꽃을 내 뜰에서 마주한다.

네개의 꽃대가 올라오고도 한동안 꼼짝하지 않더니 어느날 부터 조금씩 달라짐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하얀색의 꽃이 보였다. 몽글몽글 피어오는 꽃이 기특하여 아침 저녁으로 눈맞춤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세심하게 관찰하고 정성을 기울인 것보다 더 큰 무엇을 전해주는 것, 야생에서 만나는 것과는 또다는 특별함이 있다.

한동안 실타래가 풀리듯 피어오르는 꽃 보는 내 마음도 몽글몽글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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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휴영 處陰以休影

처정이식적 處靜以息迹

그늘에 들어가야 그림자가 쉬고

고요한데 머물러야 발자국이 쉰다

*장자 잡편 '어부'장에 나온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가 공자를 타이르는 내용이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림자影와 발자국迹은 열심히 뛸수록 더 따라붙는다. 그늘에 들어가야 그림자가 쉬고, 고요한 데 머무러야만 발자국이 쉰다."

*휴일 높은 산에 올랐다. 그곳마저 사람들 북적이는 틈이 버거웠다. 일상에서도 급하게 굴면서 숲에 들어서 그것도 높은 곳까지 올라서도 호들갑떠는 모습들이 낯설다.

쉼, 방법이야 제 각각 일테지만 자연을 찾는 마음 한구석엔 동질감이 있을 것이라 멀리 눈길을 돌리나 발밑으로 눈길 두나 매한가지라고 억지를 부려본다.

1500m가 넘는 곳에도 계곡에 물이 세차다. 소리에 이끌려 베낭을 내려놓고 물가에 앉았다. 한쪽으로 밀려난 꽃잎이 주변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마침 나뭇잎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꽃은 쉬고자 하나 그림자가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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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란'
불갑사 대웅전 옆에서 정갈한 모습으로 만났었다. 스님들의 정성스런 손길로 곱게도 피었다. 그후로 공원의 화단이나 남의 뜰에서만 만나다 내 뜰에도 들였다.

바다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 바닷바람 맞으며 홍자색의 꽃을 피운 자란을 현장에서 본 느낌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라 더 생동감 있다. 전남 해남, 진도 고흥 및 목포의 일부 지역에서 나는 다년생 초본이다.

조직배양을 통해 원예종을 재배되어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식물이다. 고운 색감을 전해주며 멋드러진 자태까지 겸비했으니 많은 이들의 눈도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 뜰에 들어온 두가지 색의 자란도 잘 자라서 풍성하고 고운모습을 오랫동안 볼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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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充實之謂美 충실지위미'

충실充實한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하고자 할 만한 것을 '선善'이라 하고, 선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신信'이라 하며, 선이 몸속에 가득 차서 실하게 된 것을 '미美'라 하고, 가득 차서 빛을 발함이 있는 것을 '대大'라 하며, 대의 상태가 되어 남을 변화시키는 것을 '성聖'이라 하고, 성스러우면서 알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

*맹자孟子 진심하盡心下편에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선善, 신信, 미美, 대大, 성聖, 신神"의 여섯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美은 무엇일까.

책을 손에서 놓치 않으나 문자에만 집착해 겨우 읽는 수준이고, 애써 발품 팔아 꽃을 보나 겨우 한 개체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가슴을 울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몰입하나 그 찰라에 머물뿐이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순하게 대상을 한정시켜서 아름다움을 보는 것에 나를 맡긴다면 스스로에게 미안할 일이 아닐까.

마른 땅을 뚫고 솟아나는 죽순에서 지극한 아름다움을 본다. 시간과 때를 알아 뚫고 나오는 힘 속에 아름다움의 근원인 충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해 두해 발품 팔아 꽃을 보러다니다 보니 모든 꽃이 그 충실의 결과임을 알게 되었다.

애써서 다독여온 감정이 어느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은 스스로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한다. 쌓아온 시간에 수고로움의 부족을 개탄하지만 매번 스스로에게 지고 만다. 그렇더라도 다시 충실에 주목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이기는 힘도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충실充實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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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02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순 멋지네요.
 

새우난초

멀리서 들려오는 꽃피었다는 소식은 반가움과 함께 아쉬움도 동반한다. 여건이 허락해 볼 수 있으면 반갑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새우난초가 피었다는 소식이 짠물을 건너올 때마다 아쉽기만 했다.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은 상황일 뿐더러 육지에서 들리는 소식도 북쪽으로 2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에 대한 부담이 있다.

지나고 보니 어쩌면 둘 다 핑개일 뿐이고 꽃이 보내는 유혹이 약했거나 보고 싶은 간절함이 부족한 탓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동안 빈번하게 1박 2일 일정의 더 먼 거리도 훌쩍 길을 나섰던 일은 무엇이란 말일까?

새우난초는 제주도와 남해안 그리고 서해안 일부지역에 자생한다. 5월에 흰색 또는 연한 붉은색, 연한 자주색 등으로 피고 뿌리줄기가 새우등 처럼 생겼다고 해서 ‘새우난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마음도 움직였고 시간도 적절할 뿐만 아니라 선듯 일정을 변경해준 꽃친구가 있어 가능했던 새우난초와의 첫 눈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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