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수요일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박준 시인의 시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다. 연달이 읽어 본다. 주춤거리던 행간에서 온기가 전해진다. 슬픔의 단짝은 희망일까.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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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꽃을 보기 위해 산과 들로 간다. 그 시작을 떠올려 보면 나만의 그럴싸한 이유를 댈 수 있는 것은 없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식물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이다.

이런저런 세상살이에 지쳐 있을 때 찾아가면 언제나 환한 미소로 반겨주지만 찾아온 이유를 묻지 않아서 좋았다. 이것은 순전히 내가 식물에 기대는 것이라서 식물들은 어떤지는 모른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세상과 멀어진 내가

세상으로 난 길 쪽으로

한 뼘씩 기울어 가는 일"

*김부조의 '소중한 일'이라는 시에서 만난 이 싯구가 한동안 머리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자꾸만 지난 삶을 돌아보게 한다.

꽃이 안내한 길을 걷다보니 '세상과 멀어진 내가 세상으로 난 길 쪽으로 한 뼘씩 기울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중심에 산과 들에서 만난 꽃이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꽃으로 난 길을 걷다가 만난 '사람'이 있었다.

서툴지만 너무 느리지 않게 세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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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눈을 들어 몇 걸음 앞 허공에서 눈길이 닿았다. 내 속내가 이렇다는 듯 순한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에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느린 움직임도 멈추고 내쉬는 숨마져도 조심스럽게 가만히 바라본다.

적절한 때와 장소 그리고 그 앞에 멈춘 내가 하나되어 꽃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순백의 지극한 아름다움에 가슴 깊이 묻어두어야만 했던 먹먹함이 몽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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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더부살이

때가 아니었다고 여긴다. 꽃소식을 접하고도 만날 생각을 못하거나 안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서식지를 알 수 없거나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그것이지만 무엇보다 관심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닌가 한다.

이 꽃도 마찬가지였다. 일찍부터 소식을 접하였지만 마음을 내지 못하였다. 그러다 문득 올해는 멀지 않은 길을 나섰다. 이제서야 만날 때가 되어서일 것이라 여긴다.

백양사 인근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백양더부살이다. "백양더부살이는 쑥 뿌리에 기생하며 볕이 잘 들고 건조한 곳에서만 사는 까다로운 생태를 지녀 전라남도 및 제주도 몇몇 곳에만 분포하는 한국 고유종이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잡풀 사이에서 키을 키운 꽃이 우뚝 솟아 있다. 대부분은 무리를 지어 있지만 간혹 한 두 개체만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제법 튼실한 꽃대에 많은 꽃을 달고 있다.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지 못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던 것일까. 화려한 색으로 스스로를 꾸몄다. 한계가 있기에 더 강럴한 의지의 표출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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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맞춤이다.
숲에 들면 한없이 느려지는 걸음에 익숙하다. 좌우를 살피고 위아래도 봐야하며 지나온 길을 돌아도 봐야 한다. 걸음을 옮기고 높이를 달리하고 속도가 변하면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바라보는 방향과 각도다. 일부러 그렇게 봐야할 이유를 밝히기 전에 당연시되는 행동이다.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어느 때는 걸음을 멈추고 몸과 마음이 그 숲에 동화되도록 고요히 머물러 숨쉬는 것도 조심스럽게 행동할 때도 있다. 그런 후에 느끼는 숲은 또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숲에 들어 생명을 만나기 시작한 후로 달라진 태도다.

문득 눈을 들면 몇 걸음 앞서 보란듯 꽃을 피우고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건네는 꽃과 눈맞춤 한다. 느린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바라본다. 적절한 때그곳에서 멈춘 나와 꽃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꽃이 핀다고 그 꽃이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는 안다. 관련된 모든 인연의 정성을 다한 수고로움으로 꽃이 피듯 사람의 만남도 그러하다. 사람과의 만남, 그 만남으로 인해 형성되는 공감, 이 모두는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져 꽃으로 피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염화시중의 미소가 따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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